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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25. 2022

잇단 가요계 표절 논란에 대중이 뿔났다!

이무진의 '신호등'이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왼쪽은 그 의혹의 원곡으로 여겨지는 세카이노 오와리의 'Dragon Night' 싱글, 오른쪽은 데파페코의 커버 버전이 담긴 앨범이다.


가요계 표절 문제가 제대로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표절은 잊을 만하면 불거지다 다시 흐지부지되는 형국이었지만 정보의 수준과 지적 수준이 동시에 업그레이드 된 현재 대중에게 유희열, 이무진 사태는 개탄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갖게 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한국 가요계의 숙성과 가능성을 각각 상징하던 두 음악인이 비슷한 시기에 표절 의혹에 휘말린 탓으로 보인다. 단, 한 명은 본인이 잘못을 시인했고 한 명은 소속사 입장을 빌려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대중은 그 부인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그걸 순순히 믿기엔 의혹의 정황이 꽤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표절 이야기를 해보기 전 먼저 표절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개념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자. 바로 레퍼런스와 오마주다. 영어인 레퍼런스(Reference)는 말 그대로 타인의 예술 세계를 '참고'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불어인 오마주(Hommage)는 평소 자신이 존경하던 예술가의 업적을 부분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인용할 때 붙이는 말이다. 가령 위켄드가 80년대 신스팝을 추구하는 것이 레퍼런스 쪽이라면, 위저(Weezer)가 근작 'Van Weezer'에서 보여준 각종 인용은 명백한 오마주의 영역이다. 특히 오마주는 남의 작품 일부를 가져와 쓴다는 면에서 패러디(Parody)와 곧잘 비교되기도 하는데 익살과 풍자를 목적으로 하는 패러디는 경외와 존경을 전제로 하는 오마주와 분명 차이가 있다. 물론 두 행위 모두 샘플링처럼 원작자의 허락 아래 원작자를 밝히고 합법적으로 한다는 것에선 같지만.


따라서 표절은 오마주와는 다른 개념이다. 표절은 비록 원작자를 향한 존경심은 포함할지언정 그 원작자를 밝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김민교의 '마지막 승부'와 김민종의 '귀천도애'가 법의 철퇴를 맞고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던 이유다. 반면 레퍼런스는 표절과 완전히 무관하진 않다. 왜냐하면 참고의 수준이 선을 넘으면 표절로 이어지기 십상이라 그렇다. 과거 2000년도에 6집을 들고온 서태지의 뉴메탈 레퍼런스가 표절 의혹을 산 지점도 그것이었고, 이번 유희열 사건에서도 관건은 도를 지나친 레퍼런스였다. 그러니까 서태지가 콘과 림프 비즈킷의 스타일을 흉내낸 일은 아슬아슬하게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사카모토 류이치를 향한 흠모가 지나쳐 그의 음악을 그대로 흉내내버린 데서 유희열의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유희열은 이를 과거 조지 해리슨이 그랬던 것처럼 "무의식"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유사성"을 인용한 것 같다고 해명했는데, 그가 사카모토 류이치를 향해 평소 밝혀온 경외심을 생각해볼 때 이는 대중에겐 구차한 변명일 수 밖에 없었다. 개인이 양심을 저버리고자 마음만 먹으면 사실상 실상을 밝혀내기가 어려운 표절 중에서도 '알았으면서 베끼는' 행위를 대중은 가장 질 나쁜 표절로 보기 때문이다. 표절 의혹의 무마는 보통 표절을 한 사람이 표절을 인정하는 경우와 표절을 당한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비칠 경우 사이에서 표류하게 마련이다. 이번 일에서 유희열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간접적 변호(?)에 힘입어 비교적 평화롭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이 두 경우를 모두 활용한 느낌이다. 이는 신해철이 생전에 자기 곡을 도용한 주다스 프리스트 측을 자신의 어릴 적 영웅이었다는 이유로 고소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일이었다.


필자 생각에  시끄러워질  같은 문제는 이무진의 경우다. 그의 시작이자 사실상 그의 전부에 가까운 '신호등'이라는 곡에  개월 여전부터 제기돼온 표절 의혹은 유희열 사례의 희생량으로만 치부하기엔 모호한 면이 있다. 우선 표절을 당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Dragon Night' 원작자인 세카이노 오와리가 이무진이 평소 좋아하는 팀이었다는 증언은 표절 행위를 부인할  있는 결정적 구실인 '무의식성' 배제해버린다. 그리고 3  일본의 기타리스트 오시오 코타로와 기타 듀오 데파페페가 결성한 콜라보 유닛 데파페코(Depapeko) 'Dragon Night' 어쿠스틱 버전은 흔히 법정에서 표절의 기준으로 삼는 '실질적 유사성' 면에서 '신호등' 거칠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  곡을 함께 들어본 사람들 중엔 5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 독일 그룹 블랙 푀스의 '드링크 도흐 아이네 (Drink doch eine met)' 사이의 유사성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무진의 소속사는 "구성과 멜로디, 코드 진행 등을 분석한 결과" 'Dragon Night' '신호등' 무관함을 대중에게 알렸다. 여기에 더해 해당 소속사는 "아티스트의 많은 고민과 노력으로 탄생한 음악" 이후 제기되는 허위 사실 유포에 강경 대응하리라는 방침까지 분명히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무진의 직접 해명이 아닌  "강경" 소속사  해명은 대중적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는 모양새다.


유희열의 '아주 사적인 밤'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 메인 테마와 거의 흡사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일본에선 표절을 도작(盗作)이라 부른다. 남의 작품을 훔쳤다는 말이다. 하지만 불법인 표절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법적 기준이 현실엔 없다. 앞서도 말했듯 개인의 양심, 양자간 합의 등 작품의 유사성/의거성/창의성을 기준 삼아 내리는 법적 판단 이전에 내려야 할 판단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중의 판단이다. 이들의 판단은 곧 해당 아티스트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변수일 수 있으므로 아무리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한들 '표절 의혹 뮤지션'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그 아티스트의 미래에는 어떻게든 빨간불이 들어오게 돼있다. 법적 무죄가 도덕적 유죄로 둔갑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음악에서 표절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유희열은 세상이 표절이라고 보는 '선을 넘은 레퍼런스'를 인정하고 13년을 넘게 진행해온 자신의 간판 같은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번에 의혹을 받은 곡들 외 과거 의혹을 받았어야 하는 곡들이 더 언급되고 있는 만큼 그는 현재 음악가로서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닌 것이다. 거기엔 법적 무마를 넘어선 도덕적 단죄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강경 대응을 예고한 이무진의 이후는 유희열보다 더 험난해보인다. 그리고 우린 이무진 자신의 입장을 아직 덜 들었고, 법적으로도 '신호등'은 적어도 지금까진 표절 곡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충분한 도덕적 타격을 받았다. 연예인에게 도덕적 타격은 당연히 이미지 타격, 나아가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말을 끝으로 하고 싶다. 의혹을 제기한 유튜버들도 그 의혹에 공감하는 팬(이었던 사람)들도, 추가 취재 없이 같은 말만 전달하는 언론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어쨌거나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노력한 사람들이 대우받는 세상, 순수 창작물이 베낀 창작물을 이기는 세상이지 특정 개인의 끝없는 추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ize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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