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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샬라메의 '컴플리트 언노운' 이것만은 알고 보자

by 김성대


로버트 앨런 짐머맨(Robert Allen Zimmerman). 우리에겐 밥 딜런으로 더 유명하다. 여기서 ‘딜런(Dylan)’은 시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가 열 살 때부터 시를 쓴 사실과 “시인의 눈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로서 완벽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는 그에 대한 평가는 저 이름에 대한 감미로운 주석이다. 밥 딜런 나이 올해로 여든넷. 지금 10대들에겐 거의 역사 속 위인으로 느껴질 법하다. 2016년에 받은 노벨문학상을 정점으로, 몇 시대를 풍미한 할아버지 예술가 정도로 간주되리란 얘기다. 하지만 딜런은 2023년까지도 정규작(40집)을 냈고, 그 작품을 포함한 후반기 앨범들은 그의 전반기 앨범들을 압도할 만큼 훌륭했다. 80대 언저리에서도 그의 창작력은 고갈되지 않았다.


이런 희대 인물의 한 시기를 다룬 영화가 곧 국내 개봉한다. 세대를 대표한 포크 기수로서 찬사와, 변절한 로커로서 비난을 동시에 받은 시절을 다룬 영화의 제목은 ‘컴플리트 언노운’이다(딜런의 히트곡 'Like a Rolling Stone' 가사에서 가져왔다). 완전한 무명. 이후 딜런의 명성을 생각하면 철저히 반어적인 표현이다. 표면상 전기 영화 문법에 충실해 보이므로, 17년 전 일곱 가지 인격에 비춰 밥 딜런을 조명한 토드 헤인스의 ‘아임 낫 데어’에 견주면 비교적 정공법을 택한 셈이다. 딜런을 맡은 주인공은 ‘대세 배우’ 티모시 샬라메. 얼마 전 티모시가 SNL에 출연해 밥 딜런 곡들을 부른 영상을 봤는데, 20대 때 50대처럼 들렸던 그 파격적인 딜런의 모창을 전제한 가창력 등 퍼포먼스가 예사롭지 않았다.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으니, 극장에 가기 전 접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럼 이 글의 목적인, ‘컴플리트 언노운’을 보러 가기 전 ‘머스트 노우(must know)’ 해두어야 할 딜런의 주변 인물들과 곡(앨범)들을 살펴본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이 기계는 파시스트를 죽이기 위한 것(This Machine Kills Fascists)”이라는 문구를 기타에 새기고 다녔던 우디 거스리는 ‘포크 가수’ 밥 딜런에게 큰 영향을 끼친, 저항 가수의 상징 격인 인물이다. “대공황기 미국 노동자들의 고난과 가장 밀접히 연관된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그의 대표곡은 ‘This Land Is Your Land’로, 그의 위상에 걸맞게 다분히 정치적인 곡이다. 1961년 1월 24일, 딜런은 유전질환인 헌팅턴병에 걸려 입원해 있던 자신의 우상 우디를 만나기 위해 당시 포크 음악의 중심지였던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로 향한다. 영화에선 또 다른 전설적인 저항 가수 피트 시거와 함께 병원에서 우디를 만난다는 설정이다. 딜런은 실제로 60년대 초 꾸준히 우디를 찾았고, 시거도 그랬다는 게 팩트. 여기서 딜런(티모시 샬라메)은 병실에서 ‘Song to Woody’를 자기 영웅에게 불러주는데, 감독은 이 장면을 찍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딜런에게 토킹 블루스 창법을 가르쳐준 우디 역은 영화 ‘노예 12년’, ‘스픽 노 이블’에 출연한 스쿠트 맥네리가 연기했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이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피트 시거(Pete Seeger)



2014년, 94세에 눈을 감은 피트 시거는 미국 민중음악과 사회운동의 전설로 회자된다. 가수 겸 밴조 연주자, 정치 운동가이기도 했던 피트는 1950년대 초 등장한 어번(urban) 포크계에서 최초로 성공한 그룹으로 일컫는 위버스(The Weavers)를 이끌었다. “포크에 기초한 대중음악의 틈새시장을 정의”내린 피트와 위버스의 음악적 기여는 물론 밥 딜런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싱어송라이터 존 바에즈가 13살 때 이모와 함께 처음 본 포크 콘서트도 다름 아닌 피트의 무대였다. 피트는 ‘Blowin’ in the Wind’를 듣고 딜런의 재능에 확신을 가진 뒤 자신이 관여한 포크 정보지 ‘브로드사이드’에 곡을 소개하는 등 딜런에게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영화에선 딜런과 피트(에드워드 노튼)가 ‘When the Ship Comes in’을 함께 부를 것으로 보인다.


