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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26. 2021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추천, 선정의 변들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장르별 후보들이 오늘 발표됐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록, 모던록, 메탈&하드코어 분과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썼던 공식, 비공식 '짧평'들을 여기 옮겨 둔다.


공식 후보


최우수 록 노래 후보 - 배드램(Badlamb) '겁'



누가 록은 죽었다고 했는가. 록은 한물간 음악이라고? 천만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주저 없이 이 곡을 들려줄 것이다. 사운드 가든이 앨리스 인 체인스의 ‘Rooster’를 연주하고 있는 듯한 이 거대한 노래에서 우리는 록의 죽음이 아닌 부활을, 한물가지 않은 록의 건재함을 똑똑히 목격하게 된다. 이동원의 호쾌한 바리톤 보컬과 편지효의 구수한 기타 솔로는 그러한 록의 자존심에 힘찬 숨결로 스며들었다.


최우수 모던록 음반 후보 - 새소년 [비적응]



작곡과 연주, 가사와 노래, 프로덕션 모두에서 자신들만의 문법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일곱 곡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머금은 단편 소설처럼 자리해 음반 자체를 한 권의 소설집으로 만들어 버린다. 곡과 곡 사이에 잠든 표면적 분절은 ‘엉’ ‘덩’ ‘이’라는 제목으로 유쾌하게 봉합되고, 황소윤의 스산한 팔세토는 그 봉합 위에 무채색 공허를 내려 앉힌다. ‘부’적응이 아닌 ‘비’적응이라는 제목부터 이미 음반 속 음악의 매력을 예고하는 작품. [여름깃]에서 이 앨범으로 건너온 것처럼 새소년은 언제나 ‘다음’이 기대되는 밴드다.



비공식 후보 추천


록 음반


배드램 [Frightful Waves]



배드램은 록이 주류였던 시절을 마냥 그리워 하지만 않는다. 청승맞게 앉아 유행의 부활을 기다리는 대신 이들은 그 유행을 직접 찾아나서 자신들 앞에 무릎 꿇린다. ‘록을 좋아하면 아재’라는 일부 아재들의 안타까운 자학을 통쾌하게 비웃어주는 30년 역사의 헤비 로큰롤을 이들은 과거를 일깨우고 미래를 지운 끝에 자신들의 현실로 만들었다. 그게 참 멋있다.


줄리아드림 [생과 사]



줄리아드림은 주제 하나를 앨범 단위로 풀어내는 일을 사명처럼 느껴지게 하는 밴드다. 억울한 죽음들을 다룬 전작에 이어 이번엔 아예 (삶과)죽음 자체를 다루면서 밴드는 더 많은 사운드 실험과 연주 탐험을 즐겼다. 많은 록 고전들이 그랬듯 이 작품도 '많이 들어야 제대로 들리는' 앨범이다. 


ABTB [Daydream]



‘daydream’은 밴드 멤버 한 명이 쓴 단편 소설에 기반해 푼 ABTB의 두 번째 이야기다. 자칫 많은 텍스트가 음악을 누르며 과잉으로 치달을 법도 한데 이 앨범에서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로서만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프로그레시브록이라는 노트에 그런지라는 연필로 눌러쓴 이 자조 섞인 반골 음악은 세계적으로 의기소침해진 록을 위한 한국발 심폐소생술이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블루스브라더빅쇼]



음악의 흥과 사유의 냉소를 담아 블루스의 풍자적 매력을 끊임없이 설파하는 최항석. 그의 한결같은 열정만으로도 이 앨범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비꼼과 존중이 반반 섞인 트랙 ‘한국대중음악상’이 대표 하듯 이 앨범은 철저한 피처링으로 외길 블루스에 다른 장르 길도 열어보였다. 물론 그 길을 따라 이 땅에서 블루스의 가능성, 대중화가 꽃 피어갈 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텔레플라이 [그랬고 그렇게 언제나]



2집 ‘무릉도원’에서 텔레플라이는 자신들이 추구해온 사상과 장르를 가장 주체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냈었다. 두 번째 미니앨범 '달빛에 눈먼 자들'은 그보다 더 무르익고 절제된 블루스 록으로 텔레플라이라는 밴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는 걸 예감케 했다. 이번 3집은 바로 그 예감에 대한 걸출한 자기증명이다.


록 노래


빌리카터 'Invisible Monster'



AC/DC의 전성기와 ‘British Steel’ 시절 주다스 프리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카토 기타 리프. 폭력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곡 주제에 어울리는 박진감. 간단명료한 스타일은 종종 핵심을 관통한다.


