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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목 Jan 13. 2024

그녀의 해방일지

자기비하, 자기비판, 자격지심, 자기자비, 자기용서

스케이트 유망주였던 그녀는 스스로를 '낙오자'로 여겼다.

수년을 노력했던, 찬란한 꿈이었던 스케이트를 포기하고 평범한 중학교로 진학한 그녀는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또래들보다 부족한, 느린 아이일 뿐이었다.


다른 길을 걷는 것을 쉽게 여기거나 만만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 길에서 뒤처진 자신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당연히 또래보다 낮은 학업 성취와 낯선 환경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패배감과 열등감이 생겼고,

자격지심과 자기 비하라는 습관을 얻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예전보다 늘은 체중은

그녀 스스로 그나마 자랑이라 여겼던 외모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예쁘다고 하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냥 하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보다 좋은 성적을 받은 친구가 '나 시험 망쳤어'라고 속상해하면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가? 놀리는 건가?'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노력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늘 자신을 '똥멍청이!'라고 욕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스스로 가라앉은 14살 소녀의 하루하루는 지옥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듯 그날 어김없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빌미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습관이라고 해서 대충 지나가지도 않았다.

꽤나 긴 괴롭힘의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진 자신에 대한 보호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억울함? 원통함? 


그녀 안에 들리기 시작한 작은 소리는 조금씩 더 커지기 시작했고, 계속 자라나

마침내 꽤나 큰 외침이, 절규가 되어 터져 나갔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나도 열심히 했어! 내 친구들이 공부를 더 잘하는 것처럼

나도 걔들보다 스케이트 잘 타! 그만뒀다고 해서, 꼭 실패한 건 아니잖아! 

내 상처도 나잖아. 부족한 것도 나잖아! 꼭 잘나고 대단한 것만 내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만 좀 해!"


얼마나 울었을까. 지쳐서인지, 충분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용서받은 것 같았어요. 아니, 용서한 것도 같았어요."


위로, 위안, 격려, 이해. 수많은 표현이 사실은 하나의 감정을 다르게 표현한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무척이나 후련했다. 해방감, 이제야 제대로 숨이 쉬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미워하던 자신에 대한 측은함과 안쓰러움을 느낀 그 순간, 그 이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노래의 가사처럼 

그저 힘든 일이고 낯선 일이라  조금 늦었을 뿐, 스스로를 사랑해 주기 시작했다.


엄격한 잣대 때문에 괴로웠던 그녀는

스스로를 혼내기보다는 아껴주었다.


스케이트 날에서 내려온 후 하지 않던 운동을 시작했다.

조금씩 빠지는 살처럼 스스로 만든 외모의 자격지심도 사라져 갔다.



충실했지만 수동적이었던 공부 방식도 바꿨다.

틀린 문제를 보고 속상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답노트를 만들어가며 

적어도 같은 문제를 다시 틀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이 습관처럼 꼬여서 들릴 때면, 

꼬리를 물며 퍼져나갈 때면

생각을 멈추고 자신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조금씩 알아갔다. 그동안 잊고 있었거나 몰랐던 자신에 대해서.

관심받기를 좋아하고 또래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사람,

의욕적이고 열정 넘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이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렇게 그녀는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서 '해방'되었다. 

한 발짝 걸어 나왔을 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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