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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12. 2020

도시의 밤을 닮은 재즈 '재즈 퓨전'

* 이 글은 지면 관계상 '축약 버전'으로 한국전력공사(KEPCO) 사보에도 실렸습니다.



‘재즈 퓨전’의 실체나 개념은 다소 모호하다. 역사에선 1970년대부터 유행한 재즈 록을 재즈 퓨전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실감하는 재즈 퓨전은 장르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크로스오버 양상에 더 가깝다. 그 전면적인 음악 사이 교류를 통해 재즈가 이루려는 건 물론 해당 장르의 대중화다. 이제 재즈는 록과 펑크(Funk), 라틴 음악과 솔(Soul) 뿐 아니라 클래식, 국악, 힙합, 댄스, 일렉트로닉, 월드뮤직 등 그 무엇과도 섞여 다른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다. 전통의 정통성 대신 전통의 융통성을 생존 전략으로 택한 재즈는 그렇게 대중 친화적, 대중 취향의 음악으로 거듭 나려는 노력을 지난 수 십년을 지나 지금도 해나가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나 빛과 소금은 그런 재즈 퓨전이 한국에 뿌리 내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국내 팬들이 목격한 첫 사례였다.


재즈, 록을 만나다


스윙이라는 대유행을 누리고 비밥이라는 혁신, 프리재즈라는 혁명을 겪은 뒤 다소 주춤했던 재즈가 60년대 후반 맞닥뜨린 첫 퓨전 대상은 바로 록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50년대 로큰롤, 로큰롤에 록(Rock)이라는 새 이름표를 달아준 밥 딜런과 그 록의 부흥을 이끈 비틀즈의 1960년대를 지나 재즈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어쿠스틱 악기들에 플러그를 꽂아 만든 70년작 [Bitches Brew]를 기점으로 자신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장르를 관통하는 전류를 미래로 받아들인 재즈는 그렇게 새 시대를 맞았고 당시 주류였던 록과 대등한 주류로서 여태껏 살아남았다. 기타리스트 래리 코리엘의 회상처럼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그러니까 팝과 컨트리가 크로스오버 하던 그 시절 재즈 역시 웨스 몽고메리와 밥 딜런, 존 콜트레인과 비틀즈, 마일스 데이비스와 롤링 스톤스를 두루 사랑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70년작 [Bitches Brew]는 흔히 '재즈 퓨전의 시발점'으로 간주된다.


재즈 퓨전의 시발점 ‘Bitches Brew’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재즈 앨범 [Kind Of Blue]의 주인인 마일스 데이비스. 모던 재즈의 반복적 패턴에 질린 그는 결국 재즈 퓨전의 길까지 스스로 연다. 시작은 [In A Silent Way]였다. 마일스는 이 앨범에서 향후 대표 재즈 퓨전 밴드로 남을 웨더 리포트의 웨인 쇼터와 조 자비눌을 비롯해 존 맥러플린(기타), 칙 코리아(피아노), 허비 행콕(피아노), 데이브 홀랜드(베이스), 토니 윌리암스(드럼) 등 시쳇말로 ‘어벤저스급’ 라인업을 꾸려 재즈의 다음 운명을 이끌었다. 1969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길 에반스와 ‘재즈 기인’ 선 라가 신시사이저 같은 일렉트릭 악기들을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1년 뒤 문제작 [Bitches Brew]가 나온다. 이견 없이 누구나가 ‘재즈 퓨전의 출발’이라 일컫는 바로 그 앨범이다. 하지만 재즈 퓨전의 시작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는 27분에 이르는 타이틀 곡의 러닝 타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 [Bitches Brew]는 대중이 재즈에 주목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기 보단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위대한 뮤지션이 재즈의 다음 운명을 음악으로 점친 실험작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발매한 첫 해에 50만장이 팔렸다니. 지금 생각해봐도 갸우뚱 할 일이다.


차라리 이 앨범이 역사적인 이유는 어쩌면 [In A Silent Way]와 굵게 겹치는 참여 뮤지션들의 면면 때문일지 모른다. 앞서 말한 웨더 리포트에 맞먹는 대중적 인기를 누린 리턴 투 포에버의 선장 칙 코리아(피아노), 마일스가 따로 곡까지 헌정한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의 존 맥러플린과 드러머 빌리 콥햄, 레이블 ECM의 간판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과 얼마 전 생을 마감한 게리 피콕(베이스)의 스탠다드 트리오를 같이 이끈 드러머 잭 디조넷이 이 작품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록 밴드들, 예컨대 콜로세움과 시카고, 블러드 스웻 앤 티어스와 머더스 오브 인벤션은 이러한 ‘재즈 록’ 경향을 ‘록 재즈’로 되받아 머디 워터스와 지미 헨드릭스를 동경한 동시대 재즈 뮤지션들과 사실상 같은 길을 걸었다.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이 이끈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는 웨더 리포트와 쌍벽을 이룬 재즈 퓨전계의 보석이었다.


