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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11. 2022

미국 대중음악사의 가장 빛나는 별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인물은 나와 멀어도 너무 먼 세대다. 심지어 내 부모님 세대도 아직 걸음마를 하던 때 전성기를 누린 엘비스였으니, 나는 그저 쌓인 글과 이미지(사진, 영상) 기록들로만 그를 더듬어 갈 수 있을 뿐이다.


얼마전 그런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 영화가 개봉됐다. 감독은 배즈 루어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준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든 사람이며, 9년 전엔 그 디카프리오가 다시 주연을 맡은 '위대한 개츠비'로 미국 현대 소설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원작에 트렌디한 블랙 뮤직을 도금한 전력도 있다. 물론 음악 영화라는 측면에서 그는 21년 전 '물랑루즈'라는 뮤지컬 영화로 이미 무시못할 명성을 얻은 터였다. 그런 그가 최근 엘비스라는, "미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별"을 자신의 영화 속으로 초대한 것이다. 음악, 영화 팬들이 함께 들썩일 만 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전기 영화란 선택된 인물의 생에서 무엇을 빼고 더할지, 또 어디에 집중하고 덜 집중할지를 감독이 잘 판단해 그 인생의 전체 맥락을 제시한 작품이다. 배즈 루어먼은 그걸 잘했다. 먼저 그는 이 영화를 사랑과 반목을 대척점에 두고 풀어나갔다. 여기서 전자는 엘비스의 엄마인 글래디스 프레슬리와 엘비스의 생전 유일한 법적 아내였던 프리실라 볼리외가 한 축이 됐다. 그리고 후자는 엘비스를 스타의 길로 이끈 애증의 인물 톰 파커 대령이 다른 축으로서 맞선다. 루어먼은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엘비스의 인생이 어떤 식으로 솟았다 무너져 갔는지를 때론 가파르게 한편으론 차분하게 연출해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루어먼은 먼저 글래디스, 엘비스 모자의 각별한 유대 관계가 사산(死産)한 엘비스의 쌍둥이 형 제시 가론과 수표 위조로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 버넌 프레슬리에서 비롯됐다는 걸 스치듯 보여주며 영화에 시동을 건다. 그런 엘비스의 부모 둘 다 알콜 중독자였다는 사실도, 엘비스가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의 남성성을 동경한 일도 루어먼은 스케치처럼 장면 곳곳에 심어 관객들이 이야기 맥락에 대입해볼 수 있게 했다. 또한 엘비스에겐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을 멤피스의 다운타운 '빌 스트리트'에서 그가 패션에 눈 뜨고 블루스(비비 킹)를 만나는 모습, 그리고 그의 폭발적 인기를 견인한 'Hound Dog'의 주인 빅 마마 손턴의 끈적한 가창을 에피소드처럼 배치해 엘비스의 음악이 지닌 장르적 뿌리를 느슨하게 점검했다. 물론 50년대 로큰롤의 송가 'Tutti Frutti'를 과격하게(피아노에 다리를 올리는 등) 부르는 리틀 리처드에 흠뻑 빠지는 엘비스의 모습에 일부러 카메라를 들이댄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역사. '엘비스'는 한 사람의 전기 영화이면서 한 시대를 조명한 역사 영화이기도 했다. 세간에서 "백만 달러 세션"이라 불린 제리 리 루이스, 칼 퍼킨스, 조니 캐시와 엘비스의 스튜디오 협연 및 즉흥적으로 성사된 비틀스와 엘비스의 합주는 루어먼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에겐 미국 대중문화 역사상 첫 번째로 구매력을 갖춘 10대가 부각되던 때가 1950년대였다는 사실, 당대에 인종과 지역이 아닌 TV로 연예 문화를 즐긴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재편된 사실이 더 중요했다. 또한 글래디스 프레슬리의 죽음 만큼이나 마틴 루터 킹과 존 F. 케네디의 죽음도 중요했다. 루어먼은 에니메이션과 언론 보도 내용을 곁들인 자신만의 현란한 편집으로 그런 엘비스 삶의 궤적(과 그 삶을 둘러싼 역사적 정황들)을 쫓으며 관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국 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가 흘러가는 모습까지 지켜보게 만든다.



