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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27. 2016

RHCP - The Getaway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이유있는 변신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이하 ‘RHCP’)는 91년작 ‘Blood Sugar Sex Magik’으로 밴드 위상에 터닝포인트를 찍고, 세기말의 ‘Californication’과 2006년작 더블 앨범 ‘Stadium Arcadium’으로 밴드 지명도의 정점을 찍었다. 모두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가 플리(베이스), 앤소니 키디스(보컬), 채드 스미스(드럼)와 함께 했을 때 이루어낸 성과들이다. RHCP 음악 스타일에 크게 기여한 존 프루시안테를 떠나 보내고 처음으로 내놓은 2011년작 ‘I’m With You’는 그래서 이 밴드의 조용한 추락, 그 시작처럼 보였다. 역설적이게도 프루시안테의 친구이자, 그의 솔로 앨범들에서 맹활약한 멀티 플레이어 조쉬 클링호프(기타, 키보드, 베이스, 백킹 보컬)가 팀에 들어오면서 RHCP의 미래가 불안해진 것이다. 실제 누가 들어도 조쉬의 기타는 자신만의 사이키델릭이 있었던 프루시안테의 기타 공백을 메우기엔 힘에 부쳐 보였다.

그렇게 수 년이 흘렀다. 91년의 영광 이후 가장 조용한 몇 해를 보냈을 그들에게 다음 앨범을 위한 서른 곡이 쌓였고, 이들은 그것으로 하루 빨리 상처 입은 명성을 치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노우보드를 타다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플리 덕분에 앨범 발매는 잠정 보류되고 만다. 이것이 계기가 된 것인지 밴드는 오랜 벗인 릭 루빈 대신 날스 바클리의 데인저 마우스를 새 프로듀서 자리에 앉히면서 기존과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겠단 의지를 굳혀나갔다. 믹싱은 라디오헤드와 작업으로 유명한 니겔 고드리치. 이는 분명 니겔이 톰 요크와 플리의 프로젝트인 아톰스 포 피스(Atoms for Peace)의 멤버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배치였을 게다.

우여곡절 끝(5년만이다)에 RHCP의 11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Getaway’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좀 다르다. 프로듀서가 바뀌어 소리 질감이 이질적인 것과 더불어 전작의 평범했던 음악 수준도 다시 비범해졌다는 점에서 ‘달라졌다’는 얘기다. 엘튼 존의 피아노까지 더해 보다 향기롭고 여유로우면서도 RHCP 하면 떠오르는 백만불짜리 훵크 그루브도 놓치지 않아 일단 좋다. 혹자들은 ‘give it away’나 ‘coffee shop’, ‘around the world’의 두꺼운 탄력과 비교하며 ‘the getaway’, ‘the hunter’의 모자란 그루브 또는 낯선 사운드를 지적하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차라리 프루시안테의 부재를 얘기하며 조쉬의 연주가 아쉽다는 식으로 접근했으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 그루브가 부족하거나 없다는 식의 평가는 당장 플리의 자극적인 슬래핑 연주가 불을 뿜어대지 않아 생긴 편견 같은 것으로, 조금은 부당해보인다. 예컨대 첫 싱글 ‘dark necessities’에서 플리의 베이스 연주만 들어봐도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불평인지는 단박에 드러난다.

이 앨범은 대게 훌륭한 작품들이 그렇듯 한 두 번 듣고 판단할 앨범이 아니다. 적어도 대여섯 차례 이상은 감상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앨범이다. 처음엔 산만하게 들릴 ‘we turn red’의 쫄깃한 맛도, 심심해보이던 조쉬의 기타가 ‘sick love’와 'feasting on the flowers' 같은 곡에서 어떤 식으로 멜로디를 잡아내는지도, 수 차례 반복 청취 이후엔 오롯이 당신의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go robot’과 ‘detroit’의 맹렬한 훵키 사운드가 기존 RHCP 팬들을 어떻게 감동시킬지는 따로 짐작할 것도 없다. 릭 루빈과 존 프루시안테 없이 수확해야 하는 RHCP만의 또 다른 오리지널리티. 그 난제를 뚫고 나갈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신보는 충분히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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