실비 루소(Sylvie Russo)



실비 루소. 낯선 이름이다. 알고 보니 이 인물은 1961년부터 64년까지 밥 딜런의 여자 친구였던 수지 로톨로(Suze Rotolo)를 모델로 한 캐릭터였다. 감독에 따르면 수지의 실명을 쓰지 않은 건 밥 딜런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종평등회의라는 곳에서 일하며 인종차별철폐 및 반핵운동에 오래전부터 참여하고 있었던 수지는 딜런이 인정했듯, 남자 친구의 음악과 예술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딜런이 인종차별 사회를 고발한 ‘Ballad of Donald White’와 ‘The Death of Emmett Till’을 쓰게 된 배경이다. ‘컴플리트 언노운’에선 딜런이 “당신만의 오리지널 곡”을 쓰라는 수지의 조언에 따라 당대의 정치, 사회적 불안을 반영한 곡들을 만들어 팬덤을 구축하고, 이에 관심을 가진 존 바에즈와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수지(즉 실비 루소)와 결별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알려져 있다. 수지의 젊음은 딜런의 걸작 ‘The Freewheelin’ Bob Dylan’ 커버 속 그리니치빌리지 거리에 당시 남자 친구와 영구 박제됐다.



존 바에즈(Joan Baez)



존 바에즈는 미국 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딜런보다 2년 먼저(1960년) 데뷔했고, 딜런이 데뷔한 해엔 ‘타임’지 표지까지 장식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그녀 나이 겨우 스물두 살 때였다. 바에즈는 자신을 세상에 알려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 딜런과 함께 섰던 1963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에 앞서 딜런과 듀엣 곡을 포함한 네 곡을 현장에서 부르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선 ‘탑건: 매버릭’에 출연했던 모니카 바바로가 바에즈 역을 맡아 ‘There But for Fortune’과 ‘House of the Rising Sun’ 등을 솔로로 부르고, 티모시와 함께는 과거 양병집이 ‘역(逆)’이란 제목으로 번안한 곡을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다시 부른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와 ‘It Ain’t Me Babe’를 부르는 것 같다. ‘It Ain’t Me Babe’는 밥 딜런의 네 번째 앨범 ‘Another Side of Bob Dylan’에 수록된 곡이다.



조니 캐시(Johnny Cash)



웨일런 제닝스, 윌리 넬슨,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함께 ‘무법자 컨트리(outlaw country)’ 장르를 개척한 컨트리계의 거장. 그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는 오랜 시간 딜런을 지지해 온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1962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발표한 딜런의 데뷔 앨범이 상업적으로 쓴맛을 봤을 때 같은 레이블 소속이었던 캐시가 딜런을 옹호해 준 덕에 그가 계약 해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일은 유명하다. 캐시의 실제 편지에서 직접 따온 대사를 소화하는 배우 보이드 홀부룩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초연에 버금가는 충격을 던졌다는 그 유명한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현장에서 술에 취한 채 딜런에게 일렉트릭 쇼를 하라고 권유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컴플리트 언노운’의 감독 제임스 맨골드가 조니 캐시 전기 영화 ‘앙코르(Walk the Line)’의 감독이었다는 사실. 두 작품의 차이점이라면 ‘앙코르’가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한 남자가 성인이 되어서도 심리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다 중독자가 되어 성공에 대처하지 못하는 “오래된 프로이트식 이야기”인 반면, ‘컴플리트 언노운’은 그저 “군중을 싫어하는 록 스타”를 다룬다는 데 있다. 영화에선 캐시의 대표곡인 ‘Folsom Prison Blues’와 ‘Big River’가 흐를 것으로 보인다.



앨버트 그로스만(Albert Grossman)



1962년 8월 20일, 딜런은 앨버트 그로스만을 자신의 매니저로 영입했다. 그로스만은 딜런 외에도 재니스 조플린과 피터, 폴 앤 메리, 밴드(The Band), 고든 라이트풋 등 당대 잘 나갔던 포크/포크록 음악가들의 매니저로도 유명했다. 딜런과 그로스만의 각별함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로는, 붉은 옷에 담배를 쥐고 있는 그로스만의 아내 샐리가 딜런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앨범 ‘Bringing It All Back Home’ 표지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뉴욕 우드스톡에 있는 그로스만의 집에서 찍은 것이다. ‘컴플리트 언노운’에선 ‘신비한 동물사전’에 출연한 댄 포글러가 그로스만을 연기한다.