대략 이런 그림 위로 이제 모든 이야기를 이끄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깔린다. 톰 파커 대령(톰 행크스)이다. 파커 대령은 영화의 해설자이자 강력한 조연이면서 실화의 당사자다. 영화 '엘비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오스틴 버틀러)의 가장 극적인 등장도 흑인처럼 노래하는 백인인 엘비스가 라디오를 통해 파커 대령의 고막으로 전해지는 장면이었다. 영화 내내 회상(Flashback) 형식으로 비추듯 엘비스는 어린 시절 교회를 통해 흡입한 가스펠과 라디오로 접한 일상의 컨트리, 그리고 딘 마틴과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전후 세대 크루너의 영향을 두루 받은 보컬리스트다. 매리오 랜저와 오티스 레딩, 로이 오비슨 역시 두 말 하면 입 아플 엘비스 목소리의 주요 레퍼런스들이다. 2옥타브 반에 이르는 높은 바리톤 스타일. 국가 차원의 강력한 인종분리정책으로 흑백인이 따로 먹고 따로 타던 시절, 백인의 컨트리와 흑인의 알앤비를 한 목소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건 그 자체 파격이고 혁신이었다. 심지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백인이었다는 사실은 파커 대령 같은 사람들에겐 신이 내린 기회와 다르지 않았다. 엘비스에게 첫 녹음 경험을 안겨준 선레코드의 샘 필립스도 "'흑인 사운드와 느낌'을 지닌 백인 가수를 찾기만 한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했을 만큼 엘비스의 등장은 5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 나아가 연예계 전체에 가해질 역대급 지각 변동이었다.


압도적인 재능으로 그 시절 최고의 컨트리 스타였던 행크 스노를 밀어내고 파커 대령의 주수입원이 된 엘비스 프레슬리. 루어먼의 카메라는 이제 1956년 1월 10일 RCA 빅터사의 내슈빌 녹음실 내부까지 들어간다. 그날 스튜디오에선 가만히 서서 노래를 부르라는 프로듀서 스티브 숄스의 주문이 있었는데, 엘비스는 그렇게는 노래할 수 없다며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갔다. 주체할 수 없던 엘비스의 끼는 같은 해 6월 5일 밀튼 벌 쇼(The Milton Berle Show)에 출연해 'Hound Dog'을 부르며 비로소 폭발했고, 여성들을 히스테리로 몰고간 그의 골반과 다리 춤은 끝내 미국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다. 하지만 1950년대 미국은 엘비스의 전복적 몸부림을 방관하고 있을 만큼 너그럽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몸짓과 창법으로 보수층의 심기를 건드린 그날 방송 때문에 엘비스는 약 한 달 뒤 바셋 하운드 종 사냥개와 함께 텔레비전 쇼에서 '콜라보'하는 굴욕을 맛본다. 루어먼은 이 장면까지 고스란히 재연하며 당시 사회 분위기와 엘비스라는 존재의 마찰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환기시켰다.



파커 대령에게 엘비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돈벌이 수단이었다. 영화 대사를 빌리면 파커는 엘비스를 바라보는 소녀들 눈빛에서 '즐겨도 될까' 하는 죄책감(실제 한 기독교 언론은 엘비스의 퍼포먼스를 "옷을 입고 스트립쇼를 한다"고 표현했다)을 포착했고, 반대편에서 이글거리는 엘비스를 향한 증오(Hate)에마저 값을 매겼다(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는 1974년 엘비스가 약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을 때도 백 수 십회가 넘는 공연을 강행시켰다). 파커 대령은 비열함 측면에선 브라이언 윌슨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유진 랜디에 버금 갔고,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강압성 면에선 거의 피터 그랜트(레드 제플린 매니저)급이었다. 그 시절 엘비스는 파커 대령에게 하나의 인격체이기 전에 고객이고 상품이었다. 둘은 분명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동반자였지만 두 사람의 동행은 딱 그만큼 '적과의 동침'이었다. 루어먼은 후반부에서 파커 대령이 네덜란드 출신의 불법 체류자였다는 사실을 엘비스와 갈등의 매게로 삼으며 영화를 절정으로 데려간다. 나는 작품에 흐른 그 많은 곡들 중 유독 'Suspicious Mind'(엘비스의 생전 마지막 빌보드 1위 싱글이다)에 귀가 갔는데, 그건 마치 이 영화의 주제곡 같기도 했다. 연인 사이 질투와 배신의 감정을 다룬 그 곡은 정확히 파커 대령과 엘비스의 불편한 관계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즈 루어먼은 자신의 영화가 "같이 울고 떠들고, 함께 록 콘서트를 보는 것 같은 영화"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감독의 이 간절한 바람 뒤엔 엘비스 역을 맡은 배우 오스틴 버틀러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오스틴은 톰 행크스가 코로나19 확진으로 4개월 동안 세트를 비운 사이 감독이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엘비스와 비슷해지려 피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루어먼은 "만약 엘비스가 살아돌아온다면 오스틴을 보고 '넌 정말 나다'라고 했을 것"이라며 주연 배우의 노력을 칭찬했다. 그런 감독과 배우의 열정은 엘비스가 군 제대 후 흘려보낸 영화판에서의 10년 뒤 다시 무대에 선 두 역사적인 순간을 조명하며 비로소 빛을 발했다. 하나는 1968년 12월 3일의 NBC 스페셜 프로그램이었고, 다른 하나는 1969년에 라스베이거스의 갑부 커크 커코리언이 6천만 달러를 들여 세운 인터내셔널 호텔의 2천석짜리 쇼룸 공연이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엘비스의 검정색 올 가죽 패션으로 기억되는 NBC 컴백 스페셜 방송 '엘비스'는 최초 파커 대령이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고안하고 프로듀서 겸 감독인 스티브 바인더가 연출한 것이었다. 엘비스에겐 8년 7개월만의 TV 출연이었던 이 프로그램은 엘비스와 파커 대령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중요한 계기로서 영화에서도 꽤 비중있게 그려진다. 엘비스는 이 방송을 녹화하고 이듬해 6월 고향 멤피스에서 무려 13년 만에 녹음한 앨범 'From Elvis In Mempis'를 발표해 앞서 말한 'Suspicious Mind'로 7년 만에 빌보드 정상을 밟았다. 섹시한 가죽 패션을 하고 중앙 무대에 선 엘비스를 둘러싼 400명 관중의 표정 하나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댄 이 장면은 영화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엘비스가 생전 마지막 공연에서 부른 'Unchained Melody')와 더불어 가장 큰 울림을 준 'If I Can Dream'으로 막을 내린다. 한물간 줄 알았던 로큰롤 황제의 완벽한 컴백을 알린 이 방송은 당시 시청률 72%를 기록하며 미국 방송사에도 길이 남았다.