허비 행콕과 팻 메시니


허비 행콕. 마일스와 더불어 재즈 퓨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클래식과 펑키 하드밥을 넘나드는 그의 카멜레온 같은 음악 스타일은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을 재즈 록에 담금질한 앨범 [Head Hunters]와 일렉트로 펑크, 힙합에 손을 뻗은 83년작 [Future Shock]를 통해 그야말로 ‘쇼킹’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래미 수상 등 전기(Electric)를 받아들인 재즈 퓨전으로 가장 큰 혜택을 누린 그는 60년대 이후 키스 재럿, 칙 코리아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재즈 퓨전 건반에 허비 행콕이 앉았다면 재즈 퓨전 기타의 대중화는 팻 메시니의 몫이었다. 10대 때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과 협연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팻은 우리네 조동진과 어떤날, 김현철 같은 뮤지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웨스 몽고메리의 [Smokin’ At The Half Note]를 자신의 인생 앨범으로 꼽는 그는 그룹으로 남긴 퓨전 명반 [Offramp]에서 신시사이저 기타의 소리 세계를 펼쳐내며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명성에 버금가는 명성을 떨친 팻 메시니는 존 스코필드와 알 디 메올라, 래리 칼튼과 리 릿나워, 마이크 스턴과 로벤 포드, 빌 프리셀과 프랭크 갬베일 같은 연주자들과 함께 반드시 기억하고 들어봐야 하는 재즈 퓨전의 아이콘이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을 일렉트릭 재즈로 버무린 'Chameleon'은 허비 행콕이 재즈 퓨전에 기여한 가장 뚜렷한 족적이다.


대중성과 마니아 성향을 동시에 갖춘 팻 메시니의 음악 스타일은 80~90년대 국내 (재즈)팝 뮤지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더 쉽고 더 편안하게 ‘컨템포러리(스무드) 재즈’


허비 행콕과 팻 메시니가 재즈라는 밥상을 대중 앞에 차려준 건 사실이지만 밥을 떠먹을 수저를 드는 건 어디까지나 대중의 일이었다. 록과 손을 잡았던 재즈는 이제 팝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재즈와 록이 만난 이유가 단순함과 활력이었던 걸 감안하면 쉽고 편안한 팝으로 재즈가 눈을 돌린 건 차라리 필연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최근 BTS의 ‘핫100 1위’ 소식으로 더 유명해진 <빌보드>지는 33년 전인 1987년 스윙과 비밥 같은 과거 재즈를 ‘트래디셔널 재즈’로, 팝을 지향하는 이후 재즈를 ‘컨템포러리 재즈’라 부르기 시작했다. 스무드 재즈, 팝 재즈로도 일컫는 컨템포러리 재즈는 재즈의 교양적 세련됨은 취하되 그 복잡한 이론적 속내는 꺼려하는 대중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중은 기꺼이 그 재즈를 소화하기 위해 수저를 들었다.


도회적 낭만과 밤의 운치를 머금은 컨템포러리 재즈는 그 가벼워 보이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반을 낳았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빌 위더스 커버곡 'Just The Two Of Us'를 남긴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Winelight]와 노래, 기타에 똑같이 통달한 재주꾼 조지 벤슨의 [Breezin’]이 있다. 물론 'Feels So Good'이라는 명곡을 수록한 척 멘지오니의 77년 작품도 당연히 거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척 멘지오니의 'Feels So Good'은 재즈 팬은 물론 팝 팬들도 듣는 순간 무릎을 칠 '초대박' 퓨전 곡이다.


그 외 퓨전을 통해 재즈를 대중화 시킨 존재로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 네이선 이스트(베이스), 밥 제임스(피아노), 하비 메이슨(드럼)이 뭉친 포플레이를 기억해야 하겠고 비슷한 성향의 옐로우자켓과 스파이로 자이라도 같은 영역 내 한 축이었음을 알면 좋겠다. 한 평론가가 “부드럽고 스마트한 재즈 록 퓨전”이라고 말한 스틸리 댄 역시 재즈 퓨전의 세계에 대중을 초대한 중요한 팀이었으며, 팀 이름 자체가 장르 이름 같은 재즈 펑크 소울(Jazz Funk Soul) 같은 밴드도 재즈 퓨전의 매력을 충실히 전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Breathless]라는 앨범을 1,200만장 이상 팔아낸 소프라노 색소포니스트 케니 지와 데뷔작 [Come Away With Me]로 2002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노라 존스 역시 컨템포러리 재즈라는 영역에서 다뤄지곤 하는데, 이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실제 케니 지는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에서 감행한 자신의 즉흥 연주에 팻 메시니가 날린 일갈(“절뚝거리는 리듬, 헛소리, 짝퉁 블루스, 음도 맞지 않는 의미없는 즉흥연주” - 개리 기딘스 외 [재즈](까치) P.610)을 감당해야 했고 노라 존스의 재즈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블루스와 포크, 컨트리와 더불어 그녀의 팝 보컬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장르가 뭐 그리 대수일까. 대중이 원하는 건 그저 듣기 좋은 음악, 자신이 공감할 수 있고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음악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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