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몸 컨디션, 부부싸움, 추운 날씨에도 나는 어제 정상인의 모습으로 아끼는 동생의 베이비샤워에 동참했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는 그런 힘이 있다. 힘든 마음을 재단장 할 수 있는 힘.
다행히 잘 눌러놨던 힘듦은 엄한 곳으로 튀지 않았으나 지금 오롯이 나에게로 발산되는 중이다.
아침부터 머리가 깨진다. 진한 커피면 해결되는데 커피가 마침 떨어졌다. 집 앞에 유명한 카페가 있지만 이런 날은 나가는 게 더 스트레스라 녹차로 대신한다.
거실에 남편이 친구 이사한다고 받아온 새로운 의자가 들어와 있다(미국엔 친구들끼리 서로 물건을 받아 쓰는 문화가 한국보다 활발하다). 커피 못 마신 정신에 저 근본 없는 의자가 난데없이 이 집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보니 시뻘건 화가 올라온다.
(어제 베이비샤워 가기 전 집에서의 상황)
"오늘 자기 퍼포먼스 하나 보네?"
"아니, 왜 옷 이상해?"
"아니, 이상하진 않은데 그냥 퍼포먼스 하는 사람 같아."
참고로 나는 그저 평상시에 즐겨 입는 데님 점프슈트를 입고 있었을 뿐이다. 남편은 내가 이 옷을 입은 걸 이미 많이 봤다. 심지어 몇 년 만에 온 가족 다 모인 올해 땡스기빙에도 저 옷을 입고 갔었다. 남편은 땡스기빙 날 트레이닝 바지에 반팔 티, 카디건을 입었다.
미국은 그런 나라다. 드레스코드를 미리 정하지 않은 파티에서는 대부분 편하게 입고 오고, 그 '편하게'의 범위는 매우 관대하다. 그가 나에게 복장에 관하여 저런 식으로 정죄하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뭔가 다른 쌓인 게 있는 게 분명한데 그걸 내 복장에 대한 코멘트로 얄궂게 드러낸 것 같았다. 그걸 받아주기엔 나도 지금 쌓인 게 많다.
"어. 알았어."
나는 대화를 종료시켰다. 그리고 친구네 베이비샤워 가는 길에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이유 없이 저런 못난이 모습을 하고 있는 날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를 한 없이 혼자 놔둔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서 회복한다. 언젠가 넷플릭스에서 봤던 문어와 비슷한 행동 패턴이다 (My Octopus Teacher, 2020, 다큐에서 문어는 몸에 상처를 입으면 나을 때까지 혼자 숨어 지내다 회복되면 밖으로 나온다.).
파티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20대 - 40대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그 풍경은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웠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혼자 있기를 갈망하는 성향이 있는데 어제는 몸이 힘든데도 그냥 어울려 노는 게 좋은 날이었다.
그 여파로 남편과 냉전중이던 상황을 잠시 까먹은 나는 남편이 굽고 있던 햄버거 패티를 얻으러 가 버렸고, 싸운 거 까먹은 김에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 햄버거 맛있다고 사람들이 난리네. 버섯은 어떻게 구웠어?"
"그냥 버터에 구웠지. 맛있어? 춥지? 많이 먹어!"
어디선가 잘 회복하고 돌아온 문어 남편도 평상시의 따뜻한 모습으로 나를 맞아준다. 사람들이 추워서 오돌오돌 떠는 와중에 자기가 구워 낸 따뜻한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힐링을 했나 보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글 마무리가 되지 않아 아침에 품고 있던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짊어지고 나갔다. 강렬한 햇살이 피부에 닿자마자 쓰레기들은 완전 연소해버렸고, 힘든 몸 끌고 나오느라 수고했다고, 좋은 결정을 내렸다고 햇살은 나에게 따스한 칭찬을 퍼부었다.
걸으면서 어제 만난 한 동생이 생각났다. 그녀는 밀레니얼과 젠지 (Gen Z)의 차이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자기네들은 '깨어난 세대'라며 요즘 그들 사이에서 "awoke(깨어난)"이라는 단어가 종래의 문법을 벗어나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깨방정을 떨면서 설명하는데 정말 귀여웠다. 나도 저런 말랑말랑한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말랑말랑한 것들은 딱딱한 것보다 깨어있다. 그녀는 옳았다.
햇살은 모든 것을 리셋시켜 다시 말랑말랑하게 한다. 햇살을 받아 다시 말랑말랑해진 나는 남편을 위한 저녁 메뉴를 궁리할 힘이 생겼다. 오늘 저녁은 경상도식 무밥이다.
어제 햄버거를 너무 많이 먹었다.
#베이비샤워 #캘리그래피 #미국이민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