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2:폴리 아 되>를 이해하려면, 먼저 왜 이 영화가 뮤지컬 영화로 나와야만 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 영화가 1편과 다르게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공연으로서의 뮤지컬 자체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바로 냉혹한 악역부터 자식의 죽음 앞에서 무너진 아버지와 상냥한 여주인공까지, 등장인물의 의지와 상황과는 상관 없이 노래해야만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제성은 때로 관객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하는데, 노래할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등장인물들이 인형이나 광대처럼 움직인다는 자각을 한 순간 이런 거부감을 준다.
그렇기에 <조커2:폴리 아 되>는 뮤지컬 영화여야만 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1편에 이어 '조커'의 오리진을 그리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조커가 1편에서 일약 아이콘으로 떠오른 뒤, 자신의 선택으로 광란 상태에 빠져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2편에서는 그것이 절대 아님을 보여준다. 조커가 저지른 살인은 자신이 겪던 문제를 폭발로 날려버리는 행위였는데, 사실상 그의 '문제'들은 단 한번도 해결된 적이 없으므로 그것을 2편의 재판이며 열악한 수감 생활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갇힌 상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뮤지컬이다. 영화를 보며 뭐야? 왜 이 타이밍에 이딴 노래를 불러? 하고 떨떠름하게 식었다면, 그것이 감독의 의도가 맞다. 왜냐하면 조커는 영화적 장치에 의해 시시한 노래에 맞춰 춤이나 추는 광대로 전락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제 사회'에서 조커가 겪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아서의 환상이지만, 실제 사회에서 조커는 그 정도다. 쇼에 오른 광대, 미친 살인마, 수많은 트라우마중 그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한 정신 이상자. 감독이 1편에서 그린 조커의 후광을 2편에서 단숨에 부정한 이유는 초반에 워너브라더스 로고와 함께 나온 애니메이션에 모두 담겨 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온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내용이다:
유명한 쇼의 스타처럼 등장한 아서가 레드 카펫을 걸어 토크쇼 장으로 걸어 들어온다-그에게서 그림자가 '갈라져 나와' 주도권을 잡는다-여자에게 키스한다-경관들은 그림자가 지은 죄들을 '옷장'에 갇혀 있던 '아서'에게 묻는다-'아서'는 경관들의 몽둥이에 맞아 죽는다.
이것이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을 예고하는 예고편이었다.
우리 관객, 그리고 영화 속 조커의 추종자들은 '조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앙상한 등에 런닝셔츠를 입은 아서 플렉이 아니라, '광대 분장'을 한 조커에게. 그렇기에 '그림자'는 조커이고, '아서'는 '옷장' 속에 갇힌다.
'옷장'은 아캄 어사일럼인 동시에 사회의 무관심이다. 그들이 관심 있는 것은 '조커'이기에 복도에 나온 그림자가 여러 사람과 악수를 하고 여자와 키스를 하며 토크쇼 무대에도 서는 것이다. '조커'에게만 발언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거의 발가벗은 '아서'가 그림자에게서 받은 마이크를 쥔 순간 경관들이 달려와 그를 때려죽인다. 이것은 결말과도 맞닿아있다. '경관'들은 심판자를 뜻한다. 그렇기에 이 '심판자'는 법정에 멋대로 폭탄을 설치한 추종자이자 대중이고, 동시에 조커를 죽인 범인이기도 하다.
또한 '그림자'가 아서에게서 갈라져 나오는 연출은 그의 변호사가 극 내내 주장했던 '정신분열/이중인격'과 관련이 있다. 정신분열증은 '갈라져 나오다'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 변호사가 하필이면 이러한 병을 주장한 이유는 아서 플렉을 구하기 위함도 있지만, 조커와 아서가 완전히 다른 존재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서는 이중인격/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추앙받는' 조커는 '아서'가 만들어낸 페르소나-쇼를 위한 배역-가 맞으며, '아서'는 무섭고 화가 날 때 '조커'의 가면을 뒤집어 쓴 것이 맞다. 재판 내내 트라우마가 자극당한 아서가 변호사를 대뜸 해고하고 조커 분장을 하고 나온 이유 역시 '조커'가 그의 방어기제였기 때문이다. 관중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혹은 변호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독립된 인격이 아니라 단지 가면이었을 뿐이다.
마지막 재판에서 아서가 비로소 '아서 플렉'의 모습으로 더듬더듬 말한 직후 할린 퀸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영화를 보는 동안 주변 눈치를 보던 '아서 플렉'의 유약함과 정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서에게 영구히 광기를 덧씌워 '조커'로 당당히 죽기를 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그러한 미치광이니까.
2편에서 조커의 후광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은 처음 나온 애니메이션처럼 '아서 플렉'에게는 비치지 않았던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커'에게는 계단 씬을 오마주하며 박수를 보내고 범죄의 아이콘으로 추앙하였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이콘'으로 삼았던 것은 엄마를 목 졸라 죽이고 여자에 대해 망상하던 아서 플렉 그 자체는 아니었다.