코토바 'Reyn'



코토바의 연주에는 현란한 정돈이 잠복해 있다. 난해하면서 여유롭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드는 리듬의 이완, 산뜻한 기타 톤의 여운은 이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낼 수 있으리란 가능성의 징후다.


에이치얼랏 'We Are'



이를 악물고 낸 앨범이라 첫 곡부터 ‘활활’ 타오른다. 언뜻 가십(The Gossip)의 ‘Standing In The Way Of Control’이 떠오르는 인트로지만 곡이 시작되고 17초 뒤 상황은 달라진다. 개인을 억누르는 사회의 부조리는 불안하게 섹시한 조규현의 목소리에 그을리고, 류정헌의 노이즈 기타와 한진영의 이글거리는 베이스는 그 위를 바람처럼 배회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최재혁의 확신에 찬 난타가 있다.


스쿼시바인즈 '신세계'



록은 록인데 록이 아닌 록. 이 곡은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고로 장르들을 어울러 장르의 해체를 노리는 스쿼시바인즈의 '신세계'란 결국 포기된 음악, 이른바 "독립적 소음"이 자아내는 음악적 무념의 세계다.


ABTB 'daydream'



맑은 탐(Tom)을 앞세운 드럼과 아득한 기타 솔로가 2분대까지 함께 흐른다. 3분대 근처에 이르러 곡은 16비트 베이스 리프로 반전되고, 이내 보컬이 허탈한 가사를 내뿜듯 부르며 등장한다. 스타일과 서사를 모두 노린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 트랙은 ABTB의 음악 내공을 가장 극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모던록 음반


새소년 [비적응]



보컬 음색, 연주 패턴, 작곡 아이디어, 앨범 또는 곡의 주제, 사운드 디자인. 모든 면에서 새소년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분명히 찾은 듯 보인다. ‘집에’를 들으며 그런 확신이 들었다. 행여 이후 한국 모던록 역사에서 이들 이름이 누락 된다면 그 역사는 거짓일 확률이 높다. 


공중그늘 [연가]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짜나가는 사운드 얼개에서만도 이 밴드의 개성은 마음껏 드러난다. 곡 단위 크레디트에 한두 사람 이름이 아닌 언제나 ‘공중그늘’을 쓰는 건 바로 그 개성이 특정 연주나 악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뜻일 거다. 한국의 아케이드 파이어가 되길 기대해본다. 


스테레오 버블 [신나는 음악세상]



하드, 산뜻, 재지, 펑키 연주로 세상을 풍자해내는 솜씨가 재밌다. 감정 기복 없이 감정적인 가사를 툭툭 내던지는 보컬의 무표정에선 저 멀리 산울림(또는 김창완)의 그림자도 보인다. 화성과 리듬을 제대로 가지고 놀 줄 아는 기타리스트 김수유의 우월한 연주가 대중성까지 확보하니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작품이 나왔다. 


곰치 [True Story]



결혼 2주를 앞두고 현실의 무게에 못 이겨 결혼을 포기한 커플 이야기와 “한 사람의 글만 보고 두 귀를 닫아버린” 온라인 군상을 두루 다루는 곰치는 90년대와 2000년대에 유행한 모던록과 네오 펑크 정도에 자신들을 위치 짓는다. 그러니까 기타 리프와 보컬 멜로디에선 서드 아이 블라인드나 델리 스파이스를 소환하고 ‘소리’ 같은 곡의 팔세토 코러스에선 전기뱀장어를, ‘벽보고 대화’에선 로큰롤라디오 풍 댄서블 록 기타 리프를 끌어들이는 식으로 이들은 밴드의 음악 정체성을 고백해 나간다는 얘기다. 충분히 들어볼 만한 것이다. 


위댄스 [Dance Pop]



“눈에 뵈는 게 없”이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는 걸로 치면 70년대 산울림, 90년대 삐삐밴드 못지않은 위댄스의 느리지만 꾸준한 행보는 2020년대 대한민국 인디 음악계 시작을 마주한 리스너들에게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이 앨범은 그들이 베토벤과 라이드, 페이브먼트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들으며 넘은 동부5고개에서 어떤 음악을 얻어왔는지 제법 비범하게 펼쳐나간다. 반하지 않을 수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없는 작품이다.


