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종 음향감독
사람에게 옷이 날개이듯 음악, 더 정확히는 소리에도 옷이 필요하다. 사운드엔지니어가 소리에 어떤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그 음악이 훨훨 날아오를지 픽 꼬꾸라질지가 결정되는 만큼,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은 사실상 음악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소리의 사자(使者)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프로 드러머를 병행하고 있는 김보종 음향감독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드럼과 녹음 스튜디오 운영 사이에서 답보 상태였던 '음악의 길'을 사운드엔지니어 교육기관인 레코드 팩토리를 통해 찾아낸 뒤 비로소 그 길을 걸어나갈 수 있었다. 무슨 일이건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는 본인의 성격을 장점으로 끌어올린 김 씨는 금난새와 유진박, 김현중과 성시경, 김태우와 IOI, 박정현과 트와이스, 에이핑크와 김연우, 효린과 현아, 마마무와 러블리즈, 자우림 등 유명인들과 작업하며 어느새 이 바닥의 실력자가 됐다. 30대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제법 많은 걸 이룬 그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물었다.
▲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걸로 안다. 옛날 얘기 좀 해보자.
초등학교는 반성초등학교에 입학해 사천 곤양초등학교에서 졸업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진주에서 졸업했다.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경남정보고, 한국 국제대학교를 나왔다.
▲학창시절에도 음악에 관심이 많았나.
초등학교 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후 김사랑을 듣고 밴드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다 나우누리에서 다운로드 받은 엑스 재팬의 요시키를 보고 드럼을 치고 싶어져 진주교 끝에 있던 악기사에 "드럼 배우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물었다. 그게 시작이다.
▲가장 처음 접한 뮤지션, 음반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그 사람과 앨범이 보종님에게 끼친 영향의 정도는.
가장 처음 접한 뮤지션이라면 서태지였던 것 같다. 물론 그냥 따라 부르기 좋다는 정도였지, 그의 곡들에서 큰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어쨌건 처음 카세트 테잎을 산 건 서태지였다. 어릴 때 좋아했던 팀은 에이치오티, 에스이에스, 김사랑, 엑스 재팬이었고 이후 칠암동 역전 사거리 ‘하비클럽’이란 곳에서 팔던 각종 일본록 음반들, 그리고 소리바다에서 다운로드 받은 음악들이 지금까지도 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말한 것처럼 ‘The Last Live’에서 목에 깁스하고 공연한 엑스 재팬의 요시키를 보고 드럼을 배웠다. 그럼 어릴 때부터 밴드 생활을 한 것인가.
진주교 인근에 있던 악기사 관계자께서 '정연삼 음악학원'이란 곳이 다리 건너에 있다고 했다. 거기서 드럼을 처음 배우게 됐고, 학원에서 소개해준 멤버끼리 연주회 같은 걸 한 게 첫 밴드 경험이었다. 이후엔 ‘102밴드’라는 팀으로 커버곡들을 공연했고 연암공대 첨성대 동아리, 경상대 모 밴드 동아리, 그리고 삼현여고 밴드 공연 등을 거들어 연주했다.
▲23살 때 손에 문제가 생겨 드럼 연주가 힘들게 돼 우울증을 겪다 진주로 와 7개월을 보낸 것으로 안다. 그때 베이스 연습을 해서 ‘시험 삼아’ 대학 입시를 치렀다 들었는데, 당시 상황이 궁금하다.
이 얘기는 최측근만 알텐데, 놀랍다. 정확히는 23살 때 손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 애초 왼손 엄지가 드럼 연주에 쓸 만한 손가락이 아니었다. 여튼 그때 병원에서 진단 받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서울에서 지내다 정신과 다녀온 직후 곧바로 진주로 내려왔다. "음악 안 할란다" 하고 쉬어봤는데 음악 관두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뭔가 쑥스러웠는지 "시험 삼아"라고 말했었나본데, 나름 사활을 걸고 했다. 이틀에 하루씩 자는 일이 다반사였고, 일상에서 베이스를 메고 걸어 다녔다. 시험 결과는 낙방이었다.(웃음)
▲다시 대학에서 컴퓨터 음악(작곡)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대학 다니며 악기도 팔아보고 스튜디오도 열었다고 하던데. 그곳이 ‘지방’이라고 했다. 어디였나.
