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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는 다른 습관을 위하여

<미국대중음악> 역자 김영대 인터뷰

by 김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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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악을 '듣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음악은 늘 배경으로서 음악이었지, 어떤 분석이나 분해의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들은' 것일까? 당신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진짜 들은 적이 있는가? 스티비 원더의 'superstition'이 쪼갠 리듬을 제대로 논해 본 적은? 그 곡들을 누가 만들었고 어디서 만들었고,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아마 우리는 잊고 살았을 확률이 높다. 불행하게도 음악은 영화처럼, 적어도 대한민국 대중에겐 '분석'의 대상이 아니었다. 음악은 그저 들어서 좋으면 그만, 별로이면 '스킵'의 대상일 뿐이었다. 슬프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슬픈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도울 책 한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바로 <미국 대중음악: 민스트럴시부터 힙합까지, 200년의 연대기(원제: American Popular Music)>이다. 음악을 좋다, 나쁘다라는 단순 감상에서 벗어나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이 책은 "익숙했던 음악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낯설게 느껴지던 음악의 매력에는 귀가 열리게 함으로써 듣기의 즐거움을 배가해주는, 지금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고도 가장 완벽한 안내서"이다. 이런 귀중한 '안내서'를 국내로 안내해준 이 책의 역자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를 만났다.


미국대중음악2.jpg <미국대중음악> 원서


번역은 얼마나 걸렸나? 분량이 분량인 만큼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처음 이 책의 번역에 관해 출판사와 이야기를 나눈 게 2012년 이맘때로 기억하는데, 햇수로만 보면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실제로 번역에 걸린 시간은 6개월 정도였던 것 같고, 딱 그 만큼의 시간을 주석과 감수에 들였다. 일단 분량이 좀 심하고...(웃음) 가장 힘들었던 점이라면 역시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갖는 부담감이랄까,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음악 평론가라며 이런 오역도 했어? 혹시라도 이런 말을 들을까봐 까다롭게 한 문장 한 문장을 공들여 번역했다. 이것은 다른 전문 번역가들이 더 잘 알겠지만, 분명 읽기엔 쉬운 문장인데 막상 번역하면 어려운 스타일의 글이 있다. 딱 이 책이 그랬다.


원서가 음악학자와 인류학자의 공저여서인지 역자 배치도 같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부분인데, 결과적으로 그런 뜻 밖의 우연이 만들어졌다. 실은 공역자인 조일동 선생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대학원 선후배로 만났다. 음악학으로 유학을 오긴 했지만 어쨌든 비슷한 뿌리인 셈이다. 번역 과정에서도 그런 과정에서 원서와의 시너지가 조금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나 더 재미있는 인연을 말하자면 한양대 시절 우리 두 사람의 지도 교수였던 정병호 교수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크리스토퍼 워터먼의 미국 유학시절 친구이자 동기이기도 하다.


'은사' 래리 스타에게도 번역본을 보여주었나? 반응은?

책이 아직 배달이 안 와서(웃음) 보여주지는 못했다. 소식은 일찌감치 전해주었고, 대단히 흥분하는 눈치다. 이 책 번역을 기획하는 당시부터 원출판사인 옥스포드와 이야기가 잘 될 수 있게 도움을 받았다. 참고로 한국판이 첫 인터내셔널 판이라고 한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 책을 교재로 썼을 당시 수업 분위기를 이야기해달라. 충격을 받았다고?

지금까지 래리 스타 교수의 학생으로 한 번, 조교로서 한 번, 강사로서 세 학기 정도 강의를 한 경험이 있다. 처음 가장 놀랐던 것은, 음악이라는 텍스트를 대하는 그의 독창적인 방식이었다. 첫 수업에 템테이션스의 'My girl'을 갑자기 틀더니, 두 번째 버스(verse)에서 스트링이 더해지는 것을 들었냐고 대뜸 학생들에게 묻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했는데, 음악을 그냥 흘려듣는 것과 집중해서 듣는 것, 비평적으로 듣는 것의 차이점을 설명하려는 의도였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또 한 번은 음대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원 수업이었는데, 비틀즈의 'There's a place'라는 노래를 틀더니 갑자기 첫 코드가 뭐냐고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거다. 질문도 좀 황당했는데, 음대생들답게 메이저세븐 코드인 걸 맞힌 학생도 있었다는 게 함정이다. 그러더니 래리 스타 왈, 당시에 팝 음악에서 메이저세븐으로 첫 음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었다면서, 이것이 비틀즈 음악이 가진 숨겨진 창의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구나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역자로서 이 책이 다른 대중음악서와 가장 차별되는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저자들은 "주의 깊은 음악 감상, 이를 통한 대중음악의 역사 이해, 또 그 안의 무수한 인물 이해"를 이 책의 주된 목표라고 했는데?

단연 음악을 음악의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음악은 그 본위가 사운드라는 것이 지금까지 평론가들의 지속적인 주장이었고, 나도 그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은 대중음악에 전통적인 음악학적 분석법을 사용하지 못할 까닭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사운드라는 것은 추상적이다. 단순히 편곡이 어떻다가 아니라, 어떤 의도에서 그 편곡이 사용되었으며 그 편곡이 곡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음악에서 작곡이라는 요소의 기능이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선율과 프레이즈에는 음악인들의 다양한 의도가 숨어 있다. 그것을 적어도 해석해보려는 '시도'는 해야 한다. 이 책의 두 번째 성과는 모든 음악은 연결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단절되어 있는 장르나 흐름은 없다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르주의에 빠져서 그것이 어느 순간 툭 떨어진 듯 독립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은 그 역사의 연속성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음악의 역사의 각 단계에 동일한 분석의 틀, 이를테면 주변부/중심부, 테크놀로지, 사회문화, 정체성 등을 지속적으로 적용시켜 최대한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그간 진부하게 음악을 해석해온 내 스스로를 반성케 하는 부분이다.


