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록의 전설
8년 만의 내한공연을 확정한 콜드플레이에 달린 저 표현을 두고 일부 음악 팬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었다. 쟁점은 두 가지로, ‘콜드플레이가 무슨 전설이냐’와 ‘콜드플레이가 록이라고?’였다. 이런 공허한 논쟁이 대개 그렇듯 정답은 없겠지만, 전자의 내용은 이미 현실이 되었거나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여서 콜드플레이를 두둔하는 쪽이 유리해 보인다. 문제는 후자 쪽인데, 콜드플레이가 과거에는 록 밴드였을지언정 지금은 아니라는 의견은 그간 음악 행보를 감안해 보면 충분히 타당하기 때문이다. 최근 재결성 발표를 한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환장하겠네, 콜드플레이가 무슨 록이야?”
리암이 기가 차서 내뱉은 말뜻은 옛날엔 저들 음악에 록 성향이 있었던들, 지금은 록 밴드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크리스 마틴의 집에서 차를 마시며 라자냐를 먹곤 했던 리암은 저들과 아무리 친해도 공과 사를 구분하며 말하고, 행여 독설이라도 하고 싶은 말이면 남 눈치 보지 않고 얘기하기 때문에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어쩌면 콜드플레이 팬들이 콜드플레이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지 모른다. 저들이 20년 넘게 사랑받아온 비결 역시 록만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조니 버클랜드(기타)의 말처럼 모든 건 분명 얼터너티브 록 넘버 ‘Yellow’에서 시작됐지만, 애초에 밴드는 거기에만 갇혀있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그들은 밴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 노출이 밴드의 정체성으로 기울게 했으며, 정체성은 곧장 성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했다. 혹 그들이 록 음악에만 매달렸다면 우린 ‘사람의 아들(بنی آدم)’ 같은 페르시아어 제목을 단 곡이나 ‘Higher Power’라는 신스팝 트랙을 만나지 못한 채 ‘X&Y’를 콜드플레이의 마지막 앨범으로 기억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흔히 위대한 밴드는 두 부류로 거칠게 나뉜다. AC/DC처럼 한 패턴으로 밀어붙이는 우직한 부류가 하나라면, 콜드플레이처럼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부류가 두 번째다. 그들은 ‘Viva La Vida’부터 록이라는 한 길을 미련 없이 거부했다. 나는 그 앨범이 콜드플레이의 ‘OK Computer’였다면, ‘Midnight’가 수록된 ‘Ghost Stories’는 그들의 ‘Kid A’였다고 보는 쪽이다. 물론 그들은 라디오헤드처럼 안드로메다까진 가지 않고, 마룬파이브처럼 지구에서 자신들의 우주를 펼쳐 보이기로 했다. 그렇게 ‘Adventure of a Lifetime’과 ‘Sunrise’, ‘Coloratura’ 같은 곡들로 밴드는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개척해 나갔다. 그들은 트렌드를 좌시하지도, 그렇다고 자신들을 버리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세팅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팀이 되었다.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는 음악가에게 시공간 및 장르의 한계는 장애일 수 없는 법. 이는 콜드플레이를 ‘전설’로 부를 수 있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참(truth), 호기심, 그리고 오픈 마인드
크리스털 와인 잔을 퍼커션으로 쓴 ‘X&Y’의 수록곡 ‘Low’에 신시사이저 연주를 얹어주었고, ‘The Unforgettable Fire’와 ‘The Joshua Tree’라는 명작들을 통해 유투(U2)를 더 넓은 곳으로 인도해 준 앰비언트 거장 브라이언 이노가 콜드플레이에게 해준 저 말은 그대로 팀의 창작 지침이 되었다. 저 세 가지 요소를 가슴에 새긴 이후로 콜드플레이는 참되고 흥미진진한 무언가를 발견하면 바로 실행에 옮겨온 것이다. ‘Viva La Vida’부터 ‘Music of the Spheres’까지 모두 그랬다. 크리스 마틴이 “밴드 스스로 즐거움을 찾으려 만든 앨범이자 가장 콜드플레이다운 앨범”이라고 소개한 이번 열 번째 작품 ‘Moon Music’도 다르지 않다. “도전 앞에서 한줄기 빛과 한 줄의 설명이 되어주는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에게 록이냐 아니냐는 지루하고 부차적인 문제다. 록인들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칼 세이건이 지구를 묘사한 “생명이 약동하는 활력”만 그 안에 있으면 그것이 곧 콜드플레이의 음악이다.
