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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26. 2021

[헌정/리메이크 앨범 1] 조동진을 기억하다

장필순 [장필순 Reminds 조동진]


헌정(Tribute) 앨범과 다시 만든(Remake) 앨범, 곡들을 찾아 듣는 편이다. 특정 곡과 인물을 택한 뮤지션이 원작자와 원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비틀었을지가 일단 궁금해 찾아 듣고, 해석한 결과물이 원곡에 미치지 못하거나 반대로 원곡을 창의적으로 해석해 기어이 원곡을 넘어서는 갈림길에서 배어나는 스릴이 좋아 또 찾아 듣는다. 사실 헌정과 리메이크는 과정에서 하나다. 헌정하기 위해선 누군가가 다시 만들어야 하고 다시 만들면 대게 누군가에게 헌정된다. 결국 닭이냐 달걀이냐인 셈인데, 굳이 차이라면 헌정 앨범은 해당 인물(팀)을 중심에 두는 반면 리메이크 앨범은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 더 의미를 두는 정도이겠다. 물론 그 안에서도 콘셉트는 갈리게 마련이라 김광석이나 이은미, 서영은이나 아이유처럼 시리즈로 다시 부른 이들이 있었고, 한대수를 기리는 앨범에서처럼 ‘물 좀 주소’ 단 한 곡에 헌정의 뜻을 담은 적도 있다. 또 윤상은 후배들과 함께 자신의 헌정 앨범을 꾸몄고, 이선희는 역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후배들 노래를 새로 불렀다.


그렇게 지난 20여 년간 괜찮게 들었던 리메이크 앨범들을 세어보니 꽤 된다. 그런데 나는 이것들을 따로 기록해둔 적은 없었다. 좋은 음악을 들었으면 떠들어야 하는 게 내 일이건만 유독 헌정작과 리메이크 음반에는 말을 아껴온 듯 하다. 그래서 이번 시간부터 내가 좋아했던(또는 비평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헌정/리메이크 앨범들을 한 장씩 글로 풀어보려 한다. 일단 국내 것들부터 건들 예정이고 시간이 되면 해외 것들 중에도 골라볼 생각이다. 첫 글은 가장 최근에 만난, 헌정이기도 하면서 리메이크이기도 한 장필순의 앨범 <장필순 Reminds 조동진>이다. 헌정과 리메이크 앨범 쓰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적합해 보여 골랐다. 그리고 아래는 앞으로 써나갈 앨범들 목록이다. 부디, 마지막까지 무사히 써낼 수 있길 빌며.


리메이크 앨범들


김광석 <다시부르기 I, II> (1993, 1995)

조관우 <Memory> (1995)

YB <한국 Rock 다시 부르기> (1999)

이정식 <화두> (1999)

이은미 <Nostalgia, Twelve Songs> (2000, 2007)

이수영 <Classic> (2004)

서영은 <Romantic 1, 2, 3> (2004, 2006, 2007)

싸이 <Remake & Mix 18번> (2005)

SG워너비 <Classic Odyssey> (2005)

나얼 <Back To The Soul Flight> (2005)

박효신 <Neo Classicism (Remake Album)> (2005)

린 <Misty Memories> (2006)

박혜경 <여자가 사랑할 때 - Lemon Tree> (2008)

조규찬 <Remake> (2008)

임재범 <풀이 (Free)> (2011)

아이유 <꽃갈피, 꽃갈피 둘> (2014, 2017)

이선희 <르 데르니에 아무르 (마지막 사랑)> (2018)

브라운 아이드 걸스 <RE_vive> (2019)


헌정 앨범들


VA <가객 : 부치지 않은 편지> (1996)

VA <A Tribute To 신중현> (1997) VA <튠업 헌정 앨범 신중현 THE ORIGIN> (2017)

VA <Am I Metallica?> (1997)

VA <너바나 트리뷰트 / Smells Like Nirvana> (1997)

VA <산울림 Tribute Album 77 99 22> (1999) VA <REBORN 산울림> (2012)

노브레인 <Never Mind The Sex Pistols Here’s The No Brain> (2001)

VA <전설 (전영록 30주년 헌정앨범)> (2002)

VA <LEE JUNG SUN FOREVER> (2003)

VA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2004)

VA <The Story Of Musicians - 옛사랑 1, 2> (2006, 2007)

VA <물 좀 주소 (한대수 트리뷰트 프로젝트)> (2008)

VA <Song Book - Play With Him> (2008)

VA <A Tribute To 들국화> (2001) VA <2011 들국화 리메이크> (2011)

VA <Hahn Dae Soo 40th Anniversary “Rebirth”> (2015)

VA <봄여름가을겨울 트리뷰트> (2018)

VA <블랙홀 트리뷰트 - RE-ENCOUNTER THE MIRACLE> (2019)

VA <남진 55주년 헌정앨범> (2020)

말로 <송창식 송북> (2020)