그리고 또 하나 엘비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로 기록될 라스베이거스 인터내셔널 호텔 쇼룸 공연. 스위트룸과 일반 룸만 1519개에 13만 리터가 넘는 수영장, 35층짜리 본관을 뽐내는 이 괴물같은 건물에서 엘비스는 앞선 방송 컴백의 여세를 몰았다(실제 엘비스는 생전에 이날 공연을 "내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밤이었다"고 말했다). 숨소리까지 돈의 논리로 환산할 줄 알았던 파커 대령은 이 공연 중에도 호텔 측과 엘비스의 5년 계약(정확하게는 향후 5년 동안 엘비스가 1년에 8주간 공연을 두 차례 나누어 하고, 그 대가로 엘비스가 주당 12만 5천 달러를 받는 조건이었다)을 맺는데, 영화에선 이 은밀한 거래가 엘비스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교차 편집되며 모종의 서스펜스를 이룬다. 이 계약 이후 첫 번째 무대에서 엘비스가 보여준 패션, 즉 "13센티미터 가까이 세운 칼라에 네크라인이 허리까지 떨어지는 흰 점프 수트"는 60~70년대 대한민국의 한 스타가 모방해 그때를 살았던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그 스타의 이름은 남진이었다.



배즈 루어먼의 '엘비스'는 올리버 스톤의 '도어스'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보다 제임스 맨골드의 '앙코르' 또는 테일러 핵퍼드의 '레이'에 더 가까운 접근법을 취했다. 즉 한 인간의 내면이 약물과 알콜로 바스러져가는 모습보단 주위 환경이 어떻게 한 사람을 외톨이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쪽을 루어먼은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들에서 루어먼은 결정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또다른 변수를 마주해야 했다. 바로 이 실화의 관련자 및 생존자들이었다. 가령 파커 대령과 더불어 이 영화의 중요한 인물로 그려지는 프리실라 볼리외가 14살 때 엘비스를 만나 이후 단 5년 만에 부부 관계를 끝내는 사이라는 걸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성년자였던 프리실라와 (엘비스의 사촌 빌리 스미스의 말처럼)"기회만 있으면 버리고 싶어했던" 엘비스의 아내 프리실라는 법적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는 상업 영화감독인 루어먼이 다루기엔 다소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었을 거라는 얘기다. "로큰롤은 아내를 허락하지 않지"라는 말을 심심찮게 내뱉곤 했던 엘비스는 프리실라와 이혼 후 그녀의 남자가 된 가라테 선생 마이크 스톤을 향한 질투로 M16 소총을 방안에 갈기기도 했는데, 이 역시 루어먼은 직접 묘사를 피했다.


때문에 분명 중요했지만 두루뭉술하게 다뤄진 글래디스 프레슬리와 엘비스 프레슬리 모자 관계를 비롯해 끊임없는 여성 편력, 약물 복용과 식탐(죽기 전 엘비스에게 처방된 약은 대략 1만 개에 이른다), 엘비스가 약에 찌들어 살 때 그의 곁에서 그의 목숨을 10여 차례 구해주었다는 린다 톰슨, 심장마비와 근육 경직으로 변기에서 최후를 맞은 엘비스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진저 앨든 등이 영화에서 증발한 것 역시도 사자(死者)와 산 자들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그랬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부득이 영화에서 누락된 이런 사실들은 관객이 책 같은 다른 자료를 통해 알아보는 수 밖엔 없겠다.


 저널리스트 제리 홉킨스는 미국이 세계에 기여한 것들  가지  하나가 엘비스 프레슬리였다고 말했다(나머지 둘은 코카콜라와 미키마우스다). 엘비스는 지금을 사는 우리와 너무  존재이지만  혁신성과 파격성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똑같은 영감을 준다. 배즈 루어먼이 엘비스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엘비스' 가장 현대적이면서 현재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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