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웃참 챌린지
나는 웃음이 많고 한번 터지면 잘 못 참는다.
어렸을 땐 낙엽만 굴러도 웃는 나이라서 그렇겠거니 했으나 작년에 마흔이 되고도 낙엽 슬랩스틱에 환호하는 나를 보며 '사람은 잘 안 변한다'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웃음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일수도 있지만 사실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할 때가 더 많다.
발단은 남편이 학교에서 따온 아보카도.
열 개 정도를 따왔는데 마트에서 파는 것들보다 묵직했다.
"여보, 그거 유기농이라 씨가 좀 클 수도 있어. 먹는데 참조해!"
'씨가 클 수도'있다는 말에 혼자 조용히 웃음이 터졌다.
이 집 저 집 아보카도 얻어먹으면서 씨 큰 아보카도를 이미 많이 접해본 터라 그들의 터무니없이 웃긴 속 모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트에 파는 것과는 견줄 수 없이 다들 자유로운 영혼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어떤 아보카도는 과육 부분이 2mm에 불과한 녀석들도 있었고, 어떤 녀석은 씨가 너무나도 작거나 없어서(!) 뜻밖의 혜자로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남편이 아보카도를 가져 온 그 날은 마침 몇 달 전 예약해 둔 정기 검진받는 날이었다.
병원은 헐리우드 쪽에 있었고, 새 건물이었다. 도착해 보니 집에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린데 남편은 30분 걸린다며 매사 여유 넘치는 나를 감안하여 선제적으로 지각을 차단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처럼 깡마른 몸매의 동양 여성이셨는데 또랑또랑한 눈매와 말투를 지닌 전교 1등 하는 관상의 소유자였다.
"어디 특별히 아픈 데가 있나요?"
"별다른 건 없는데 가끔 무릎에서 소리가 나고 골반뼈도 좀 아플 때가 있고 등도 당기고, 피곤하면 어지러운 정도예요."
"그럼 무릎부터 한번 살펴볼까요?"
의사 선생님은 내 무릎을 요리조리 주물러가며 폈다 꺾다를 반복하셨다. 무릎의 동그란 뚜껑 부분을 만지고 계셨는데 별안간 그 동그란 부분으로 인해 커다란 아보카도 씨가 떠올랐다.
나는 1차 위기에 처했으나 다 큰 어른이므로 심호흡 한 번으로 웃음을 제압했다.
"골반뼈도 한번 볼까요?"
의사 선생님이 골반뼈를 만지기 시작하는데 이건 참을 새도 없이 '아하핳!' 육성이 터졌다.
나는 골반뼈가 이렇게 간지러운 부위인지 평생 모르고 살았기에 너무도 안일한 자세로 내 골반뼈를 순순히 내드린 것이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간지러워서..."
의사 선생님도 터지셨고 둘 다 터진 김에 선생님은 웃어가며 열심히 터치를 하셨다.
그렇게 둘이 깔깔대다 흉부를 살펴볼 차례가 되었다.
나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다.
'이건 의료행위다. 날 간지럽히는 게 아니다. 나는 내 가슴의 안위를 바라기에 의사 선생님께 내 가슴을 잠시 양도한다. 이건 진짜 웃으면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이 악물고 아보카도 씨를 생각하지 않았고, 진찰이 끝나자 볼살 상피세포가 만여 개 정도 깨물렸음을 알 수 있었다. 값진 승리였다.
나는 참아야 했던 웃음의 설움을 차에서 남편과 함께 터뜨렸다.
오늘 기분이 좀 우울하신 분들은 구글에 'avocado big pit'이라고 꼭 한번 검색해 보시면 좋겠다.
한글로 검색하면 전 세계의 웃긴 아보카도들을 만날 수 없으므로 꼭 구글에 영어로 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미국생활 #실버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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