콜드플레이의 저력은 음악이 품은 긍정과 희망, 자유의 기운, 또 공감과 위로의 온기에서 나온다. 일상과 우주를 넘나들며 캐내는 이 보편적 가치들의 전염성은 굉장해서, 분열하고 적의에 휩싸일수록 그것은 사람들에게 더 당겨지고 흡수된 뒤 내면화 된다. 팀 저력의 요소 중 다른 하나는 브라이언 이노가 주문한 오픈 마인드다. 콜드플레이는 의미 있는 음악을 위해서라면 한계와 경계를 두지 않는다. 가령 ‘Ink’라는 곡에 팬의 작품을 공식 뮤직비디오로 활용하거나 호주 시드니의 킹 스트리트에서 원맨밴드 콘셉트로 거리를 활보하며 ‘A Sky Full of Stars’ 뮤직비디오를 팬들과 함께 완성하고, ‘Amazing Day’의 뮤직비디오에 전 세계 사람들이 찍어 보낸 영상을 삽입한 사례들이 그렇다. 덧붙여 2019년작 ‘Everyday Life’ 때부터 본격화한 집단 창작 시스템 역시 그 일환으로, ‘Princess of China’의 리아나 이후 공격적으로 감행한 페미 쿠티(아프로비트 선구자 펠라 쿠티의 아들), 아비치(Avicii), 토베 로(Tove Lo), 셀레나 고메즈, 제이콥 콜리어, BTS와의 협업은 더 좋은 음악을 위해 안팎으로 문을 활짝 열어둔 그 시스템의 구체적인 전략이었다.
‘Moon Music’은 아침에 일어나서 우울하고 고립되고 분리되고 외롭고 나 자신이 될 수 없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끔찍한 느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이 앨범은 하루의 끝에서 그런 느낌과 정반대 감정을 맛보는 여정이기도 하죠.
크리스 마틴
10집에서 그 문은 더 활짝 열려, 크레디트를 보면 너무 많은 참여자 명단 때문에 이 앨범이 콜드플레이의 앨범이 맞나 싶을 정도다. 예컨대 작곡에만 10명이 따로 붙은 ‘We Pray’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까지 모호한 식이다. 단, 콜드플레이의 협업 아티스트 선정에도 원칙 아닌 원칙은 있다. 바로 유명세가 아닌 아티스트의 재능이다. 실제 밴드는 이 재능들을 발굴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현지에서 파티를 열어왔다고 한다. “다른 문화, 국가, 성별 쪽으로 밴드를 확장하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그게 바로 저희의 신념이죠.” 크리스 마틴의 말대로 콜드플레이는 이번에도 그 신념에 따라 ‘노래가 원하는 사람인가?’, ‘콜드플레이가 좀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사람인가?’, ‘우리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인가?’ 정도의 조건에 맞는 이들을 ‘Everyday Life’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맥스 마틴과 논의해 섭외했다. 영국 래퍼 리틀 심즈와 영국 일렉트로닉 프로듀서 존 홉킨스(Jon Hopkins)를 비롯해 나이지리아 가수 버나 보이(Burna Boy)와 아이라 스타(Ayra Starr), 팔레스타인계 칠레 뮤지션 엘리아나(Elyanna), 아르헨티나 배우 겸 모델 겸 가수인 티니(Tini)가 다 그렇게 뽑힌 사람들이다.
스페인 타리파에 있는 푼타 팔로마 스튜디오와 미국 LA 소재 레인포레스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Moon Music’의 예산은 약 600억 원. 거대한 사운드 디자인으로 작품의 문을 여는 IDM 넘버 ‘Moon Music’을 두고 크리스 마틴은 “천국의 너머를 믿으려 노력하는” 곡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핑크 플로이드를 닮은 광활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압도적인 ‘Neon Forest ANGEL SONG’과 브라이언 이노가 중심이 돼 엮어낸 벅찬 앰비언트 텍스처로 듣는 사람의 감정을 정조준하는 끝 곡 ‘ONE WORLD’는 재킷 아트워크로 쓴 아르헨티나 사진작가 마티아스 알론소 레벨리의 달무지개(moonbow) 사진과 자연스레 중첩된다. 이 모든 결과물이 저 풍성한 예산 덕분에 가능했다.
언젠가부터 콜드플레이 음악의 한 축이 된 디스코 풍의 ‘Good Feelings’는 아프리카를 떠나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너간 두 이민자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조나스 카피냐노 감독의 2015년작 ‘지중해(Mediterranea)’에서 영감을 얻은 곡으로, 노랫말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커플의 전화 통화 내용을 담고 있다. ‘Good Feelings’가 벌어들일 모든 로열티는 난민 자선 단체인 ‘추즈 러브(Choose Love)’에 기부된다.
이 외에도 벤 모르(Ben Mor)가 연출한 ‘feelslikeimfallinginlove’의 수화(手話) 뮤직비디오나 2000년대 초반 콜드플레이 스타일을 들려주는 ‘ALL MY LOVE’, ‘MOON MUSIC’의 대척점에 있는 화려한 EDM 트랙 ‘AETERNA’ 등 “음악은 사람들의 행복과 그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데뷔 때부터 간직해 온 밴드의 오랜 음악 철학은 앨범 ‘Moon Music’ 전반에 반영돼 있다.
끝으로 소식 하나. 크리스 마틴은 NME와의 인터뷰에서 2025년에 콜드플레이의 마지막 앨범, 즉 밴드 이름을 내건(셀프 타이틀) 12집을 발매하고 팀을 해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크리스는 같은 인터뷰에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엮여 있는 11집은 애니메이션 작업에 시간이 걸려 12집 뒤에 나오리란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에도 들르기로 한 2025년 투어는 그래서 콜드플레이의 ‘끝의 시작’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