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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12. 2023

환경 문제에 진심이었던 90년대 스타 그룹, 공일오비

이 글은 격월간지 <살맛나는 세상>에도 실렸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 버리고 오시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해 내놓는 집은 우리 밖에 없더라." 일반 쓰레기봉투 구석구석에 음식물 쓰레기를 대충 끼워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였다. 쓰레기 분리 문제만이 아니다. 동네 쓰레기장엔 언젠가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최근 한국환경연구원(KEI) 실시한 '국민환경의식조사' 따르면 응답자  70퍼센트 가까이가 '쓰레기·폐기물 처리 문제' 한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로 꼽았다. 언뜻 1 가구가 늘면서 함께 증가한 배달 음식 용기가 불러온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편하게 먹고 대충 버리려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일 것이다.  하나가 조금만  불편해지면 환경도 사회도 사람도  나은 상황을 누릴  있을 텐데, 집단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공일오비(015B, 空一烏飛)라는 팀이 있다. 1990년에 데뷔해 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린 그룹이다. 이들의 역사는 1988년 MBC 강변가요제까지 거슬러 간다. 음악의 핵심 인물인 정석원은 그 대회에 '실험실'이라는 그룹 멤버로 나가 고배를 마셨다. 같은 대회에는 신해철도 아기천사라는 그룹의 보컬로 출전해 '기다림은 사랑의 시작이야'를 불렀지만 이 팀 역시 탈락하고 만다. 몇 달 뒤 신해철은 무한궤도를 꾸려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해 데뷔 앨범을 내는데, 이때 눈여겨봐 두었던 정석원을 건반 주자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무한궤도는 곧 해체했고 신해철은 솔로로 데뷔해 아기천사의 노래를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바꿔 불러 시대의 아이돌로 급부상한다. 비록 솔로는 아니지만 정석원도 앨범을 만들어보라는 회사(대영기획)의 권유로 친형인 장호일, 무한궤도 멤버였던 조형곤과 함께 팀을 짰으니 바로 공일오비였다.


정석원은 공일오비가 직업 밴드가 아닌 동호회 같은 밴드였다고 했다. 멤버들 각자가 생업을 갖고 음악은 필요할 때 녹음과 공연만 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가수 윤종신의 데뷔곡 '텅 빈 거리에서'가 있는 공일오비의 데뷔 앨범 참여진을 주위 친구들 위주로 섭외한 것도 그래서였다. 신해철의 솔로 데뷔에 집중했던 회사의 무관심에도 아랑곳 않고 남몰래 히트를 일궈 낸 '텅 빈 거리에서'는 공일오비가 단발성 그룹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사랑 감정에서 공공의 환경 문제까지 아우르며 90년대 초중반 가요계를 지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단, 이들은 싱어만 관심을 받는 것에 환멸을 느끼던 터라 팀 자체를 프로듀서 중심으로 짜 객원 가수 시스템을 운영했다. 윤종신을 비롯해 이장우, 김태우, 조성민, 김돈규 등이 그 시스템을 거쳤다.



추천곡



'4210301' (1991, 지구/대영기획)




공일오비는 발라드, 댄스 곡을 넘나들며 세대를 대변하고 세태를 비판하는 곡들을 꾸준히 냈다. 환경 문제는 특히 이들이 천착해온 주제로 당시 환경청 전화번호를 제목으로 쓴 이 곡은 그 출발이었다. 90년대 초 유행한 '시퀀서'라는 장비가 사운드를 주도하는 이 곡은 언뜻 사랑 노래 같지만 "짙은 안개와 흐린 물속에 우린 모두 사라지지" 같은 가사는 곡이 말하려는 바를 뚜렷이 전하고 있다.



'적(敵) 녹색인생' (1992, 대영기획)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라는 공전의 히트곡과 '수필과 자동차'라는 수수한 히트곡에 가려 큰 빛을 보진 못했지만 공일오비식 환경 음악 역사에선 꽤 중요한 곡이다. 노래마저 인공 악기를 배제한 친환경적 방법(아카펠라)으로 부른 곡의 직설적 메시지("우리가 내던진 많은 무관심과 이기심 속에 이제는 더 이상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없잖아")는 2023년인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철이의 독백' (1993, 동아기획)




1992년부터 96년까지 이어진 환경보전 슈퍼콘서트의 부제 '내일은 늦으리' 시리즈에 수록된 곡이다. 공일오비의 이름으로 실렸지만 작사와 작곡, 노래를 모두 장호일이 했다. 기타리스트가 만든 곡인 만큼 곡 전체가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정통 블루스에서 주로 쓰는 슬라이드 기타 소리가 귀에 잡힌다. 노랫말은 '철이'라는 아이가 엄마에게 환경보전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아직도 희망은 있어 (세상의 어린이들에게)' (1994, 대영에이브이)




디지털 사운드가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 공일오비 5집 수록곡이다. 가사는 마치 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철이(어린이들)에게 엄마(어른들)가 보내는 대답처럼 들린다. 그들은 "너에게 원했던 것은 우리의 권위뿐 전쟁과 환경 따위는 숨겨왔었지"로 자신들의 이기심을 자백하고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만이 "찌든 세상"을 구원하리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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