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 끝 '감사합니다'

by 규리

연차가 차면 찰수록 (!) 마음은 배배 꼬일 때가 많다. 가령 이런 경우다. 회사에서 메일 쓸 때 아무리 들여봐도 고마울 구석이 전혀 없는데도, 메일 말미는 '감사합니다'로 귀결하는 나 자신이 안타까운 거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만큼, 대개는 클라이언트 요청에 맞는 자료를 만들어 보내는 메일인 경우가 많다. 눈 빠지게 만든 작업물을 상대는 편안하게 받아보는 걸 텐데 (을의 숙명일지니 여기에는 불만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메일의 마무리 마저 “감사합니다“로 마무리하려니 그건 또 속이 꼬인다. 그렇다고 해서 대체할 말을 찾자니 시간도, 표현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 혼자 '감사합니다'를 해체해봤다.

대체 우리는 어떤 의미로, 어떤 층위로, 왜 감사합니다 를 고정 표현처럼 쓰는지.


첫째, (메일을 끝까지 잘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의 의미다.

메일 본문과 첨부를 제대로 읽어주는 일은 사실 고된 노동이다. 할 일 많은 와중에 그걸 읽어주셨다면, 고마운 일이다. 미리 감사한 마음을 담아보는 거다.


둘째, (내 메일을 잘 읽었는지) 감시, 감독하겠다는 뜻이다.

Thanks 가 아닌 Audit의 뉘앙스. 귀여운 협박에 가깝다. 당신이 메일을 제대로 읽을지 내 기필코, 반드시 지켜보겠다는 뜻. (물론 상대는 내 뉘앙스에 대해 상상도 못 하겠지만) 감사합니다. = 저 검사합니다

아무쪼록 회사생활을 시작한 후 만난 모든 내외부 회사분들이 '감사합니다'란 표현을 쓴다는 건 최소의 예를 지키는 표현일 거다. 꼭 상대가 뭘 도와줘서라거나 고마워서라 아니라 그저 '내 메일을 읽어주는 당신에게 감사하다.' 정도의 의미.


그런데도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정말 감사하지 않은 메일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를 테면, 내가 개고생 했고 수신자는 너무 편하게 내 자료를 떠먹을 때), 당신도 협업해 줄 것을 강조하며 상대를 재촉해보기도 한다. ‘확인 후 빠르게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이러나저러나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껜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해본다.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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