나의 크기
내가 나를 못 볼 때
나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작업을 계속할 수가 있다.
계절성 감기처럼 느닷없이 찾아오는
창작자로서의 불안이나 열등감
한심한 생각이지만
큰 쇼를 하다가 작은 쇼를 할 때
쇼의 크기만큼 내가 작아진 것 같은
마음이 쪼그라든 날이나
준비가 과하여 몸이 망가졌을 때
지금 이 모습이야말로 너의 실체라고
한 없이 추락하는 감정이 내가 되는 날
그런 날이면 나 대신 나를 봐주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래서 나는 내 인생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토요일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 부스에 사람들이 몰려 옆집을 막아서며 사람들이 줄을 서는 바람에 퍼포먼스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당해봐서 알지만 정말 큰 민폐다.
남편에게 옆 부스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대기줄 관리를 좀 해 달라고 요청하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옆에 찰싹 붙어있어야 한다고 그리 일렀건만. 이런 현장에서 ‘찰싹’이 무슨 뜻인지 더 정확히 설명하지 않은 내 탓이오... 하며 다 내려놓고 글씨를 쓰고 있는데 등 쪽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쇼가 있을 때마다 찰싹 옆에 있어 주었던 절친이자 존경하는 아티스트 맷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알고 왔어?! 이번에 작은 쇼라서 그냥 혼자 해보려고 일부러 안 불렀는데...!"
반가움에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체력적으로 지친 데다 마음이 힘든 쇼여서인지 그를 보자 와락 눈물이 맺혔다.
"근처에 촬영 있는데 30분 짬 나서 얼굴이라도 보려고 달려왔지! 레베카가 말해줘서 알았어. 야! 큰 쇼, 작은 쇼가 어딨어! 거기 니가 있는데."
그는 내 말을 마음으로 듣는 사람이기에 내가 쓴 단어 하나로 심리 상태를 간파했다.
그가 옳았다.
큰 쇼, 작은 쇼가 없지.
그저 내 쇼가 있을 뿐.
그는 메고 온 카메라로 한참 내 작업 사진을 찍어주고 현장 정리를 해 놓고는 레베카 목에 카메라를 걸어주며 이러쿵저러쿵 중얼거렸다.
"나 이제 간다! 레베카가 나 대신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마! 오늘도 넌 멋져!“
쇼가 끝나고 거의 이틀간 자다 일어나
멍하니 핸드폰을 쳐다본다.
맷이 고맙다.
무대의 크기는 내가 아니다.
그저 내 쇼를
계속할 뿐이다.
나도 아는데
너무 과도하게 준비해서 몸이 지친 날은
까먹게 된다.
현장 사진을 몇 개 올리려 폰 갤러리를 손가락으로 휙휙 하다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주 산책하다 발견한 아티초크 꽃.
이게 더 예뻐서 오늘은 그냥 이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