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d of Me》 PJ 하비
지금 나는 『너바나 평전』가제을 쓰고 있다. 이 글은 잠시 머리를 식히는 차원에서 끄적이는 리뷰다. 이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너바나 글을 쓰다 커트 코베인이 PJ 하비의 콘서트를 보러 간 이야기와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때는 1993년 7월 9일. 장소는 시애틀 언더 더 레일Under the Rail이었다. 커트는 딸 프랜시스 빈 코베인의 보모였던 칼리 드윗Cali DeWitt과 함께 하비의 공연을 보러 가 백스테이지에서 그녀에게 너바나와의 콘서트를 제안했다 퇴짜를 맞았다. 커트는 그 일이 있은 뒤 더욱 하비의 팬이 되었고, 커트의 하비그러니까 ‘다른 여자’에 대한 관심에 아내 코트니 러브는 적잖이 불편해했다는 이야기다.
커트가 보러 간 그 콘서트의 전제가 바로 이 앨범 《Rid of Me》였다. 하비는 커트가 열렬히 사랑한 데뷔작 《Dry》에 이은 이 작품에서도 여성의 성적 욕구불만과 갈망, 불안과 원한 등을 다뤘다. 사운드는 가차 없는 날것이었고 보컬도 못지않게 원초적이었다. 혹자의 말대로 과연 그것은 “육체적 욕망과 감정적 학살의 마찰”이었다. ‘준비된 시한폭탄’으로 불린 컬트 아이콘 하비는 두 번째 앨범이 《Dry》보다 더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앨범이 될 것이라며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더 멀리 밀어붙일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음악으로 하려는 일이라면서.
내 작곡 스타일은 시골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곳에서 방목돼 성장했다는 사실과 강하게 결부돼 있어요. 자신의 음악으로 무한정 솔직해져도 괜찮다는 배짱 같은 걸 거기에서 얻을 수 있었죠. 내가 3인칭으로 곡을 쓰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건 나에겐 너무 부자연스러운 일이거든요.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걸 나를 위해 쓸 뿐, 특정 캐릭터 속에 내 생각을 투영하는 짓 따윈 안 해요. 물론 다양한 상황을 떠올리긴 하죠.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런 상황을 맞았을 때 과연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겁니다. 어쨌든 나는 순수하게 나 자신을 위해서만 곡을 써요. 내가 관심 있는 것만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흥미를 느끼지도 않는데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천착해 곡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PJ 하비
세간은 이른바 ‘앵그리 우먼’ 밴드들홀, 베이브스 인 토이랜드, 비키니 킬 등과 하비를 동류로 여겼지만 그건 너무 편리한 분류였다. 레즈비언을 겨냥했던 캐나다 격월지 『사이렌』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녀는 기본적으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싫어했다. 그런 프레임에 갇히면 득보단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1992년 『스핀』 11월호 기사가 인용한 것처럼 하비의 음악과 노랫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처음 느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었다. 하비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좋아하는데, 사랑의 다양한 측면뿐 아니라 그에 따른 고통에 주목하는 것에도 하비는 흥미를 느꼈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분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하비와 바르트는 닮았다.
하비의 베이시스트 스티브 본의 말처럼 이 음반은 블루스와 펑크, 그리고 비프하트Captain Beefheart풍 아방가르드 스톰프가 뒤섞인 작품이었다. 그건 어머니의 음악 취향 덕분에 형성된 하비의 음악 취향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밥 딜런의 열렬한 팬이었고하비는 2집에서 딜런의 <Highway ‘61 Revisited>를 커버했다. 하울링 울프, 비프하트, 캔드 히트, 존 리 후커, 스톤스The Rolling Stones도 많이 들으셨어요.”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의 의견대로 결국 <Snake>의 보틀넥 기타나 <Reeling>이 곡은 《Rid of Me》를 위해 준비했던 《4-Track Demos》에만 실렸다.의 갈기갈기 찢어지는 부기Boogie, 믹 재거의 우물쭈물한 보컬과 로버트 플랜트의 가성 사이를 오가는 하비의 보컬은 모두 블루스에서 파생된 결과물인 셈이다.
“성공은 아주 빨리 찾아왔고 난 너무 어렸어요. 모든 게 내가 감당하기엔 벅찬 지점에 도달했죠. 그때 난 잠시 멈추고《Dry》 투어를 멈추었다는 얘기다.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비가 말한 시골은 자신의 고향인 잉글랜드 남서부 도싯Dorset이었다. 그녀는 그곳에 있는 레스토랑 위층 아파트를 빌려 곡을 쓰면서 갑작스러운 성공에 따른 피로를 떨쳐냈다.
