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Oct 30. 2020

이제야 보이네, 인생...

김창완 [문(門)]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로 일렉트릭 기타가 천천히 멜로디를 그려 나간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라는 이름은 기쁘면서 슬픈 이름이다. 때론 상처처럼 아프다 이내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이름이다. 그렇게 김창완이 37년 만에 기타를 잡고 밀어낸 문의 시작엔 엄마가 있다.


김창완이 오랜만에 낸 솔로 앨범 '문(門)'의 부제는 '시간의 문을 열다'이다. 엄마에게 사랑 고백을 하며 시작하는 이 앨범의 문이란 결국 '시간의 문'이었던 셈. 하지만 그 시간은 만만치 않다. 쉽지도 않다.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닌, 내가 겪었지만 지나고 보니 남의 것 같은 시간( '노인의 벤치')일 뿐이다. 김창완은 자신과 동세대가 겪었고 또 태어났으면 누구나 맞이할, 멀어보여도 임박한 그 주름진 시간을 노래한다.


'노인의 벤치'와 '시간'이라는 곡이 앨범의 머리에 있는 건 때문에 우연이 아니다. 살아본 노인이 아직 덜 살아본 이들에게 "후회할 때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사실을 전할 때,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이 "쓸쓸한 어깨 위엔 달빛도 무겁다"는 걸 알게 될 때 음악은 그대로 철학이 된다.



이 음반에 흐르는 시간은 '지난' 시간이다. 하고 싶은 말은 지금 건네는 푸념이 아닌 추억을 담보한 고백이다. 후회에 저당잡힌 그 체념 앞에서 '꼬마야'는 '아가야'('자장가')가 됐고, 떠난 지 7년 누우신 지 3년 된 부모님('이제야 보이네')은 가슴 속 멍으로 남았다. "보고 싶어 어머니, 보고 싶어 아버지"가 전부인 '보고 싶어'의 가사는 이 모든 걸 눈물로 수렴한다.


기타는 김창완의 훌륭한 친구다. 부드러운 아르페지오와 스트로크, 단조롭게 울고 사라지는 솔로로 기타는 김창완을 가만히 안아준다. 물론 '개구쟁이' 김창완도 여전해 2020년대판 건전가요 같은 '글씨나무'와 수수한 동요 '옥수수 두 개에 이천원'은 산울림의 김창완이 심어둔 엉뚱한 반전으로 음반 뒤를 받친다.


앨범의 종점은 앨범의 시발점과 같이 기타 연주다. 엄마가 묻고 비가 답한다. 이 따뜻한 대구는 곧 이 음반의 모양새이기도 하다. '먼길'의 가사처럼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작품. 어쩌면 여는 '문(門)'이란 묻는 '문(問)'일 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에선 가루가 되어버린 노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야말로 "바람의 편지처럼 흩어지는" 그런 목소리다. 기타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그 노인의 독백을 위해 허허로이 튕겨진다. 37년. 김창완은 젊은 시절 기타로 썼던 수필에 노인의 깨달음이라는 연필로 마침표를 찍었다. '문'은 '청춘'의 앨범 버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멸종위기의 공룡 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