수도권 대학 못가는 이상 20살에 입학했던 백제예술대학은 집에서 멀기도 하고 해서 한국 국제대학교 음악과 실용음악 작곡으로 입학했다. 이리저리 3학년이 되고 작곡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낙원상가 'MNS'라는 악기 판매사에서 짧게 일했었다. 학교에 취업한다고 했더니 낮은 학점을 매긴 뒤 일하라며 보내주더라.(웃음) 그러다 어머니의 마이너스 통장을 빌려 야심차게 '텐트랙 스튜디오'를 동성동 청소년수련관 맞은편에 오픈했지만 지인 전용 위닝 게임방으로 전락 후 순식간에 접었다.
▲재즈드러머를 고민한 적이 있다고? 드럼 실력이 상당한 것 같다. 재즈 드러머 중엔 누굴 좋아하나.
사실 지금에서는 왜 그런 고민을 했나 싶을 정도로 재즈를 안 듣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재즈 드러머는 없고 영향받은 드러머는 김선중, 임용훈 드러머 정도다. 외국 드러머는 그냥 감상만 했다.
▲전범선과 양반들에서 드럼을 쳤다. 프로 드러머라는 얘긴데, 드러머 활동은 계속 병행해나갈 것인가.
별일 없으면 그럴 생각이다.
▲전범선과 양반들에 들어가게 된 계기를 알고 싶다. 그 전에도 프로 밴드에서 연주한 적이 있는 건가.
홍대 프리버드 공연장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일을 했었는데 당시 전범선과 양반들이 그들의 첫 공연(?)을 했었다. 그때 처음 알게됐고 그들의 음반 녹음도 했다. 그렇게 처음엔 엔지니어와 클라이언트 관계로 시작했는데, 밴드가 1집 활동을 마무리 할 때 멤버였던 전상용군이 로스쿨 준비로 밴드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전범선이 유학을 갔다오면서 페이스북 메시지로 밴드 하자고 꼬드겼다. 이전에는 바나나코에서 드럼을 연주한 게 데뷔였고 유일했다.
▲ 레코딩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집에서 반대는 없었나.
텐트랙에서 오락이나 하며 놀고있는 모습을 인식한 뒤로 돈 벌 거리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 녹음실 직원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마침 페이스북에서 레코드 팩토리라는 사운드엔지니어 교육기관 광고를 보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제가 하는 일에 반대를 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모든 일에 반대했지만 나는 그 반대에 신경쓰지 않았다.
▲레코드 팩토리 역사에서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열정적인 수강생이었던 걸로 안다. 당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한 건가.
그냥 하던대로였는데 잘 맞아 다행이었다. 성격 자체가 끝까지 파는 성격이라 어떤 일이건 시작하면 일에 대한 이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인다. 그때가 골든 타임이고 그 타이밍에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게 중요한데 당시 레코드 팩토리 대표가 프로 의식이 뛰어난 사람이어서 '저 사람이 인정하는 인재가 되리라'는 마음가짐으로 공부했다. 저는 어떤 분야의 권위자나 실력자의 눈에 들고 그를 보조하고 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실력자를 보조할 때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해내는 건 업계 표준을 익히는 빠른 방법이고, 잘 해내지 못하면 업계 표준과 멀다고 보는 편이다. 그럴 땐 그 일을 관두거나 자기 사무실을 차리는 게 좋다고 보는 쪽이다.
▲음악에서 ‘엔지니어’의 개념 및 역할을 일반인들에게 소개 좀 해 달라. 레코딩, 믹싱, 사운드 엔지니어는 사실 다 다른 일을 하지 않나.
엔지니어도 결국 손님을 대하는 서비스업이다. 필요에 따라 그에 걸맞는 결과물이 나오면 된다. 레코딩 엔지니어는 주로 녹음실이나 공연장 공연실황 녹음을 하는데 연주자 혹은 가수, 성우의 소리를 컴퓨터 파일로 만든다. 또한 클라이언트가 쾌적하게 녹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하고, 음반이건 광고건 목표로 하는 결과물에 잘 어울릴 만한 소리를 녹음해내야 한다.
스튜디오 믹싱 엔지니어는 녹음된 소리나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소리들을 취합하고 섞어내며, 악기간 균형을 조정하는 일을 한다. 피아노와 목소리로 이루어진 간소한 구성의 곡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몇 십 개 소리가 나오는 곡이 있기도 한데 그것들을 섞었을 때 조화롭게 들리게 하는 일 또는 중요도에 따라 크거나 작게 하는 일들을 한다.
그 외 컨셉에 따라 올드한 소리로 만들거나 모던한 사운드로 만들거나 하는 등의 요구를 받곤 한다. 예를 들면 "따뜻하지만 시원한 소리로 만들어 줘야 한다" 같은.
