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Dec 02. 2022

거친 헤비니스 사운드의 궁극

Dog Last Page [Drunken Dream]


멋도 장르도 안중에 없이 그저 "러프한 헤비니스 사운드"를 추구하는 도그 라스트 페이지(DLP)의 정규작은 2015년 미니 앨범과 지난해 싱글로 선보인 곡들을 거의 다 포함해 세상에 공개됐다. 그러니 신곡만으론 또 하나의 미니 앨범에 가까운 모양새였겠지만 더 조이고 다진 기존 곡들의 퀄리티를 감안하면 'Drunken Dream'을 온전한 정규작으로 인정하지 못할 이유도 딱히 없어 보인다.


기본적으로 장르 구분을 지양하는 팀이긴 해도 7  이들은 자신들 음악을 "서던&그런지 메탈"이라 느슨하게 규정한  있다. 실제  밴드의 음악엔 하드코어, 그런지, 슬러지 메탈 성향이 고루 녹아 있는데 이는 멜빈스와 사운드가든, 매드볼과 바이오해저드, 크로우바와 다운(Down), 그리고 얼큰한 블랙 라벨 소사이어티를  앨범에서 들을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까 DLP 블랙 사바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과 더불어 자신들도 그런 존재임을 사운드와 스타일로 낱낱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밴드가 특이한 건 보컬리스트가 두 명(양권모, 한영규)이란 점이다. 록 밴드에서 트윈 기타 시스템은 흔하지만 트윈 보컬 시스템은 드물기에 DLP는 그것만으로도 주목받을 명분을 띤다. 보컬이 두 명이라는 건 무슨 얘긴가. 그건 음악만큼 메시지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밴드에서 보컬이 갖는 비중과 중요성을 늘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고 받거나 함께 내지르는 스크리밍과 그로울링의 조화를 보라. 곡의 서사에 입체감을 더하고 텍스트의 서사가 소리의 음압을 야무지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그것은 슬레이어의 속도감을 응용한 1분 34초짜리 트랙 '4758'에서 금세 확인된다.


물론 그럼에도 DLP 음악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홍성훈의 기타다. 잘게 쪼개는 솔로보단 덩이진 리프/리듬을 지향하는 그의 연주는 일단 군더더기가 없다. 무슨 말이냐면 헤비니스 음악을 즐길 때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헤비 뮤직을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홍성훈의 기타는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루브다. 가령 'Sentence to a Monster (7Monster)'나 판테라의 'The Great Southern Trendkill'처럼 쳐들어오는 'Metal Is Dead'에서 이 팀의 음악적 본론은 똑같이 홍성훈의 기타를 앞세운 들썩이고 덜컹이는 메탈 그루브, 그루브 메탈이라는 얘기다.



수록된 12곡이 모두 그렇다. 취한 꿈과 부서진 꿈은 다르다고 말하는 'Drunken Dream'은 그런 느리고 헤비한 이 앨범의 전반적인 정서를 앞서 전하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이 곡의 마지막 템포 체인지는 작품의 어느 트랙에서든 예기치 못한 '한 방'이 있으리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그 한 방을 대표하는 'We Are Alive'는 1분 28초부터 메탈리카 풍 리프를 꺼내들며 대체로 전투적이고 풍자적인 앨범 전체의 성향을 담보한다. 모든 록 밴드가 사회와 정치를 다룰 필요는 없지만 이 밴드 만큼은 둘 다를 어우르는 셈이다. 이를 위해 가사에는 직설도 있고 은유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본질은 분노와 행동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유명한 대사를 제목에 쓴 'Do or Do Not There is No Try(하느냐 마느냐만 있을 뿐, 해보는 건 없다)'는 때문에 어떤 면에서 DLP의 음악적 강령처럼도 느껴진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Dog Day Afternoon'은 그 강령의 핵심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꿈틀거리는 근육질 메인 리프가 그 자체 미로로 둔갑하는 이 곡은 스탠리 큐브릭이 좋아했고 봉준호가 리메이크 하고 싶다 밝힌 시드니 루멧의 걸작 '뜨거운 오후'를 다룬 것으로, 시종 혼란과 절망으로 무장한 가사는 에누리 없이 알 파치노가 열연한 주인공 소니의 불안한 심리에 다가가 있다. 해당 영화를 아는 이들에겐 더 구체적인 감정(감동)을 불러일으킬 트랙이다.


리더 홍성훈의 말에 따르면 이번 앨범은 술기운을 빌려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즉 그가 리프로 판을 깔면 보컬 두 명이 말(lyrics)로써 칼춤을 추고, 정가현(베이스)과 김홍기(드럼)는 저 세 명의 흐드러진 합이 매듭을 풀지 않도록 든든하고 튼튼한 플레이를 펼치는 식이다. 역시 과음은 음악이 길을 잃게 만들지만 적당한 취기는 이렇듯 음악에 흥을 더하는 터라 나는 밴드의 녹음 전 음주가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8분 가까이 처절하게 자멸하는 마지막 곡 'Falling Down'을 들어보라. 'Killing Machine'과 'Face Yourself' 같은 트랙도 물론이다.


'Drunken Dream'은 DLP가 등장한 2015년에 'Irreversible'을 발표한 블랙 메디신 이후 가장 잘 뽑아낸 슬러지(Sludge Metal) 계열의 헤비 유전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를 밀어내는 해탈의 헤비메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