당시 하비는 하울링 울프, 톰 웨이츠, 픽시스와 70년대 후반 러시아 음악을 집중해서 들었다. 러시아 음악을 들은 이유는 레스토랑 주인 모친이 이전에 그곳에 살았던 러시아인이어서였는데, 하비는 러시아 곡들 중 하나를 <Hook>의 4트랙 데모에 샘플링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책도 여러 권 읽었으니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소설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샐린저의 『프래니와 주이』가 그것들이다.
스티브 본과 같이 하비의 고향 친구인 드러머 롭 엘리스의 말대로라면 기타, 키보드, 첼로를 연주하며 스캣으로 부르곤 했던 하비의 가사는 본능에 기댄 것이었고, 리허설이 곧 곡의 완성이었다. 음악 평론가 다나카 소이치로는 그걸 이렇게 정리했다. “기타는 노이즈로, 보컬은 관능보단 비장함을 전면에 내세웠고 리듬은 완만한 곡선미가 느껴지던 것에서 예리한 직선미로 탈바꿈했다.” 특이할 점은 하비가 도싯에 머물며 8개월 동안 오페라 레슨을 받은 것인데, 마침 은퇴한 오페라 가수 두 명이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하비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흡연과 과음으로 손상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들은 레슨이었다.
하비는 커트 코베인처럼 픽시스의 데뷔 앨범을 들었을 때부터 스티브 알비니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프로듀서 스티브의 커리어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마도 너바나의 『In Utero』일 것이다. 그녀는 《Rid of Me》에서 마침내 그 바람을 이룬다. “나는 그 생생한 사운드를 정말 원했어요. 실제 물건을 만지듯, 나뭇결 같은 그 느낌이 내 노래와 잘 어울릴 것 같았죠.” 한마디로 스티브는 드럼 소리를 드럼 소리 그대로 녹음할 줄 알았다. 그는 악기 본연의 소리를 살리려는 프로듀서였다. “룸의 자연스러운 잔향을 포착하려 방 곳곳에 마이크를 배치한 것만으로 스티브는 그걸 해냈죠.” 하비가 목격한 바는 곧 스티브만의 방법론이었다. 사이먼 레이놀즈는 그렇게 세팅된 《Rid of Me》의 드럼을 듣고 ‘존 보넘의 유령’을 언급했다.
스티브는 기본적으로 공연이나 리허설과 다른, 모든 걸 뜯어내고 바닥부터 새로 한다는 기대감을 저어했다. “밴드 활동을 직접 해본 끝에스티브는 80년대 초반부터 빅 블랙, 레이프맨, 셸락 같은 밴드들을 거친 뮤지션이기도 했다. 이른 내 엔지니어링 미학은 완전한 세팅 뒤 밴드가 합주한 걸 그대로 녹음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티브의 스타일은 『인디펜던트』에서 《Rid of Me》를 리뷰한 앤디 길이 지적했듯 <Rub ’Til It Bleeds>의 인트로 기타 연주 도중 누군가 한 기침 소리를 믹싱에서 그대로 살리는 쪽이었다. 날것의 미학을 추구하는 같은 방향을 공유한 하비의 밴드와 스티브는 숙소까지 딸린 미네소타 스튜디오Pachyderm Studios에서 머문 열흘 중 사흘을 써 녹음을 끝냈다. “음반은 오래 작업한다고 더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녹음 일정을 짧게 잡았습니다. 더 많은 시간 할애는 앨범에 지나친 신경을 쓰게 해 오히려 작품에 해를 끼칠 수 있거든요.” 알비니의 철학은 옳았다.
《Rid of Me》 커버 사진은 상체를 벗은 하비가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공중으로 휘두르는 찰나를 잡고 있다. 이 강렬한 컷은 하비의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마리아 모나츠가 브리스톨에 있던 자신의 아파트 욕실에서 찍은 것으로, 욕실 크기가 작았던 탓에 마리아는 하비의 반대편 벽에 카메라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 셔터를 눌렀고, 유일한 조명이었던 카메라 플래시가 “히스테리, 광기, 분노, 수치와 재미, 공포가 뒤범벅된” 하비의 모습을 멋지게 잡아냈다. 스물네 살 PJ 하비는 그렇게 음악뿐 아니라 이미지로도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앨라니스 모리셋부터 캐런 오Karen O에게까지 문을 열어준 피제이 하비. 그건 남편의 열광에 질투한 코트니 러브에게도 비슷하게 작용한 것 같다. 코트니는 《Rid of Me》를 듣고 이런 소감을 남겼다. “내가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록스타는 폴리 진 하비Polly Jean Harvey예요. 나는 그녀가 경험하는 순수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커트니Kourtney 부부 외에도 엘비스 코스텔로, 마돈나, 존 본 조비도 이 앨범에 비슷한 찬사를 보냈다. 심지어 자신의 것과 닮은 음악을 들은 패티 스미스마저도 “나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음악”이라고 인정했다. 《Rid of Me》는 PJ 하비의 이른 걸작, 정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