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 조용필은 배명숙의 가사에 곡을 붙인 ‘창밖의 여자’와 정치적 냉전에 짓눌린 국민들의 애환을 보듬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발라드, 트로트의 경계에 서서 싱어송라이터의 긴 항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저 곡들과 더불어 시대를 앞서간 ‘단발머리’, 시대를 밝혔던 ‘촛불’, 작사가 김순곤과의 인연이 시작된 ‘고추잠자리’는 80년대 조용필 독주(獨走)의 구체적인 서막이었다. 지명길이 1집 리마스터링반 라이너노트에 썼듯 당시 조용필이 구사한 로드 스튜어트, 조 카커 풍의 탁성과 그 반대쪽 타고난 미성의 조합은 피를 토하며 소리를 연마한 끝에 불러냈다는 ‘한오백년’에서 18집의 ‘꿈의 아리랑’까지 이어진 국악에 대한 애착을 넘어, ‘친구여’가 있는 5집의 가곡(‘선구자’)에도 거침없이 뻗어 내렸다. 팝과 민요의 중간에서 장엄하게 뒤척였던 ‘한강’은 그 장르 편력을 대표하는 사례였다.
본인에 따르면, 과거엔 방송과 공연 활동으로 바빴던 탓에 한 앨범이 조용필 주도로 가면 다음 앨범은 음반사 주도로 가곤 했다. 6집처럼 ‘정의 마음’ 한 곡만 빼고 모두 다른 사람들의 곡으로 채운 앨범과 ‘꿈’을 포함한 모든 트랙을 자신이 만든 13집이 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에 공존하는 이유다. ‘눈물로 보이는 그대’, ‘어제, 오늘,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 등을 담은 7집을 명반의 반열에 올리고 ‘서울서울서울’, ‘모나리자’가 있는 10집으로 서울올림픽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조용필은 정욱, 정풍송이 함께 써낸 ‘허공’과 ‘생명’이라는 곡을 불러 보통 가수라면 저어했을 정치적 입장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양인자, 김희갑 콤비가 빚어낸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그 겨울의 찻집’으로 전성기의 정점을 찍은 조용필. 이후 박주연이라는 90년대 명 작사가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로 대중과 인사한 12집과 최태완(피아노), 한정호(키보드), 이태윤(베이스), 최희선(기타), 김희현(드럼)이 있던 위대한 탄생을 데리고 ‘밴드로서 협업’을 들려준 15집, 조용필 중후반기 명곡 ‘바람의 노래’가 수록된 16집, 중장년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은 ‘기다리는 아픔’이 대표한 17집까지. 팬이 아닌 대중의 기억 속 조용필의 음악은 대략 이때쯤에서 희미해져 갔다. MZ를 포함한 전 세대와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19집의 사회적 현상은 마케팅 차원에서의 승리였지, 음악이 조용필을 대표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그리고 20집이다. 수록된 노래는 일곱 곡. 통념에 비춰봤을 때 정규작이라기엔 그 수가 좀 적다. 그렇다고 20분에 가까운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같은 대곡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짧으면 3분대 초반, 길어야 5분에 가까운 곡들이다. 게다가 2년 전 서곡(Prelude)으로 공개한 ‘찰나’와 ‘세렝게티처럼’, 지난해 봄에 들려준 ‘Feeling of You’와 ‘라’를 빼면 신작에서 사실상 새 곡은 세 곡뿐이다. 그래서 김이 좀 새는 감은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20’은 그의 마지막 앨범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앨범이기 때문이다.
문은 ‘그래도 돼’가 연다. 제목에서부터 곡이 전하려는 바가 확 느껴진다. 넘어져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는, 그 이탈과 추락을 딛고서야 진정한 인생을 알 수 있으리라는 보편적인 위로의 메시지. 가사는 버즈의 ‘가시’를 쓴 임서현이 지었고 작곡은 독일 하드록 밴드 스콜피온스와 핀란드 얼터너티브 록 밴드 라스무스(The Rasmus), 역시 핀란드 출신인 심포닉 메탈 밴드 아포칼립티카(Apocalyptica) 등의 작업을 도운 스웨덴의 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마르틴 한센에 노르웨이 디제이 카이고(Kygo)의 ‘Firestone’에 피처링한 것으로 유명한 호주 싱어송라이터 콘래드 슈얼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들과 함께 작곡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올해로 70세가 된 캐나다의 멀티 연주자 미첼 루이스는 베이스를 맡았으며, 피터 텝과 매튜 코플리는 트윈 기타 연주를 위해 피크를 집었다.