가수와 연주자에 주로 시선을 돌리는 한국(인)의 정서상 엔지니어와 프로듀서, 레이블과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분석해나가는 음악적 관점은 확실히 한국 대중에게 신선한 느낌을 줄 것 같다. 사실 이러한 관점은 대단히 중요한 것 아닌가?

이 책을 번역하며, 또 강의하며 새삼 느낀 것은 명곡이나 명연주의 담론에서 나와 이제는 더 넓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명인이고, 어느 것이 명곡이고 하는 것은 이미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다. 그보다는 그 음악을 만든 다양한 주체들과, 그들이 미친 영향, 그리고 산업 전반에 걸친 변화와 영향관계를 추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사는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라는 말에 동의하는지?

대중음악이기에 그렇다. 과소평가 될 이유도, 과대평가 되어서도 곤란한.


재즈총론.jpg 마크 C. 그리들리의 역작 <재즈총론> 원서


나는 이 책에서 '리스닝 차트'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순간 마크 C. 그리들리의 <재즈총론>이 떠올랐는데, 곡의 구조를 분석하는(또는 할 줄 아는)것은 평론가에게는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질로서, 일반인에게는 음악을 듣는 또 다른 재미로서 의미를 갖지 않나. 가령 신중현의 '미인' 기타 리프를 해부하고, 곡 구성을 분해해나가는 식으로 말이다. 한국의 대중음악서는 아직 이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향후 역자 스스로 직접 이런 책을 엮어볼 생각은 없는지?

리스닝 차트를 처음 책에 집어넣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대중음악에 왜 그런 고전음악의 분석법을 사용해야 하나요?"였다고 한다. 래리 스타의 대답은 이랬다. "왜 안돼?" 필요 없어서 하지 않는지, 모르니까 못 하는 건지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곡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불필요하거나 덜 중요한 분석틀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중음악은 영화와는 달리 즉흥적이며 순간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요소가 결코 우연이나 비논리적인 전개로 나왔다고 볼 이유는 없다. 그래서 일단 곡의 화성, 박자, 멜로디 등 기본 요소를 분석해 나열해 놓는 것은 평론 이전에 공부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법으로 다시 돌아본 한국 대중음악사를 쓰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아직은 능력이나 공부가 모자라다.


음악이 대중의 일상에 스미는, 나아가 대중의 역사가 되어나가는 풍경을 장르, 뮤지션, 그리고 각종 사건들을 통해 사유해나가는 모습은 이 책의 압권이다. 역자가 아닌 독자로서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해달라.

미국이 부럽다.(웃음) 음악도 부럽지만, 이런 책이 나온다는 것이. 어쨌든 이러한 분석과 사유가 가능한 것도 대중음악의 본산인 미국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대중음악은 그 텍스트만을 본다면 '곡'이고, 듣는 이들과의 관계에선 '소통'이며, 사회문화의 '반영'이고, 뮤지션에게는 '표현'이자 '실천'이다. 이 모두를 책 한권으로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글쟁이이기 이전에 팝 '빠돌이'로서 반가웠다.


이 책의 내용을 한국 대중음악역사에도 대입할 수 있다고 보는지?

직접적인 대입은 어렵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쓰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장르나 스타일이 발전이 내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미국 대중음악의 '상륙사'라고 하지 않나. 혼종성과 자체적인 발전 과정이 있지만 미국, 일본 음악과의 영향관계 없이 설명하긴 힘들다. 또한 한국에는 인종의 팩터가 없다. 중심부나 주변부, 혹은 로컬이라는 개념도 희박하다. 다만 이 책이 도입했던 테크놀로지나 정체성 등은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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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로서 대중음악평론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근래 모 뮤지션의 인터뷰를 보면 평론글에 화려한 수사들만 난무하는 느낌(심지어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글을 읽어야 할 정도로)이 든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지식과 관점, 문장력과 분석력을 모두 갖추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까?

평론은 의미 분석에 이은 가치 판단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대중음악 평론이 무엇보다도 취약한 것이 의미 분석이다. 화려한 문장으로 감상을 표현하기 전에, 좋고 싫음을 점수화 하기 전에, 내 주장을 하기 전에, 먼저 음악을 음악다운 언어와 틀로 최대한 알아듣게 설명해 내는 것이 순서다. 그래서 지식과 현장 경험이 필수다. 그러고 난 다음에서 개개인의 독특한 관점과 평가가 힘을 받을 수 있다. 지식적 맥락이 없거나 화려한 문장만 살아 있는 글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평론을 개인 감상 정도로 여기는 글을 가끔 보는데, 속된말로 '안물안궁' 아닌가 싶다. 그 수준을 뛰어 넘는 것이 평론가들의 숙제다.


마지막으로 평론가 김영대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저자도 아니고 역자에게 이런 과분한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주어 쑥스럽기만 하다. 대중음악의 현재를 기록하는 일, 과거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일, 외국의 훌륭한 저작을 소개하는 일 모두에 관심이 있다. 역부족이지만. 일단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정리해 미국 독자들에게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영어다(웃음). 빠르면 내년이나 후년에 출간될 예정이고. 비틀즈의 일대기를 정리한 <Tune In>이라는 책 번역을 곧 시작할 예정이다. 비틀즈의 유일한 '사가'라고 할 사람이 쓴 책으로, 반지의 제왕도 아니고 트릴로지로 기획되었는데 아직 1권만 나왔다. 1권만 무려 900여쪽이다. 그리고, 대중음악에 대해 떠드는 팟캐스트를 하고 싶다. 좋은 사람과 기회가 있다면.


역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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