알 쿠퍼와 마이크 블룸필드(Al Kooper, Mike Bloomfield)



아직 생존해 있는(81세) 알 쿠퍼와 1981년에 세상을 떠난(향년 38세) 마이크 블룸필드는 딜런의 시그니처 노래인 ‘Like a Rolling Stone’ 녹음에 참여한 기타리스트들이다. 쿠퍼는 당시 프로듀서였던 톰 윌슨의 초대로, 블룸필드는 딜런의 요청으로 스튜디오에 왔다. 그런데 쿠퍼는 기타리스트임에도 현장에서 불멸의 오르간 연주를 남기게 되는데, 이유는 블룸필드의 실력이 자신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쿠퍼는 폴 그리핀(피아노)과 함께 곡을 이끌어나갈 “회전목마 같은 가스펠 오르간” 연주를 현장에서 떠올렸고, 곡 색깔을 결정지어버릴 그 연주가 마음에 들었던 딜런의 최종 승인으로 앨범 속에 영원히 남게 된다. 영화에도 이 스튜디오 에피소드가 등장할지는 모르겠다. 캐스팅은 ‘나는 전설이다’에 나온 스물여섯 살 찰리 타핸이 알 쿠퍼로, ‘캐시트럭’에 출연했던 스물다섯 살 엘리 브라운이 마이크 블룸필드 역으로 마감됐다.



이 정도는 듣고 가자


‘컴플리트 언노운’은 1963년부터 65년까지 딜런의 황금기를 장식한 앨범 다섯 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앨범이 바로 2집 ‘The Freewheelin’ Bob Dylan’과 6집 ‘Highway 61 Revisited’다. 전자는 어쿠스틱 기타를 든 포크의 기수, 시대의 목소리로서 밥 딜런을 상징하는 명반이고 후자는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로커가 된 밥 딜런의 또 다른 상징이다. 각각에 수록된 반전가 ‘Blowin’ in the Wind’와 물질(富)의 무상함을 노래한 ‘Like a Rolling Stone’은 영화 관람 전 반드시 알고 가야 하는 곡들이니 챙기자. 특히 행크 윌리엄스의 곡 ‘Lost Highway’ 가사에서 제목을 가져온 ‘Like a Rolling Stone’은 딜런 스스로 “내가 쓴 곡 중 최고”라고 자평한 만큼 좀 더 눈여겨봐 두면 좋겠다. 음악학자 래리 스타는 당시로선 전무했던 러닝타임 6분에 이르는 저 곡에 관해 이렇게 평가했다. “‘Like a Rolling Stone’은 팝 음반을 만드는 데 주된 영향을 끼쳤던 요소, 즉 길이, 주제의식, 시어의 사용에 관한 모든 제한에 종언을 고했다.”

혹 시간이 허락돼 딜런의 또 다른 대표곡들인 ‘Subterranean Homesick Blues’, ‘Mr. Tambourine Man’이 수록된 ‘Bringing It All Back Home’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다음날 무대에서 부른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이 실린 동명의 64년작까지 소화하고 간다면 금상첨화다. 물론 가사 내용까지 알고 가면 더 좋겠지만, 딜런의 노랫말들은 전문가들도 골머리를 앓는 분야여서 음악 자체만 즐겨도 무방하리라 본다.



많은 사람들이 밥 딜런을 포크 가수로만 알고 있는데 오해다. 딜런은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 “리틀 리처드 밴드에 합류하고 싶다”라고 썼다. 리틀 리처드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쌍벽을 이루던 로큰롤 슈퍼스타였다. 그리고 2집 때부터 딜런은 이미 포크의 저변에 자신이 어릴 때 동경한 로큰롤과 컨트리, 블루스를 깔고 있었다. 그러니까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딜런이 처음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와 연주했을 때 야유를 보낸 포크 순수주의자들(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해당 공연 이후 대중음악 역사에서 ‘로큰롤’은 ‘록’으로 바뀐다), 비슷한 시기 영국 맨체스터 공연에서 딜런에게 변절자라며 그를 ‘유다(Judas)’라고 부른 사람은 딜런의 음악 뿌리를 한 가지로만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렉트릭 음악을 지저분하고 상업적인 것으로 여기고, 어쿠스틱 음악을 순수하고 정통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이전에 그들은 딜런이 엘비스 프레슬리와 우디 거스리를 넘나들 수 있는 음악가였다는 걸 몰랐다. 일본 음악 평론가 히로타 간지가 잘 지적했듯 딜런은 포크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음악을 한 게 아니었다.


1966년 여름. 딜런은 유럽 투어를 마친 직후 매니저 그로스만의 우드스톡 집에서 귀가하던 중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한다. 자연히 그해 남은 투어 일정은 모두 취소됐다. 그리고 딜런의 휴식은 무려 8년이나 지속된다. 이후 78년 말부터 개신교 신자가 된 딜런은 복음성가를 만들어 앨범(‘Slow Train Coming’)으로까지 발매했다. 그가 다시 ‘세속 음악’으로 돌아온 건 80년대 초였다. 이건 ‘컴플리트 언노운’이 다룬 시대를 지나 딜런의 삶으로서 적혀나갈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