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Jul 08. 2022

노래로 일기를 쓰는 헤이즈의 남다른 음악 세계

'She's Fine'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정규작 'Undo'.


오는 8월에 출간될 필자의 단행본 제목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멜로디(가제)'다. 제목이 가리키듯 32가지 '지금'을 제시하고 그 상황마다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선택해 한 곡씩 리뷰해나가는 콘셉트다. 요즘 유행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책으로 옮겨놓는 셈인데, 과거 '공테이프 녹음'으로 유행했던 행위가 수 십 년을 돌고돌아 나의 첫 번째 책의 주제가 된 상황이 개인적으론 꽤나 흥미로웠다. 그리고 여기엔 헤이즈의 노래도 한 곡 포함됐다. 상황은 '혼술혼밥 때 듣는 음악', 선곡된 노래는 포맨의 신용재와 프로듀서 다비가 함께 한 '비도 오고 그래서'다.


나는 책 속 글에서 "고독하거나 외로운 사람의 일상 속 의식(儀式) 같은" 혼술혼밥의 순간에 그 쓸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요소를 헤이즈의 음색이라고 썼다. 그리고 자신의 거의 모든 곡을 경험담으로 써내려가는 헤이즈는 유난히 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며 '비도 오고 그래서' 역시 행사장을 향하던 차 안에서 차창 밖 비를 바라보며 쓴 노래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언뜻 가볍게 스쳐도 될 법한 이 얘기는 헤이즈의 음악을 얘기할 때 꽤 중요한 아니, 어쩌면 헤이즈 음악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헤이즈의 음악은 실제 내밀한 개인 경험에서 개방적 집단 공감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어느덧 데뷔 8년차. 365일 스케치 하듯 곡을 쓴다는 그는 최근 내놓은 'Undo'까지 정규작 2장에 미니 앨범만 7장, 사운드트랙과 타 뮤지션 피처링 등 싱글들은 그 몇 배 분량으로 발표해왔다. 어릴 때 첼로를 배워본 것 외엔 딱히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그의 감(Feel)에 기댄 작법은 그랬기에 더 남달랐고, 약속처럼 펼쳐진 싱어송라이터와 보이스 컬러의 시대에 그의 끼는 물 만난 고기처럼 대중음악 시장이라는 바다를 힘차게 가로질렀다. 물론 힙합이 주류인 때에 랩과 노래를 모두 소화(데뷔 당시 그는 "신예 여성 힙합 뮤지션"으로 소개됐다)할 수 있는 역량도 헤이즈에겐 덤으로 주어진 축복이었다. '클럽이라도 좀 가'나 'No Way' 같은 곡들이 대표 사례다.


그런 헤이즈가 음악을 만들며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첫 번째가 주제, 두 번째는 가사, 세 번째는 멜로디다. 으레 음악에서 가장 음악적인 요소로 여겨질 멜로디가 세 번째에 있다는 게 독특해보이는 건 그만큼 헤이즈가 개인 경험(주제)과 문자 표현(가사)을 자기 작품 세계에서 중시한다는 방증일 터다. 가령 아픈 이별도 새로운 사랑을 위한 준비일지 모른다는 '떨어지는 낙엽까지도'와 헤어지자는 말을 듣기 싫어 먼저 이별을 고하는 '만추'는 철저히 자신의 경험담이었다. 또한 프라하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바람', 이별한 모든 대상을 밤하늘 별에 비유한 '저 별' 등 OST나 협업 곡이 아니면 모두 경험담을 쓴다는 이후의 원칙 아닌 원칙은 언제나 헤이즈의 창작 아래 이론처럼 녹아 공기처럼 응용됐다. "포장하지 않는 가사"를 추구하는 헤이즈가 처음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도 일기 위에 멜로디를 붙이다 나온 것이라는 점은 그래서 많은 걸 얘기해준다. "실제 있었던 일"은 헤이즈에겐 작업의 몰입도를 끌어올려주는 가치불변의 원동력이다.



영화나 책에서 영감을 얻은 적이 아직은 없는 헤이즈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솔직한 음악을 풀어낼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직접성'에 있었다. 오죽하면 2020년에 낸 미니 앨범 제목도 'Lyricist(작사가)'였을까. 비록 같은 제목의 곡('작사가')에선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딱히 내키지 않아도 계속 무언가를 써내야만 하는 작사가의 얄궂은 운명(어쩌면 헤이즈 자신의 운명)을 냉소에 가까운 자조로 풀어냈지만 반대로 그 속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뮤지션으로서 수긍하는 뉘앙스도 짙게 드리워 있어 노래는 끝내 반어법 비슷한 것으로 남은 눈치다. 두아 리파의 'Future Nostalgia'를 떠올리게 하는 최근 신작의 타이틀곡 '없었던 일로'의 가사를 보면 그런 느낌은 더 분명해진다.


대충 모자를 눌러 쓰고서 부은 눈을 가리고 나와 / 오늘부터는 울어도 나 때문에 울어 / 이제 사랑이란 불편한 부속을 모두 버리고 / 너를 위한 난 없던 일로


헤이즈는 언젠가 "나에게 사랑이란 '~해서' '~해도' 바꿔가는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는 비단 그것이 사랑에만 한정되지 않는, 헤이즈 음악 전반에 감도는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비만큼 가을도 좋아한다는 그의  생체적 재능이 쓸쓸함과 당당함을 동시에 머금은 음색을 타고 90년대 대중음악 아이콘들(윤상, 이문세, 변진섭, 신승훈, 서태지 ) 지나 급기야 2000년대 이후 블랙뮤직에 착륙해 대중 안에서 만개했다. '이별 장인' '비의 여신'  다가 되고 싶다는 헤이즈는 이제 어쩌면 거침없는 '경험담과 표현의 장인'으로서도 심심찮게 회자될  모른다. 그것이 바로 만능 음악가인 헤이즈의 '운명'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헤어질 결심'을 지배한 '안개'의 작곡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