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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09. 2021

순도 100% 하드코어 펑크

Slant [1집]



1996년과 1998년, 나에게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라는 장르를 찾아듣게 만든 앨범 두 장이 발매됐다. 하나는 슬레이어의 ‘Undisputed Attitude’(1996), 다른 하나는 메탈리카의 ‘Garage Inc.’(1998)다. 전자는 스래쉬 메탈 밴드 슬레이어가 펑크라는 장르에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를 고백한 커버작이었고, 후자는 메탈리카가 자신들 음악에 영향을 준 하드록, 헤비메탈, 펑크 밴드들을 추억한 헌정 겸 리메이크 앨범이었다.(이 작품은 메탈리카가 1987년에 발매한 비사이드 커버 앨범 ‘The $5.98 E.P. – Garage Days Re-Revisited’ 수록곡들을 포함한 것이다.)


때문에 하드코어 펑크는 당연히 슬레이어 것에서 더 많이 또 깊게 다뤄진 반면, 메탈리카의 더블 앨범에선 일부로만 호출됐다. 나는 슬레이어의 이 앨범을 통해 마이너 쓰렛(Minor Threat), 버벌 어뷰즈(Verbal Abuse), T.S.O.L., D.R.I. 같은 밴드를 알게 됐고 미스피츠(Misfits)나 디스차지(Discharge)는 메탈리카 덕분에 전 지구 록 팬들로부터 구체적인 인지도를 늦게나마 얻을 수 있었다. 슬레이어의 트레이드 마크인 빠른 전개와 메탈리카의 ‘Motorbreath’, ‘Fight Fire With Fire’, ‘Battery’, ‘Dyers Eve’가 모두 저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유산이다.


지지난해 미니앨범 ‘Vain Attempt’를 이미 내놓은 밴드 슬랜트(Slant)가 자신들 1집에서 구사하는 음악이 바로 하드코어 펑크다. 빠르고 거칠고 단순한 이 극단의 장르를 이들은 거의 완벽하게 소환해내는데, 그 에너지는 옛 블랙 플래그, 데드 케네디스, 허스커 두, 매드볼 따위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까 이는 어쩌면 현악기(기타, 베이스) 멤버 각자가 몸 담았던 기존 밴드들이 하던 장르 즉, 고어그라인드(Goregrind)와 개러지 펑크 록, 디-비트 펑크(D-Beat Punk)에서 ‘속도와 코드’만 가져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날카로운 래스핑(Rasping Voice)으로 포효하는 임예지, 거기에 철저히 맞서는 미국인 드러머 개럿의 블래스트 비트가 17분 3초라는 러닝타임에 더해지면 이제 슬랜트는 비로소 완전체가 된다.



음악은 첫 곡 ‘Enemy’부터 사정 없이 몰아붙인다.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다음 트랙으로 언제 넘어갔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트랙과 트랙 사이의 긴장감은 대단하다. 곡과 곡은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엉겨 있고 그래서 앨범 전체가 한 곡으로 채워진 느낌을 준다. 그리고 솔로는 거의 없다시피 한 기타 두 대가 내뿜는 리프의 두께와 속도감은 그 앨범이 품은 나머지 요소를 압도한다. 또 임예지가 정신없이 내지르는 노랫말에는 개인이 바라본 거짓과 냉소, 절망, 정체(停滯), 말기 환자(‘Terminal’)의 심경, 그리고 추상적인 정치 사회적 발언(‘Casualty’, 이 곡의 초반부는 라몬스(The Ramones)의 ‘53rd & 3rd’와 닮았다) 등이 담겨 있는데, 이것이 개럿의 드러밍을 들이 받아 예리한 균열과 거친 파열을 일으켜 끝내 슬랜트 고유의 펑크 미학이 된다.


이 음반은 미국 아이언 렁 레코즈(Iron Lung Records)라는 곳에서 발매됐다. 슬랜트를 포함해 장르적으로 비슷한 성향의 60여 밴드가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곳이다. 이들이 노리는 시장은 한국(만)이 아닌 것이다. 당연하다. 이런 음악이 이 땅에서 통할리 없다는 건 이 음반을 10초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관해 떠들어보는 건 이 음악에 귀를 열 수 있는 사람들이 적게나마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하드코어 펑크에 많든 적든 분명한 세례를 받은 슬레이어와 메탈리카는 그런 내가 던지는 선의의 미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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