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다 먹고 식탁을 정리할 때였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파김치가 두 줄 남았는데, 반찬통에 다시 넣기 애매해 고민 없이 버렸다.
이미 반찬으로 낸 데다, 한 번 젓가락을 댄 음식은 다시 먹지 않는 것이 친정식구들의 불문율이라 버리는 데는 고민의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 파김치를 버리는 순간, 남편이 정색했다.
이거 엄마가 정성껏 담가주신 건데,
그걸 어떻게 버려?
웃으며 밥 먹다 갑자기 정색을 하는 남편.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먹던 파김치를 깨끗한 반찬통에 다시 넣는 게 맞는지에 대해 따질 틈도 없었다. 어쨌건 남편의 입장에선 어머님이 애써 만든 음식을 버린 꼴이었으니까, 화를 내는 남편 앞에서 입을 꼭 다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당황했다가 나중엔 서운해졌다. 내가 만든 음식은 잘도 버렸던 거 같은데, 유독 어머님이 주신 음식에 예민하다는 생각에 불쑥 질투심이 든 거다. 이래서 선배 유부 언니들은 괜히 남편이 ‘남의 편’의 준말이라 조언해 준 걸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정녕 내 삶의 동반자가 아닌, 평생 어머님 아들로 우선할 거다 싶었던 거다.
그날 밤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나 : 오빠, 나랑 어머님이 물에 빠졌다고 쳐. 누구 먼저 구할 거야?
오빠 : 당연히 둘 다 구해야지.
나 : 아니, 꼭 한 명만 택해야 해. 무조건
오빠 : 그럼 오른손으론 규리, 왼손으로 엄마.
끝까지 나를 먼저 구하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오른손잡이인 남편이 ‘오른손’으로 나를 구하겠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결혼한 지 꽤 됐는데도 '너를 1등으로 구할게'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남편의 사랑을 가운데 둔 어머님과의 삼각관계 속에 있는 것 같다.
아들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을 내가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나, 그래도 남편, 대답은 나를 1등으로 언제나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