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아침부터 아랫집에서 난리가 났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말이면 자주 일어나는 집안싸움이다.
문까지 쿵쿵거리면서 고성이 오간다.
엿들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워낙 소리가 큰 탓에 알게 된 정보로 볼 때 주된 갈등은 20대 초반의 딸과 엄마와의 말싸움이고, 아빠는 그 둘의 갈등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에 폭발하곤 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싶다가도, 정도가 꽤 심각할 정도로 악을 써 가면서 싸우다 보니 ‘저렇게 가족과 상처를 주고받는 삶이 진짜 지옥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프게 만드는 존재는 꼭 멀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화와 소통이 가장 어려운 존재, 제일 짜증을 많이 부리게 되는 대상이 가까운 가족, 친구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대화가 쉽고 즐거워야 할 텐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내가 가장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존중 표현을 하기 어렵게 느끼는 존재가 아직 만 9세도 되지 않은 나의 아들이다.
아무리 혼자서 ‘절대 화내지 말자,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를 유지하자'라고 다짐을 해 봐도 전혀 소용이 없다.
조카나 다른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고 말을 안 들어도 절대 화를 내는 법이 없는데, 이 녀석은 조금만 말을 안 들어도 속에서 열불이 올라온다.
심할 때는 미숙한 아이라는 것을 잊고 말로 쏘아붙이게 만들 정도로, 이성적인 접근 자체를 못 하게 정신을 쏙 빠지게 만든다.
원인은 나와 타인을 인식하는 뇌의 영역 차이 때문이다.
나를 인식하는 뇌의 영역과 타인을 인식하는 영역은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 심리적으로 친밀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일수록 나와 가까운 영역에서 인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진짜 가까운 혈육, 친구일수록 ‘나의 영역’에 바짝 붙어서 인식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처럼 공동체 주의가 깊이 자리한 문화일수록 특히 가족을 나와 가깝게 인식한다고 한다. 즉, 가까운 사람을 ‘나'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1. 얼마나 갑갑하겠나?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과 같으니, 말을 해도 듣지를 않으니, 내가 나를 속상하고 아프게 만든다고 생각하니 갑갑하고 속상한 게 당연하다.
가까운 사람이 내 맘 같지 않으면 상처가 두 배, 세 배가 되는 이유다.
2. 얼마나 함부로 대하기 쉬운가?
내가 나한테 함부로 하겠다는데 누가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내 맘은 내가 다 아는데 서운하고 자시고 할 게 없지 않나.
3. 언제든 금방 회복하고 괜찮아질 텐데 조심할 필요가 있나.
필요할 때 언제든 조금만 노력해도 금방 괜찮아질 관계라 생각되니 애초에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울수록 더 많이 짜증 내고, 더 쉽게 상처를 준다. 대화할 때 상황과 상대,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인지를 하려고 애쓰지 않고, 올라오는 감정을 전혀 조절하지 않으며, 귀담아듣지 않고 존중을 더 적게 표현하게 된다. 애쓸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만 하면서 대화 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게 행동한다. “가깝다.”는 이유로.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분명한 구분을 필요로 한다.
한없이 소중하고 친밀하지만, 엄연히 말해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내 마음을 알지 못하고, 내가 아무리 원해도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가깝기 때문에 더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존재다.
무엇보다 내가 괜찮기 위한, 행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다. 특별한 존재라는 의식과 구분을 단단히 해야만 한다.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감정에 몸을 맡기면 나도 모르게 대충 함부로 대하게 된다.
대화하며 가장 짜증이 많이 났던 사람, 또는 말로써 큰 상처를 받거나 준 사람 중 나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은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존재다.
그를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하여 더 공들여 대화하고, 타인으로서 엄격히 구분할 수 있다면 당신의 안정과 행복감은 한결 더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