‘그래도 돼’는 신곡들 중 유일하게 뮤직비디오도 있다. 배우 이솜과 박근형, 변요한과 전미도를 캐스팅 한 이 영상에는 ‘국민학교’ 학예발표회장을 비롯해 대학입시고사장, 군대 훈련소, 심지어 달나라까지 등장해 한 여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시공 초월의 명상을 주마등처럼 펼쳐낸다. 여기엔 특이하게도 ‘괴물’, ‘부산행’,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옛 ‘천만’ 영화들 장면이 동원됐는데 글쎄, 없어도 충분히 이해될 영상에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유머를 의도했겠지만 결과적으론 잉여가 되어버린 편집이다.
이 뮤비를 연출한 이주형 감독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유치하게 느껴질 만큼 깜깜한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당신을 응원하는 음성과 시선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 응원의 연출 의도와 별개로 나는 “노래에 담긴 뜻은 곧 부른 사람의 마음”이라는 조용필의 가수로서 철학에 비춰, 극 중 긴 생을 돌아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어쩌면 70대 중반에 이른 가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한 미들 템포. 어떤날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 속 공허를 닮은 투명한 기타 리프. 늘 소리를 중시해 온 조용필의 창작 지론에 따른 “고해상도 사운드”. 곡 후반부를 찌르는 하모닉 기타 솔로가 대변하듯 13집과 16집처럼 해외 연주자들의 손맛을 빌린, 장르적으로 위화감 없는 ‘로커 조용필’의 록발라드가 바로 ‘그래도 돼’였다.
2년 전 발표한 “밝고 역동적인 기운이 풀가동”하는 ‘찰나’가 앞 곡의 뭉클함을 시원하게 걷어내고 나면 또 다른 일렉트로닉 팝록 스타일의 신곡 ‘Timing’이 시작된다. 마지막 하우스 트랙 ‘라’에 참여했던 마이클 제임스 다운과 영국의 작곡 및 음악 프로덕션 회사 하이키 뮤직(Highkey Music)을 함께 이끌고 있는 윌 테일러, 프리모즈 포글러젠 등 다섯 명이 머리를 맞대 조립한 곡으로, 사랑 고백과 인생의 타이밍에 관한 노랫말은 마찬가지로 임서현이 썼다. 19집을 이어 시대와 세대를 지워내겠다는 가수의 의지가 느껴지는 가운데, 역으로 사색하고 사유하던 그 옛날 바람 같던 조용필 풍 시(詩)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많은 생각이 들게 할 트랙이다.
아프로 리듬 안에 “인간의 탄생과 극복, 그 둘을 감싸는 자연의 웅장한 서사”를 담아 ‘찰나’와 함께 선보였던 ‘세렝게티에서’가 이어지고, 그 붕 뜬 분위기를 끌어내리는 ‘왜’가 다음 곡으로 흐른다. 샤이니, 엑소, 슈퍼주니어 등 SM엔터테인먼트 쪽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안드레아스 요한손을 주축으로 써낸 이 곡에서 요한손은 프로그래밍, 건반,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은 물론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까지 모두 연주하며 이 노래의 사실상 창작자가 자신이라는 걸 크레디트로 누설한다. 음악과 사운드로 분산된 감이 없지 않았던 앞선 곡들과 달리 ‘가수 조용필’의 참맛을 집중 경험할 수 있는 곡으로, 물론 전성기 때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되레 그렇기 때문에 그때와 비교할 필요가 없는 노장의 농익은 상념이 ‘왜’에는 처연한 이끼처럼 박여있다.
1981년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조용필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대중 가수이기 때문에 열심히,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를 만들 뿐입니다.” 2024년 현재, 갈등과 혼돈이 만연한 한국의 대중에겐 긍정과 희망이 필요해 보인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고 주어진 지금에 충실하자는 ‘라’를 마지막 곡으로 배치한 ‘20’은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한 거장의 따뜻한 마음과 비트로 한가득이다. 혹여 과거의 가왕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살짝 낯설거나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을지언정,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