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속 순결을 갈망하는 자,살로메에 관한 재해석
넌 내 부탁을 들어줄 거야, 나라보트. 그럴 거라는 걸 너도 알잖아.
‘살로메’는 누구인가? 우리는 살로메를 떠올리노라면 팜므파탈의 광기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과연 살로메는 팜므파탈인가? 이 글은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적인 문장들로 이루어진 <살로메>를 기반으로 그것이 오명임을 규명하고자 한다. 살로메를 치명적인-물론 비유에서 멈추지 않고 요카난의 목을 잘랐기에 ‘치명적인’-팜므파탈과 탕녀의 파멸 서사로 보는 것이 역사적으로 지배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지금은 2021년, 팜므파탈의 오명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살로메는 말한다, 너는 내 부탁을 들어줄 거야. 하와를 구슬리는 뱀처럼 유혹적인 대사다. ‘나라보트’는 시리아인 청년으로, 헤롯 왕이 살로메의 곁에 붙인 병사다. 이 시리아인 청년은 시작부터 등장하는 내내 줄곧 살로메 공주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묘사한다. 살로메가 진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화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시리아인 청년은 곧 살로메의 본질을 보려하지 않고 살로메의 겉모습만을 아끼고 탐하는 인간들을 대변한다. 살로메는 다양한 욕망에 둘러싸여 있는데, 심지어 그 중에는 그의 아비 왕 헤롯도 포함되어 있다.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는 딸 살로메에게 남편이 가진 일방적인 욕망을 눈치채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몹시도 경계한다. 바로 살로메를! 어미와 아비 모두 딸 살로메를 자식이 아니라 완전한 타인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의 가정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살로메는 헤롯왕을 피해 몸을 움츠리고 그의 어미는 왕비의 자리를 지키려 살로메가 왕의 눈에 띄지 않길 바란다. 헤롯 왕은 그 욕망을 굳이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네 어미의 자리를 네게 주마!
헤롯 왕은 살로메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정확히는 제 옆에 앉기를 권하며 말한다. 왕비의 의자를 주겠다고 말한다. 그 자리의 누구도 이것이 그저 의자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살로메의 태도는 어떠한가? 살로메는 모두의 욕망과 증오의 대상이며, 그들이 가진 성적 욕망을 기반으로 하여 음탕한 여자로 비추어졌는데 사실은 살로메는 팜므파탈이 아니다. 그를 흠모하고 찬탄하는 동시에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찬미하는, 나라보트로 대변된 남성의 시선과 살로메를 향한 남편의 욕망을 알아채고 경계하는 어머니의 시선에 지친 것이다. 살로메는 꾸준하게 아버지를 거부한다. 춤을 출 것을, 곁에 앉아 웃을 것을 끈덕지게 권하는 의부에게 살로메는 단호하게 거부의 뜻을 연거푸 밝힌다. 나라보트는 또 어떠한가! 살로메를 흠모하여 그의 아름다움을 시적인 언어로 수없이 찬미하지만 그가 아름다운 풍경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며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자,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순결하고 아름다운 달에서 벗어나게 되자 몹시 실망하여 죽어버린다. 나라보트는 살로메를 대상화한 것이다.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에서 성녀를 취하여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드높은 달로 대상화한 것이다. 나라보트는 살로메를 ‘흰 나비, 은거울에 비친 백장미,하얀 비둘기, 꼬마 공주님’ 따위의 시적인 어휘를 동원하여 묘사한다. 나라보트의 죽음은 나라보트가 가졌던 환상이 깨어짐과 동시에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설원으로 욕망한 자의 죽음이다. 그의 살로메 공주는 하나같이 시적인 어휘로 표현되는데, 마침내 누군가의 연인이 되고 부인이 되고 말 현실의 여자가 아니라 설탕 조각상을 사랑한 것이다.
반면 그를 성적인 대상으로 욕망하는 살로메의 양아버지 헤롯왕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의 딸에게 추파를 던진다. 이는 그의 딸 살로메를 탕녀로 프레이밍하는 것이며, 열망으로 몸을 떠는 살로메를 고작 보석으로 회유하고자 시도하는 것에서 헤롯의 시각으로 보는 ‘살로메’가 보인다. 헤롯 왕이 그를 음란한 탕녀로 해석하기 때문에, 살로메를 과일로, 그리고 여왕 자리로 유혹하는 것이다. 그가 아는 ‘팜므파탈’, 음란하고 야심 많은 요부들이란 으레 그러한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살로메는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또 어떠한가, 헤로디아는 딸을 계속해서 경계하는데, 딸이 아니라 여성 대 여성으로서 살로메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살로메는 수많은 타인에게 다른 모습으로 대상화된다. 그를 온전히 바라보는 자는 오직 살로메 본인뿐이다. 살로메는 이러한 지저분한 시선에 넌더리를 낸다. 실제의 살로메는 ‘순결한 처녀’이다. 살로메는 달을 보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투영한다. 차갑고 깨끗한 달, 숫처녀, 순결하니 아름다운 달, 더럽혀지지 않은 달, 다른 사내들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는 달, 살로메에게 순결한 것은 아름다우며 순결은 제일가는 이상향인 것이다. 그의 곁에 선 헤로디아의 시녀는 몇 번이고 달을 보며 ‘죽은 여자같다’는 표현을 되풀이하는데, 살로메는 결국 달을 동경한 것이다. 달의 순결을 동경하였고 실제로는 순결에 가까우며 결국에는 나라보트가 그러했듯 누구에게도 손을 타지 않고 달 살로메가 마침내 요카난을 탐낸 대가로 아비 헤롯의 손에 죽고야 말 것을 예언하는 것 같지 않은가!
너무 야위었구나! 상아로 깎은 가녀린 조각상 같구나. 은으로 빚은 조각상 같구나. 틀림없이 저 달처럼 순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