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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Future Writers

by ACCI Nov 17. 2022

핼러윈 호박 처리하는 법


미국 호박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예뻐서 문화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난다.


너무 예쁘고 반들반들해서  이벤트 소품인  알았다. 너무 예쁜데 심지어 종류도 천차만별이라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년이 지난 지금은 

호박이  이렇게 생겼지 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이미 감흥 없는 단계에 도달하여 이것들을 어떻게 버리지 않고  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나는 핼러윈 시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책에 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산책이란 자동차가 주유소에 가는 행위와 같기에 삶에 큰 지장이 아닐 수 없다.


지나갈 때 마다 회색땅이던 곳에 오랜만에 비가 와서 새 순이 잔뜩 올라왔다.


어떤 식으로 방해가 되는고 하니, 평소에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정원들로 내 눈을 즐겁게 해 주던 동네가 음산한 테마파크로 변신하는데 여기까지는 참을만하다. 전체적 음산함은 이겨낼 수 있다. 내가 못 이기는 것은 갑자기 눈에 띄는 부분 장식들이다.


가다가 깜짝깜짝 놀래는 것이다.

 겪어본 사람들은 모른다. 이게 얼마나 화가 나는 일이냐면, 나는 지금 너무 놀랬고 징그러워 죽겠는데 허공에 화를  수도 없고, 달아놓은 사람한테 화를  수도 어서  화가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겨우 진정하고 좀 갈라치면 더 심한 놈이 또 기다리고 있다. 이 정도면 산책이 아니라 고문이다.


우리 동네는 할리우드와 가까워서 극작가나 배우, 세트연출 같은 창조적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그래서 핼러윈 장식도 다른 동네에서는   없는 괴랄한 것들이 창궐하는데 사람들이 서로 놀래키는 것에 이렇게 진심일 수가 없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호박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날이 오면 동네가 원래대로 예뻐졌다는 신호다.

 놓고 산책을   있는 것이다.




집 근처 꽃집 화단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다육이들. 한국에서 보던 다육이들이 다 자이언트 사이즈로 자란다.


장식에 사용한 호박으로 보통 호박파이를 만들지만 나는 한국사람이므로, 그리고 대구사람이므로 경상도식 호박죽을 만들 예정이다. 새알도 만들어서 동동 띄우고 팥이 없으니 검은콩도 몇 알 넣어봐야겠다.


우리 엄마는 새알을 만드는 대신 찹쌀풀을 되직하게 해서 숟가락으로 설렁설렁 떠 넣으셨는데 호박죽 먹다가 한 번씩 씹히면 쫀득 달근하니 맛있었다.


미국 호박이 암만 예뻐도 나는 내가 보고자란 늙은 호박이  좋다. 한국의 늙은 호박은 뭔가 인생을  아는 사람의 분위기가 난다. 미국 호박은 아직 풍파를 맞아보지 않아 해맑기만 하다. 




#실버레이크 #a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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