참 좋은 세상이다. 정확히는 참 좋은 ‘유튜브’ 세상, ‘유튜브’ 덕분에 참 좋은 세상이다. 뭐가 그리 좋은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유튜브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자칫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했을 많은 옛 영상들로 유튜브는 우리가 후회하거나 행복했거나 만족했던, 그러나 철저히 잊고 살았던 시절의 기억을 산발적으로 뿌리고 또 거두어들인다. 아마도 유튜브가 품은 가장 풍요로운 가치일 ‘옛날TV’라는 범주는 과거를 먹고 사는 중장년 층에게 무언지 모를 위로를 건네며 녹슨 세월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한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앞에서 기어이 돌아가보려 발버둥 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튜브는 그렇게 그리웠던 벗, 어머니의 품, 포근한 낮잠, 비 오는 날 처마밑이 되어준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나는 귀한 영상 하나를 봤다. 때는 1992년 어떤날, 개국 1주년을 바라보던 SBS TV ‘포크 가을여행’ 무대였다. 무대 위에는 몇 해 전 세상을 등진 조동진이 앉았고 그는 대표곡 ‘제비꽃’을 불렀다. 그리고 그 곁엔 그 ‘제비꽃’을 듣고 조동진을 흠모하게 된 장필순이 있다. 두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이 무대가 29년 뒤 떠난 사람을 향한 남은 사람의 전면적 헌정 앨범으로 거듭나는 데 마중물이 될 줄은. 장필순은 늘 자신이 좋아했고 존경했던 선배를 위해 스튜디오로 가 다시 ‘제비꽃’을 불렀다.


장필순이 다시 부르는 조동진. 이 말은 쓸쓸함이 쓸쓸함을 뒤덮고 서늘함이 따스함과 공존하리란 예고와 같다. 스산하게 관조하는 장필순의 메마른 창법은 경건하고 온화했던 조동진의 원곡들 속 정념을 매만지고, 조동익은 그런 장필순 곁에서 키보드 연주(이 앨범에 다른 악기는 없다)와 프로듀싱, 믹싱과 마스터링, 녹음을 자처해 잠든 형을 조용히 깨운다. 음반의 선곡은 장필순, 조동익이 합의해 고른 것. 5, 6집은 건드리지 않았다. 아마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 판단한 듯 보인다.


나는 지금 장필순이 다시 노래한 조동진의 한 곡 한 곡을 원곡과 대조해가며 듣고 있다.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 두 사람이 같은 말로 대화를 나누는 듯 하다는 것. 이것은 마치 장필순이 먼저 부르며 ‘선배, 잘 지내시나요?’ 물으면 고인도 ‘응, 난 잘 지내. 너희도 별일 없지?’라고 화답하는 느낌이랄까. 이승과 저승에서 보내는 이 절실한 가상의 안부는 원곡에 담긴 담백한 운율과 섬세한 멜로디를 거의 그대로 머금어 듣는 이의 귀를 적신다. 이런 음악에선 고음의 절창도, 화려한 명연도 다 부질없다. 그저 높이 올라선 자들만이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비움의 소리만 있을 뿐이다. 지금 장필순은 ‘먼 길 돌아오며’를 부르고 있다. 곧이어 조동진도 같은 노랫말로 답가를 부를 것이다. 둘은 따로 부르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는 같다. 나지막하게 위로하고 느긋하게 미소짓는다.



빠르고 혁신적인 것이 느리고 오래된 가치를 짓누르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장필순의 조동진 기억하기(Reminds)는 꽤 각별한 의미를 띤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조동진의 평정을 기어이 추억하려는 장필순(그리고 조동익)은 느린 것은 더 느리게, 낮은 것은 더 낮게, 깊은 것은 더 깊게 만든다. 늘 최대치에 쫓기며 사는 가여운 현대인들의 강박에 철저한 최소치를 내밀며 ‘좀 쉬어가’ 다독이는 이 정밀한 프로덕션의 힘은 의외로 크다. 한대수의 가사 마냥 무명무실하고 무감한 이 헐거운 적막은 오직 이들이기에 전할 수 있을 정서적 메시지일 터. 노래가 삶의 태도가 되는 것이다.


흑백 앨범 사진에서 장필순은 웃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흐리다. 색이 바래고 형체가 흐려진 모습은 장필순의 목소리와 꼭 닮았다.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어도 자유롭다. 억눌려있지만 완강하다. ‘나뭇잎 사이로’를 부를 때 그런 장필순의 무색무형의 목소리는 되레 곡을 살아나게 한다. 밀어내면서 당길 수 있는 이 노래의 신기한 경지는 침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해 저무는 공원’을 지나 마지막 ‘그대 창가엔’에서 정점을 찍는다. 조동익은 거기에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 장필순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음악이 끝나고 우리가 마주하는 건 느리고 늘어진 위안, 나직한 고독의 평온 그 자체일지 모른다. 바로 조동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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