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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08. 2023

어버이날의 생활형 '백 투 더 퓨처'

강백수 '타임머신'


"강백수의 '서툰 말'은 강백수의 자기 소개였다. 그것은 청년실업시대를 살아가는 한 청년의 구체적인 망연자실이었고, 자조 섞인 블랙유머였다. 친구 꼬임에 넘어가 딴따라가 되어 여자 친구의 순결주의에 좌절하고, 아픈 어머니 뒤통수에 마음 아파하며 돈만 생기면 술을 마실 거라던 그는 마치 '청춘이어서 아픈' 이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 같았다. 프로 시인 겸 뮤지션인 그는 때문에 첫인상부터 많은 해석을 불렀다. 시인인가 싱어인가, 글을 위한 노래인가 그를 위한 노래인가, '백수'는 본명인가 가명인가. 씨 없는 수박 김대중과 강산에의 중간에 선 그의 음악 세상은 그렇게 3년 뒤 나에서 우리로, '자아'에서 '주위'로 방향을 틀었다."


"'자아'에서 '주위'로 방향을 튼" 강백수의 2016년작 '설은'을 리뷰하며 그 전작인 '서툰 말'을 되돌아본 부분이다. 글 내용 그대로 강백수는 시인이면서 가수다. 세상은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한다거나 숲을 보기 전에 나무도 봐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강백수는 숲이고 나무고 모르겠고 당장 "눈앞의 이파리"를 바라보며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막연한 전체보다 구체적인 부분을 추구하는 그의 가사들은 그래서 대부분 경험담이다.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작품 '서툰 말'의 매력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 사실성(현실성)에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내 뇌리에 맴도는 그의 곡이 하나 있으니 바로 '타임머신'이다.


전주 없이 "어느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이라는 가정문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부모님이 잘나갔고 건강하시던 시절로 거슬러간 아들이 당신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때늦은 가이드를 해주는 노래다. 가령 1991년의 아버지를 만난 강백수는 "아버지,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잠실 쪽에 아파트나 판교 쪽에 땅을 사요" 말해드리고, 1999년의 어머니에겐 "엄마, 우리 걱정만 하고 살지 말고 엄마도 몸 좀 챙기면서 살아요" 얘기한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딴따라"가 될 것이니 자신을 너무 믿지 말라고, "못난 아들 용서하"시라고 고해(告解)처럼 양해를 구한다. 이 모든 노랫말이 봄볕 같은 코러스 화음과 피아노, 벚꽃 같은 하모니카 솔로를 품은 포크 록 사운드를 타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간다.


그냥, 그렇게만 흘러갔다면 '타임머신'은 참신한 소재로 편안한 멜로디를 들려준 신인 싱어송라이터의 주목할 만한 싱글로 남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이 노래엔 슬픈 반전이 있다. 바로 2004년도에 "엄마를 떠나 보낸" 강백수의 사연이다. 노래 들어가고 2분 정도 지나 밝혀지는 이 슬픈 순간 너무 힘들어 하고 계신 "2013년에 육십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까지 오버랩 되면서 듣는 사람은 괜히 더 가슴 뭉클해지는데, 이어 등장하는 노랫말("엄마가 좋아하던 오뎅이나 쫄면을 먹을 때마다 내 가슴은 무너져요")까지 듣고 나면 더는 눈물을 참기란 쉽지가 않다. 힘찬 포크 록을 뼈대로 삼아 아직 곁에 계시거나 이젠 곁에 없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슬픔을 빌드업 해나가는 이 노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인디 음악계가 토해낸 생활형 '백 투 더 퓨처'였다.



'타임머신'의 마지막 가사는 "지금도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께 잘 해야지"다. 언젠가 강백수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이면서도 제일 안 친한 사람이 아버지"라고 말했다. 결국 이 노래는 먼저 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노래이면서 홀로 남으신 아버지를 향한 효도의 다짐이기도 하다. "딴따라의 쓸모없음, 그 자체가 딴따라의 쓸모"라며 예술적 너스레를 떠는 강백수의 이 명곡은 신나면서 먹먹한 음악이 반드시 250의 뽕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이 글은 졸저 <지금 내게 필요한 멜로디>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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