2편은 1편에서 '조커'라는 인물에게 쏟아지던 찬사와 명작이라는 환호가 사실 그림자에게만 보내는 공허한 박수였다는 것을 꼬집을 뿐이다. 감독의 의도는 급진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이 폭로는 조커를 몰락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쇼는 계속된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1편에서 '조커'라는 아이콘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그렸다면, 2편에서는 이 아이콘이 배트맨 코믹스에서처럼 절대 광기/파멸하지 않는 불멸의 악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가장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린다.
그것은 바로 '조커'의 계승이다. '아서'가 '조커'라는 아이콘을 시작하였으나 그 불멸성을 가지려면 '아서'가 죽어야 한다.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마돈나 등의 역사적인 스타들이 사후에 각종 음모론에 감싸여 어떠한 컬트적인 전설이 되었던 것처럼.
그렇기에 조커의 세대 교체는 필연적이다. 트라우마로 얼룩지고 소외된 삶, 사회적 상황에 의해 휘둘리던 인물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광기의 아이콘이 되었다면, 이것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조커를 죽이고 입을 칼로 긋는 것으로 새 조커가 나타나는 과정 자체가 '조커'라는 배트맨 시리즈의 최고 악당이 가진 위치를 의미한다.
영화 말미에서 농담을 던지며 아서-과거의 조커를 살해한 인물은 아캄 어사일럼에 수감된 다른 환자다. 그는 영화 내내 아서의 행동을 조용히 주시하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아서에게 키스해달라고 한 뒤 그를 졸졸 쫓아다니다 맞아죽은 다른 환자와는 다르게 그가 새 조커인 이유는 제목의 '폴리 아 되'에 있다.
'폴리 아 되'는 두 사람의 광기라는 뜻이 있다. 이것에는 '할리퀸'과 '조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조커와 새로운 조커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은 광기를 공유한다. 1편에서 아서가 보여준, 여섯 명의 사람을 살해하며 터져나온 광기는 탄생의 순간이다. 2편의 아서는 그러한 광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새로운 조커가 이 광기를 관객과 주시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공유하다가 '아서'를 죽이는 것으로 탄생한 것이다.
1편이 나왔을 때에는 아직 '조커'라는 빌런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 제프리 다머등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발생한 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그의 추종자들이 나타나 열광하는 태도 등, 쇼로 변질되며 본질은 사라지고 '전기톱 살인마' 따위의 아이콘만 남고야 마는 현실을 2편까지 잘 빌드업한 것이다. '조커'가 탄생한 것은 그래서 2편에 와서야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할리퀸'의 변심을 두고 실망하거나 어쩌면 야유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리퀸'은 본래 코믹스에서도 그런 인물이었다. 정신과 의사였고, '조커'를 의사 대 환자로 만나거나(*영화 기준-수어사이드 스쿼드/버즈 오브 프레이) 이번처럼 '환자 대 환자'로 세기의 로맨스를 펼친다.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의 광기에만 관심을 가졌기에 초반 애니메이션에 나온 '키스 당한 여자'는 할리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림자'이다. 따지자면 늑대인간이 보름달에 뜬 날 울부짖는 모습에 영원을 약속했는데, 아침이 밝자 광기는 사라지고 수줍은 인간만 남아 실망한 것이다.
물론 '조커'의 유명세를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원래의 '할리퀸'은 광기 자체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가 정신의학 학위 등의 설정을 가진 것은 '광기'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의 할리퀸은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보이는데, 불우한 아서의 삶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광기의 아이콘 조커'에 페티시즘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이제까지 경험한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서가 어머니를 죽인 낡은 집에 굳이 다시 둥지를 틀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아서를 전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살인 현장에 찾아가는 관광객과 다르지 않은 호기심과 페티시 충족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아서'보다 완벽히 미친 여자다. 그러지 않아도 될 사람이 그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재미있는 이스터 에그가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 조커의 재판에 참여한 검사의 이름도 한 예다.
그 검사의 이름은 '하비 덴트'인데, 그는 후에 투 페이스라는 빌런이 된다. 배트맨 코믹스의 설정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리부트'된다고 표현되는데, 배트맨 영화에서 본래 정의로운 검사였으나 폭발 사건으로 반쪽 얼굴을 잃었다는 설정이 '조커2'에서도 잘 이어지게 된 것이다.
다만 조커<->투페이스의 구도를 더 살려서, 그의 재판에 참여해 어쩌면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었을 젊은 검사는 테러로 인해 몸 반쪽이 심한 화상을 입은 씬이 나온다. 그래서 어쩌면 투페이스의 영화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라는 말을 2015년부터 하고 있으나 그런 것은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