▲지금까지 엔지니어로서 관여한 뮤지션들 명단을 좀 나열해달라. 프로필을 알고 싶다는 얘기다.
금난새, 볼프강 무스필, 래리 그레나디어, 유진박, 안숙선, 줄리아드림, 전범선과 양반들, 김현중, 성시경, 장현준, 김태우, IOI, 첸백시, 안예은, 더 모노톤즈, 박정현, 초아, 피터팬 컴플렉스, 디어클라우드, 성규, 플로우식, 트와이스, 에이핑크, 휘인, 김연우, 옥상달빛, 조현아, 효린, 현아, 마마무, 러블리즈, 자우림, 에피톤 프로젝트, 손나은, 붐, 청하, 에이퍼즈, 몽키즈, 윤슬, 류지수 등이다.
▲특정 뮤지션 투어에서도 실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안다. 라이브 엔지니어 일과 스튜디오 엔지니어 일은 어떤 차이가 있나. 두 일의 장단점이라면.
스튜디오일은 엉덩이 싸움이다. 좋은 의자가 필수다. 허먼밀러 에어론 풀 의자는 150만원이 넘는다. 그래도 꼭 사길 권유한다. 지금 인테리어 업체가 대충 납품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허리가 아프다.
스튜디오 업무의 장점은 차분히 자기 페이스대로 작업을 하거나 많아도 두 세 사람 안팎과 작업을 하기때문에 소통도 원활해 원하는 대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과물의 질 조절이 잘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라이브 업무는 생동감 넘치는 현장과 역동감이 매력이고 수많은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하기에 스스로가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느껴져 좋다. 김현중 공연이 아니더라도 다수 가수들 공연에 나가곤 하는데, 가수들의 라이브에서 기량을 보는 것이나 관객들과 함께 하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스튜디오 업무의 단점은 잘 모르겠고, 라이브 현장에선 실수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또한 클래식, 재즈, 록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을 할 텐데 각 장르마다 중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이 따로 있을 것 같다. 어떤가.
클래식의 경우에는 후반 작업보단 공간과 마이크 선별, 마이크 위치 선정에서 게임이 끝나는 편이다. 그 외에도 공간 영향을 많이 받느냐 덜 받느냐, 동시에 받느냐 따로 받느냐 등 주의할 점들이 있긴 한데, 보통 고객의 요구와 과거 명반들에서 나오는 소리에 근접하게 하는 편이다.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 고비가 있었다면.
녹음실이나 공연장을 다니다가 일할 곳을 잃어 강제로 프리랜서 엔지니어를 하게 됐는데, 두어 달 가까이 집에만 누워 있었던 것 같다. 망했나 싶었다.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엔지니어가 있다면? 그 이유도 궁금하다.
남송지 엔지니어라고,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사수가 있는데 아직도 롤모델이다. 그가 만든 소리엔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
▲주로 쓰는 장비 세팅을 간단히 설명해줄 수 있나.
간단히, 라고는 해도 음향 잡지에서나 나올 것 같은 대답이 되어버릴 듯 싶지만. 'Barefoot 27' 'Kii Audio Three' 'ATC SCM110 ASL' 'HDX' 등을 주로 쓴다. 간단하거나 웹용 컨텐츠 같은 작업은 컴퓨터로만 끝내는 편이고, 아티스트의 작품들 경우엔 콘솔이라 부르는 장비를 쓰거나 섞어 쓰기도 하고, 여러 가지 환경으로 작업한다.
▲이건 좀 원론적인 질문인데 음악 엔지니어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과거 “음악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 걸로 아는데.
제 경우에는 창작 활동보단 남의 작품을 거들었을 때 효과가 좋은 편이다. 내가 만든 것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반해, 매력적인 작품을 만드는 사람과 같이 작업할 때는 굉장히 많은 것들을 거들어 줄 수 있다.
▲진주에서 해보고 싶거나 기여하고 싶은 일은 없나. 진주라는 도시는 보종님에게 어떤 곳인가.
진주에도 음향에 관심있는 분들이 있을 텐데, 기회가 된다면 많은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진주에서 같이 음악하던 친구들, 선생님들은 아직까지 연락하며 활동 및 일에 계속 도움이 되거나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한다. 제 고향은 부산이지만 진주를 더 고향같이 생각하고 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뮤지션은 누구인가. 그리고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지 끝으로 말해 달라.
지금은 펜잘 광고 나레이션 녹음을 준비하고 있고, 20회 이상 월드투어도 준비 중이다. 대형녹음실 하나가 론칭될 계획인데 그곳에 입사해 음반 작업들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