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Mar 30. 2021

음악을 통한 사랑과 치유

<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밝은세상


이 소설은 살면서 음악 밖에 모르는 한 영국 남자와 살다가 음악을 잃은 한 독일 여자의 러브스토리다. 시간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을 축으로 수 십 년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영화 ‘노팅힐’을 떠올리게 하는 친구들, ‘비포 선라이즈’가 아른거리는 연인,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방불케 하는 사랑 작전. 중요한 건 이 이야기의 주제가 음악과 치유라는 사실이다. 더 정확히는 음악을 통한 치유다. 저자는 뻔한 듯 뭉클한 자신의 소설을 통해 음악이 가진 의미와 힘, 가치를 등장인물들의 회상, 비평, 지론을 통해 끊임없이 건드린다. 가령 재즈라는 음악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기록해두었다.


재즈는 음표 사이의 공백이 중요한 음악이다.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음악이다. 재즈는 간극과 틈이 포인트다.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만이 진정한 삶이 펼쳐지듯이

P.148


그래서 제목도 ‘뮤직숍’이다. 작가는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작품 구성을 음반의 그것 마냥 A~D면으로 나누어 1988년 1월과 2월, 그해 봄, 21년 뒤인 2009년 모습까지 한 권에 어울렀다. 내가 이 책을 펼친 건 어디까지나 ‘음악’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CD의 전성시대가 오던 시절. 그러니까 마거릿 대처가 직접 나서 자영업을 권장하던 시대다. 영국 유니티스트리트라는 곳에서 음반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 프랭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LP만 팔겠다는 사람이다. 희귀반을 찾는 마니아와 새로운 음악을 찾는 입문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LP 전문 가게를 일구어 ‘NME’ 같은 음악 잡지에도 소개되는 특별한 음반 가게를 그는 만들고 싶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당시 대세는 CD였고 CD는 ‘LP 절대론자’인 프랭크의 목을 조금씩 조여 오고 있다.


프랭크는 음악을 이론이 아닌 정서로 받아들인다. 그는 “음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을 건드린다”며 음악을 찬양한다. 그래서 그는 말로 나눈 장르라는 걸 무시하는 편이다. 매장에 LP를 알파벳순으로 분류해두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그에게 음악은 장르적 구분 대신 “분야는 다르지만 뿌리와 정서가 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


예컨대 프랭크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Bitches Brew’ 곁에 둔다. 비발디의 ‘사계’는 데이비드 보위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와 조니 캐시의 ‘At Folsom Prison’, ABC의 ‘The Lexicon Of Love’와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과 함께 진열한다. 또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는 마일스의 ‘Kind Of Blue’와 함께, 페로탱의 ‘베아타 비세라’는 푸치니의 ‘토스카’와 제임스 브라운의 ‘Ain’t It Funky Now(Pt. 1, 2)’, 레드 제플린의 ‘IV’와 같이 꽂아둔다.


그런 프랭크가 어느날 녹색 코트를 입고 음반 가게를 찾은 한 여인에게 첫 눈에 반한다. 그는 이러저러해서 그 여인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업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독자(=음악애호가)는 또 한 번 지적, 정서적 만족감을 얻는다. 물론 그 여인은 그 과정에서 사랑에 빠진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프랭크는 여인에게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실은 달과는 전혀 상관없는 곡이라고 말한다. 대개 3악장으로 이루어져 빠르게, 느리게, 빠르게로 이어지는 소나타 형식을 베토벤은 이 한 곡으로 파괴했다고 프랭크는 설명했다. 그는 또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한지 25주년이던 1977년에 발매한 섹스 피스톨즈의 ‘God Save The Queen’이 밖으로 폭발하는 곡이라면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에 나오는 아리아 ‘디도의 비가’는 안으로 폭발하는 곡이라고 말했다. 프랭크는 쇼팽의 ‘전주곡 15번 내림 D장조’에서 볼 수 있는 오두막 지붕, 올리브와 레몬 나무들, 정원을 적시는 빗방울을 언급하며 그것이 ‘사랑의 노래’임도 여인에게 넌지시 전한다.


그의 음악 이야기는 이후에도 하이든과 블론디, 브람스를 주제로, 모차르트와 조니 미첼, 엘라 피츠제럴드, 커티스 메이필드, 밥 말리, 시크(Chic)를 또 다른 주제로, 밴 모리슨과 닉 드레이크, 롤링 스톤스와 라몬스, 슈베르트와 프리팹 스프라우트, 브린슬리 슈왈츠와 그레이엄 파커, 스틸리 댄을 주제로 계속 이어졌다. 트록스의 ‘Wild Thing’을 자장가로 추천하는 프랭크는 그렇게 어머니 페그에게 어릴 적 전수받은 음악 지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함께 할 사람과 막연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쇼팽만 좋아하는 남자 / 아레사 프랭클린의 70년 곡 ‘Oh No Not My Baby’ / 퀸의 86년 곡 ‘It’s A Kind Of Magic’ / 비발디의 사계 /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 밥 딜런의 63년 곡 ‘A Hard Rain’s A-Gonna Fall’ /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삽입곡 ‘So Long, Farewell’ / 글로리아 게이너의 78년 곡 ‘I Will Survive’ / 마빈 게이의 73년 곡 ‘Let’s Get It On’ /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 비틀즈의 65년 곡 ‘Help!’ / 샬라마의 82년 곡 ‘A Night To Remember’ / 호크윈드의 72년 곡 ‘Silver Machine’ / 디온 워윅이 67년에, 이듬해 아레사가 불러 히트한 곡 ‘I Say A Little Prayer’ / 10cc의 75년 곡 ‘I’m Not In Love’ / 아이작 헤이스의 71년 곡 ‘Theme From Shaft’ / 밥 말리의 73년 곡 ‘Get Up, Stand Up’ / 씬 리지의 76년 곡 ‘Don’t Believe A Word’ / 인디프의 82년 곡 ‘Last Night A DJ Saved My Life’ (…)


이 소설의 챕터는 대부분 실제 노래 제목들로 시작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라흐마니노프의 ‘철야기도’, 헨델의 ‘메시아’에 나오는 ‘할렐루야’ 합창곡을 좋아하는 프랭크의 어머니 페그는 그 챕터 사이사이에서 플래시백으로 우리와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음악에 관한 주옥 같은 말들을 들려준다.


LP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처럼 세심하게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이야


페그는 LP를 턴테이블에 올리는 과정이 곧 음악의 ‘여정’과 같다고 본다. 뜯고 꺼내고 올리고 돌려서 듣는 그 번거로운 과정, 세심한 신경에 LP는 자신만의 그윽한 음질로 보답한다는 것이다.


페그는 또 “침묵에서 출발해 침묵으로 돌아가는 게 음악의 여정”이라고 말하며 “좋은 음악을 듣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음악은 “사랑에 빠지는 경우와 비슷하지만 결코 상대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런 페그에게 음악이란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즐거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무엇이다.


결국 프랭크가 LP만 고집하게 된 것도, 장르 구분을 꺼리는 것도, 음악이 끝나갈 때면 슬퍼서 기쁘고 기뻐서 슬퍼하는 사람이 된 것도, 그에게 음악이 전부인 것도 다 어머니 페그의 영향이다. 만약 음악을 좋아해 이 책을 펼쳤다면 당신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100년 가요 역사를 추억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