모던록 노래


나상현씨밴드 ‘덩그러니’



인트로 보컬에선 무조건 오혁과 송재경이 떠오른다. 후렴으로 치달으며 나상현씨는 비로소 나상현씨만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거기에 브라스와 일렉트릭 기타 솔로가 겹치면서 곡은 끝내 혁오, 구와 숫자들관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거두어들인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캐내는 것. 이 밴드는 최소한 그걸 할 줄 아는 팀이다. 


엘스웨어 ‘마지막 조각’



커트 코베인의 죽음으로 촉발된 90년대 대한민국 인디 록. 그 ‘마지막 조각’을 자처하듯 맑은 보컬 멜로디와 탁한 전기 기타의 부대낌이 멀어진 그 시절을 되부른다. 위저와 스피츠, 델리 스파이스와 언니네이발관이 모두 들리는 이 곡이 사랑스럽지 않을 재간은 없다. 


혁오 ‘Silverhair Express’



‘타협하지 않는 대중성’은 언뜻 모순 같다. 하지만 혁오는 그 모순을 자신들의 음악적 ‘수순’으로 만들어 낸다. 돌고 도는 4줄 가사, 제자리 걷는 느린 16비트, 그 위에 쌓이는 나른한 스캣과 악기들. 혁오는 다시 한 번 비타협적 음악을 들고 대중을 만나러 왔다. 누가 들어도 안아줄 수 밖에 없는 그런 곡을 들고. 


주보링 ‘클럽 신공덕동’



신시사이저와 프로그래밍이 분위기를 만들고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 그루브를 엮는다. 곡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다 이내 듣는 이들이 예측했을 법한 멜로딕 후렴구에 기어이 데려다 놓는다. 혁오 냄새가 많이 나지만 그 냄새를 피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주보링의 실력이다. 


코어매거진 ‘It’s On’



장르와 장르가 만나 예술적 긴장을 이끌어낸 결과물은 이제 대중의 심판을 받으러 간다. 바로 신스팝 건반과 모던록 기타 사이에서 서성이는 코어매거진의 곡이 처한 상황이다. 틀림없다. 대중은 쌍수로 반길 것이다.


메탈&하드코어


메스카멜 [20th Century]



나에겐 ‘Meth’와 ‘Kamel’이 ‘Megadeth’와 ‘Camel’의 더하기처럼 읽혔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서 결국 팀을 이끄는 기타리스트 서진호의 음악 취향이 곧 이 밴드의 음악 색깔인 것이다. 마하트마 때보다 좀 더 뻥 뚫린 사운드와 연주를 이 작품은 들려준다.


램넌츠 오브 더 폴른 [All The Wounded And Broken]



이 앨범은 드럼이다. 흔한 블래스트 비트라도 차원이 다르다. 고삐 푼 질주 속에 차가운 질서를 묻었다. 그 '질주하는 질서'는 물론 국경을 넘어선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타박 없을 초절정 기교다. 처연한 멜로디를 뿜어내는 트리플 기타의 디스토피아적 운치도 물론 그렇다.


컴배티브 포스트 [Whiteout]



조건 없는 헤드뱅잉을 부르는 옛 메탈 그루브와 파괴적인 비트에 멱살 잡힌 현대 헤비메탈의 광활한 소리 질감을 알뜰히 챙겼다. 암울한 블랙메탈이 덩실대는 그루브메탈과 분노에 찬 하드코어를 만나면 어떤 음악이 되는지 이 앨범은 알고 있다. 물론 가장 흥미로운 건 잠비나이에서 묵혀두었던 이일우의 플레이. 국악 저편에 있는 그의 또 하나 음악 뚝심은 누가 뭐라 해도 ‘헤비메탈’인 것이다.


두억시니 [Sins Of Society]



'사람 머리를 터뜨려 죽이는 귀신'이라는 팀 이름에 걸맞게 멤버들의 합주는 파괴감과 속도감이라는 해당 장르의 미덕을 뼛속까지 발라낸다. 베이스를 잡고 피를 토하는 리슌, 박진감 넘치는 리프와 릭(Lick)으로 기타 전쟁을 벌이는 재구와 성원 더 디스트로이어의 호흡, 무엇보다 32초짜리 끝곡 'Oro Y Oro'에서 헬씨(드럼)의 블래스트 비트는 나일(Nile)의 조지 콜리아스 못지 않은 극단의 그루브를 뽐낸다.


로스 오브 인펙션 [Dark Dimension]



데스래쉬풍 블래스트 비트와 그로울링, 블랙메탈의 래스핑, 메탈코어식 샤우팅, 그리고 뭉툭한 젠트(djent) 그루브. 장르의 거의 모든 걸 쓸어 담은 헤비메탈 종합 선물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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