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설정이 구속이 될 때가 있다. 음악에서라면 솔로냐 그룹이냐부터, 어떤 음악을 하리라는 장르 선택까지 어우를 이슈다. 출발이 곧 색깔이 되고 향후 정체성이 되므로 설정 이슈엔 되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2021년 말 JYP가 내놓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이하 ‘엑디즈’)의 경우, 이들은 아이돌 그룹과 록 밴드를 동시에 보여주어야 하는 ‘아이돌 록 밴드’로서 자신들을 설정했다. 아이유, 저스틴 비버와 호주 밴드 파이브 세컨즈 오브 서머(5 Seconds of Summer)가 멤버들의 음악 취향을 가로지르고 있는 만큼 이들 음악은 그래서 팝과 록의 포옹 안에서 싹튼다. 이제 웬만한 스타일은 나올 만큼 나온 록 장르가 무한대의 혼종을 지향하는 팝과 엮이는 건 그래서 엑디즈 같은 밴드에겐 자연스러운 방향이고, 실제 이 방향은 2020년대를 뚫고 나가는 비교적 젊은 세계 록 밴드들의 공통된 경향이기도 하다.
다시. 엑디즈는 록 밴드이기 전에 아이돌 보컬 그룹이다. 6인조 라인업에서 싱어 멤버가 메인 보컬 둘을 포함해 네 명인 건 그래서다. 악기 연주에만 집중하는 멤버는 리드 기타리스트 준한(Jun Han)과 드러머 건일뿐, 가온(리듬 기타)과 오드(O.de, 신시사이저)는 잠시 연주를 쉬면서 랩을 하고 주연(베이스)과 정수(키보드)는 주거니 받거니 고음 절창을 이어간다. 우린 ‘PLUTO’ 같은 곡에서 이 현란한 상황을 지켜본 바 있다. 그리고 이들의 라이브를 확인한 사람이라면 이 스튜디오 녹음 상황이 무대 공연이라는 실전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으리라.
엑디즈는 부지런하다. 데뷔 한 지 이제 3주년을 맞는데 발표한 앨범들만 정규앨범 한 장에 정규앨범 같은 미니앨범 다섯 장을 더해 도합 여섯 장이다. 1년에 두 장씩은 꼭 냈다는 얘기다. 예술이란 것이 자판기가 아닌 이상 내고 싶다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감안할 때, 이 드문 다작 성향은 자신들의 모든 곡들에 시작부터 지금까지 창작자로서 관여해 온 엑디즈 멤버들의 욕심과 의지를 대변한다. 그 발표작들 중 현재까지 유일한 정규 앨범인 ‘Troubleshooting’은 실상 엑디즈 음악의 분수령이었다. 즉, 지난 미니 앨범 네 장으로 조금은 복잡하게, 그러면서도 트렌드와 대중성을 동시에 점검하며 자신들의 색깔을 탐색해 온 이들이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은 듯한 음악을 해당 정규작에서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꿈을 꾸는 소녀’와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 그리고 일본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인 미야비(MIYAVI)를 좋아하는 준한의 화끈한 리드 기타를 앞세운 ‘Money On My Mind’ 같은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제(2024년 10월 14일) 선보인 따끈한 신보 ‘LIVE and FALL’은 그 분수령에서 불과 6개월 뒤 발표한 작품이다. 역시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후렴구 멜로디가 계속 보강되고 있다는 느낌이 전작을 잇는데, 가령 제목처럼 만화 주제곡으로 써도 될 법한 ‘소년만화’와 멤버들이 멋진 수트를 입고 찍은 뮤직비디오가 볼 만한 헤비 멜로딕 넘버 ‘LOVE and FEAR’의 싱어롱 코러스는 그 확실한 예들이다(두 곡 모두에서 ‘Break the Brake’의 에너지와 ‘AGAIN? AGAIN!’의 팝 펑크 유전자가 동시에 살아 펄떡인다.) 아울러 곡이 지닌 어둡고 간절한 분위기를 반짝이는 탑 라인으로 풀어나가는 ‘Save me’ 역시 ‘쉽게’ 다가오기는 마찬가지이며, 레이블 선배 팀인 데이식스처럼 밴드 이전에 보컬 그룹이기도 하다는 걸 증명하는 애절한 왈츠 트랙 ‘Night before the end’도 ‘Dear H.’ 같은 곡과는 다른 바이브로 이들의 성숙해진 이면을 내비친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파격적일 뉴메탈 곡 ‘iNSTEAD!’는 주연의 베이스가 주도하는 ‘FEELING NICE’처럼 장르 마니아 성향의 트랙으로, 처음 음원만 듣고선 후렴구의 강력한 스크리머가 누구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대선배 윤도현이었다. 윤도현은 제목을 내지르는 스크리밍 파트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이 베테랑의 거친 존재감은 그대로 곡 전체를 지배해 버린다. 그 외 라흐마니노프와 얼터너티브 록이 공존하는 뮤즈(Muse)의 음악 세계를 닮은 ‘XYMPHONY’는 리더 건일의 롤모델이 뮤즈인 만큼, 앞으로 엑디즈가 추구해 나갈 음악 스타일을 점쳐볼 수 있을 지점일 것도 같다. 개인 의견으론 앨범을 여는 ‘XH_WORLD_75’는 이후 엑디즈의 라이브를 여는 곡으로 쓰면 어떨까 싶다.
BTS가 데뷔 초 국내 힙합계의 색안경을 감당해야 했듯,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도 어쩌면 비슷한 편견을 넘어서왔거나 앞으로도 넘어서가야 할지 모른다. 이번 앨범까지 들어본 결과 ‘Man in the Box’라는 제목을 보고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를 떠올리거나, ‘Paranoid’라는 단어에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감지하는 깐깐한 올드 록 팬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하는 팀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록 밴드에게 ‘아이돌’이라는 설정이 반드시 구속이 되리란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