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를 추모하며] 방준석 '우산 속의 우정'

by 김성대


책 두 권에 영화 『라디오 스타』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니, 관련한 것이라기보단 '등장한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한 권은 내 첫 단행본 『지금 내게 필요한 멜로디』였고, 다른 한 권은 지인들과 함께 쓴 『불현듯, 록 발라드』였다.


'이럴 땐 이런 음악'을 콘셉트로 잡은 앞 책에선 '만남'이라는 챕터에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를 다루며 『라디오 스타』를 언급했는데, 그 글에 배우 안성기 이야기는 없었다. 책 제목 그대로 '살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록 발라드'를 콘셉트로 잡은 뒤 책에서도 <비와 당신>에 관해 쓰며 나는 안성기에 대해선 '한때 잘 나갔던 퇴물 로커의 매니저' 정도로만 짧게 언급했을 따름이다.


사실 다뤄야 할 주제에 집중해서 그렇지, 나는 어릴 때부터 배우 안성기를 좋아했다. 특히 『라디오 스타』에서 맡은 매니저 박민수 역할은 『고래사냥』 의 왕초 이후 내가 가장 가지고 싶던 혹은 따르고 싶은 '형'의 모습이어서 늘 마음속에 담아둔 캐릭터였다. 이렇게 생각보다 일찍 가실 줄 알았다면 박민수에 관해서도 좀 써넣을 것을. 미련한 후회는 늘 때가 지난 뒤 찾아온다.


사람들이 배우 안성기를 좋아한 이유를 두 가지로 거칠게 줄인다면 청춘과 친근함일 것이다. 톤은 전혀 다르되 『만다라』종교와 『고래사냥』해학에서 그의 열연을 통해 우린 청춘이 지닌 고뇌를 만났고, 『라디오 스타』에서 관객들은 누구나가 곁에 두고 싶어 할 보편적 인간미를 체험했다. 어쩌면 배창호가 연출한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영민은 배우 안성기의 그런 장점을 압축해 놓은 단 한 편일지도 모른다. 저기 대문에 걸어둔 사진이 바로 그 시절 것으로, 고인의 부인은 "따뜻한 눈빛과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가장 '그 다운' 모습"이라며 저 사진을 영정으로 썼다. 『하얀 전쟁』이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진지한 면모도 너무 좋아하지만, 나는 안성기의 저런 푸근하고 따뜻한 매력에 더 빠져들었고 지금도 저 영화들을 다시 꺼내보곤 한다.


『우상의 눈물』을 쓴 작가 전상국은 "읽은 사람이 그 소설을 진짜라고 믿게 만들어 현실 그 이상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작품"을 좋은 소설이라고 했다. 좋은 배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번 만나고 나면 현실을 넘은 현실을 사색하게 만드는 캐릭터. 현실 아닌 현실에서 만난 듯한 사람. 나에겐 안성기가 연기한 역할들이 그랬다. 배우 김형일이 말한 대로 고인은 그래서 "배우가 배우 같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사람" 같았다. 고인의 경우, 영화 속 인물과 스크린 밖의 인물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고인의 부고를 듣고 자연스레 『라디오 스타』 OST를 틀었다. 안성기와 음악을 이야기하려면 『깊고 푸른 밤』을 열어젖혔던 딥 퍼플의 <Highway Star>나 『고래사냥』을 깨알 같이 수놓은 김수철의 음악, 『바람 불어 좋은 날』에 흐른 마이클 잭슨의 <Don't Stop 'Til You Get Enough>도 꺼내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안성기의 죽마고우였던 조용필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도 실려 있는 『라디오 스타』 사운드트랙 속 <우산 속의 우정>을 제일 듣고 싶다. 음악감독 방준석이 쓴 영화의 주제가 <비와 당신>을 스트링과 피아노로 편곡한, 고인이 떠난 뒤 SNS 알고리즘에 수도 없이 올라온 『라디오 스타』의 마지막 장면에 흐른 바로 그 소품곡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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