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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06. 2020

어느 방송사의 시대착오적 심의기준

유세윤의 동요 싱글 '내 똥꼬는 힘이 좋아'(왼쪽)와 팎(PAKK)의 앨범 '살풀이'.


긴 똥 짧은 똥 두꺼운 똥 얇은 똥 / 황금빛깔 누런 똥 거무잡잡 검은 똥 / 순식간에 나오는 똥 눈치보고 나오는 똥 / 배가 아파 묽은 똥 오래 참은 된 똥 / 꾸불꾸불 꾸불 똥 쭉쭉 뻗은 쭉쭉 똥 / 짧고 굵은 절편 똥 길고 얇은 줄줄이 똥


개그맨 겸 가수 유세윤이 2018년 7월에 발매한 동요 싱글 ‘내 똥꼬는 힘이 좋아’의 가사 일부다. 해당 곡은 그의 아들이 즐겨 부른 국악 동요 ‘응가송’을 일렉트로닉 댄스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상파 3사는 이 곡에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다. “욕설, 비속어, 저속한 표현”을 썼다는 게 그 이유다. ‘똥’은 먹고 싸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우리말이고, ‘똥꼬’는 “항문을 귀엽게 이르는” 마찬가지 순우리말이다. 욕설과 비속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저속한 표현”이라는 얘기인데, 아무래도 한국 지상파 3사 심의위원님들은 밥 대신 이슬만 먹고 사는가보다.


몇 시간 전, 유세윤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의 SNS 게시물을 보았다. 그는 팎(PAKK)이라는 록밴드를 이끄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밴드가 3년 전 발표한 앨범 ‘살풀이’의 뒤늦은 방송심의 결과를 타임라인에 막 공유한 참이었다.


자신의 음악을 심의한 방송사(KBS) 수신료의 가치와 심의위원들의 근시안을 지적한 그는 3년 전 앨범에서처럼 무언가에 화가 나 있었다.


팎의 ‘살풀이’는 우리네 전통인 살풀이춤을 서양의 록 음악에 접붙여 작금 한국의 사회정치적 부조리와 파렴치를 일갈해 마니아와 평단 사이에선 나름 반향을 일으킨, 2017년 국내를 대표한 록 앨범이었다. 그런 미학적 가치를 심의위원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들은 심의 대상 9곡 중 3곡에 가차없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살펴보니 이유들이 가관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해(害)’라는 곡이다. 가사 중 “발광하는 손, 발악하는 손, 발기된 두 눈”이 ‘욕설, 비속어, 저속한 표현’이어서 KBS 심의에 걸렸다. 누구나 알고 있듯 ‘발악(發惡)’은 “앞뒤를 분별해 따지지 않고 모질게 기를 쓰거나 소리를 지른다”는 한자어다. ’발광(發狂)’은 “미친 듯이 날뛴다”는 한자어이고, ‘발기(勃起)’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팎의 가사에서 발기는 당연히 “힘이나 기운 따위가 갑자기 불끈 일어난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혹 팎의 가사에서 발기의 또 다른 뜻 즉, “음경의 해면체 안에 혈액의 흐름이 증가하면서 음경이 커지고 단단해지며 일어서는 상태”를 읽었다면 그것은 심의를 한 사람의 취향 문제이지 가사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두 번째 부적격 곡은 ‘파(破)’다. 이 곡은 ‘무분별한 외래어나 외국어 등 바른 언어 생활 저해(뜻을 알 수 없는 한자어 남발)’를 이유로 방송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곡의 가사는 단 두 문구다. ‘아의 사추 비도 왜(我意 邪推 飛刀 孬)’와 ’타의두 파아(他意頭 破我)’. 일단 고등학교만 졸업 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한자어들이고, 단순 직역이든 앨범 콘셉트에 기반한 의역이든 해석도 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수준이다. 심의위원들이 지적한 “무분별한 외래어나 외국어”는 자유로운 예술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고, “바른 언어 생활 저해”라는 것 역시 사람들이 생활에서 저런 말을 쓸 리가 없다는 걸 감안하면 지나친 확대 해석이요 기우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악(惡)’이라는 곡이 부적격을 받은 이유다. 심의위원들은 ‘괴성, 고함 등 지나치게 거부감을 주는 창법’이어서 이 곡을 방송에 내보낼 수 없다고 팎에 통보했다.


일단 대단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어떤 사안에 개입되는 주관은 때로 위험한 결과를 낳곤 하는데, 그것이 공익을 구실로 삼을 때 특히 더 그렇다. 괴성과 고함, 거부감을 주는 창법의 ‘객관적’ 기준은 도대체 누가 만드는 것인가. 아니, 그런 것이 과연 있을 수 있기는 한 건가. 심지어 저들이 지적한 ‘괴성’은 심의를 통과한 ‘연적(硯滴)’에서도 나오고 ‘협(協)’에서도 나온다. 결국 자신들이 세운 기준이란 기준이 없는 기준인 셈이다. 또 누군가에겐 헤비메탈의 괴성(Growling)이 달콤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박정현의 고음 창법이 취향이 아닌 사람에겐 “거부감을 주는 창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릇 취향이란 다양한 것. 그래서 취향은 단정 지을 수도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 더 웃긴 건 지난 9월 30일 KBS에서 방송한 나훈아의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에 헤비메탈 밴드 메써드가 나와 “괴성과 고함”을 질렀다는 사실이다. 해당 방송의 순간시청률은 무려 44.44%.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이 대명절날 그 “거부감을 주는 창법”을 친지들과 만끽한 셈이다.  


정태춘이 ‘아, 대한민국’과 ‘92년 장마, 종로에서’로 대중음악 사전 검열 제도를 박살내고 서태지가 그러한 ‘시대’에 ‘유감’을 보낸 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에선 여전히 70~80년대 독재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계몽적, 교조적인 기준들을 들고 멀쩡한 음악들을 푸대접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소재의 크로스오버, 매체의 융합이 일상인 21세기 스마트 디지털 시대에 이 무슨 뻔뻔한 시대착오인지. 방송사들은 기준도 명분도 흐릿한 자신들만의 심의 잣대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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