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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 Oct 16. 2023

찌르면 피가 나지 않는가? 독을 먹이면 죽지 않는가?

가해의 대물림과 영화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는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다룬다. 영화에서는 나치에게 짐승처럼 끌려온 유대인 틈에 앉아 주인공 슈필만에게 그의 남동생이 '베니스의 상인' 속 유대인 악역 샤일록의 대사를 인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찌르면 피가 나지 않는가? 간지르면 웃지 않는가? 독을 먹이면 죽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에게 잘못한 자들에게 복수하지 않겠는가?

영화는 힘을 잃게 되었다.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아동을 강간한 범죄자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공격하며 '그들은 인간 형상의 짐승일 뿐'이라고 규정한 순간 이 영화는 힘을 잃게 되었다.
가자지구는 나치가 유대인 거주구역으로 유대인들을 몰아넣은 것과 다르지 않다.
어제 업데이트 된 기사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에게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남쪽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피난길에 피난민들이 걷는 곳에 폭격을 퍼부었다.


결백하며 무고한 피해 민족은 없다. 일제강점기에 그토록 수탈당하고 고통스러웠으며 수치스러운 시간을 견디며 저항하고 평화를 부르짖던 우리가 독립 후에 베트남 전쟁에서 민간인을 살해하고 마을 전체를 궤멸시켰으며 강간한 가해자가 되었던 것처럼.


바로 이 순간 혹은 가자지구에 백린탄을 처음 퍼부은 순간 영화는 죽었다.

찌르면 피가 나지 않는가? 간지르면 웃지 않는가? 독을 먹이면 죽지 않는가?

원전에서 이 대사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한 대사였다.


너와 나는 같은 인간이며 당신이 나를 찌르면 피가 나고 당신의 손이 나를 간지르면 웃을 것이며 내게 독을 먹이면 죽는 한낱 인간이라는 처절한 선포였기 때문에 감독은 이 대사를 골라 인용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힘을 잃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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