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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목 Feb 15. 2024

좋은 대화란 무엇인가: 성숙한 대화

제대로 된 '좋은 대화'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대화 주제는 자신의 상상 속 캐릭터인 ‘토순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슈퍼 토끼인 토순이는 인형학교 생활도 하고 농구 등의 운동도 하며, 세계여행도 하고 우주도 돌아다닌다. 들어보니 토목, 건설을 넘어 해외 무역도 하는 등 매우 다양하고 세세한 세계관이 설정되어 있었다. 

거의 10년 전 경품으로 받은 토끼인형 "토순이"

고작 경품으로 받은 작은 토끼 인형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늘 신이 나서 재잘대는 모습이 참 귀여웠지만, ‘올바른 대화’라는 차원에서 보면 여러 문제가 있었다. 


일단 이야기가 끝없이, 일방적으로 이어진다. 9:1을 넘어 거의 10:0의 비율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 상대가 아니라 관객이 된 기분이 든다. 상대의 흥미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구만을 위해 말한다. 마흔을 바라보는 성인 입장에서는 전혀 흥미로울 수 없는 주제다. 게다가 반응이 시큰둥하면 상처받고 서운해한다. 무조건적인 수용과 호응을 원하기 때문에 대화 이후 늘 지쳐버렸다.


더 곤란한 것은 상대의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대화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말을 걸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일을 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만을 원한다. 표정과 자세 등의 비언어적 신호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욕구해소를 위한 대화를 이어간다. 결국 배려받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때론 자신의 세계를 못 알아들으면 갑갑해서 울분이 터진다.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채 ‘왜 내 머릿속에 있는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냐’라는 분노를 표현한다. 올라오는 감정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변화시키거나 참여하는 것도 싫어한다. 아이디어나 피드백을 대부분 거부하기 때문에 몇 번의 시도 이후 우리 부부는 ‘할 말 하않’이 되어 버렸다.


배운 적이 없는 어린아이의 대화라는 것은 이런 모습이다. 미성숙한 대화. 

아들은 놀랍게도 매 해 성숙해지면서 많이 달라져 간다. 아직 부족하긴 해도 지금은 상대를 많이 배려하면서 자신의 감정도 잘 조절하려고 애쓴다. 그 모습이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십 년을 산 성인들도 어린아이보다 더 미성숙한 대화를 한다. 인간관계와 대화에 미성숙한 성인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인다. 


1. 자기중심적 대화: 대화에서 자신의 의견과 필요만을 중시한다. 상대의 의견이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한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게 되며, 갈등을 유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2. 서툰 감정 조절: 대화 중에 발생하는 자극에 의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감정이 대화를 지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분노, 실망, 불안과 같은 감정이 과도하게 표출되어 대화의 본질을 흐리고 소통을 방해한다. 결국 본질적인 목표를 잃게 만든다. 


3. 부정적, 방어적 태도: 상대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 방어적 태도를 자주 보인다. 특히 상대의 의견, 피드백에 대해 개인적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자주 보인다. 상대는 좋은 의도가 무산되는 경험을 하게 되어 심리적 거리감을 갖게 된다.


4. 경청하지 않음: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제대로 경청하지 않고, 대신 자신이 무엇을 말할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곤 한다. 대화가 올바로 진전되지 않으며, 상대는 계속 무시받는다는 불쾌함을 느끼게 만든다.

  

5. 편협한 시각: 세상을 단편적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타인의 의견과 생각을 거부한다. 자신의 시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만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6. 자기 성찰의 부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채 타인의 기준, 본능적이고 일차원적인 욕구에만 충실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를 잘 모른 채로 살아간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 대화에서도 정작 본인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소통이 어렵다. 대화가 뚝뚝 끊기고 깊어지지 못한다.


7. 충동적 경향: 행동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장, 단기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 표현이 거칠고, 배려가 깃들지 못해 상대에게 상처와 불쾌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8. 타인 비난: 발생하는 문제나 사건에 대해 타인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실수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대화 흐름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부정적이다 보니 상대는 지치게 된다. 


9. 자아도취: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인정만을 갈구하다 보니 모든 대화의 주제와 주도권, 비율을 자신에게 맞추게 된다. 상대는 이제 생각만 해도 대화할 욕구가 사라진다.


10. 서툰 감정수용: 일상에서 경험하는 감정에 대한 과민반응, 확대해석을 보인다. 감정이 많이 오가는 상황에서 자제력을 잃거나 회피하는 성향을 보인다. 상대방은 늘 표현에 대해 전전긍긍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되며, 심리적 거리를 두게 된다.


이렇듯 나이가 든다고 성숙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성숙은커녕 분노 표출, 상처 주는 말 등의 나쁜 능력만 계발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은 못 본 채로 남 탓만 한다. 그런 사람, 참 많다.


그럼 성숙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자기인지를 바탕으로 충분한 경험과 성찰,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 안에 있는 미성숙한 자아를 인지하고 인정하면서 잘 조절하는 노력, 수많은 내면의 상처를 보듬는 자기 자비 또한 필요하다. 나아가 상대를 살피는 시야, 존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서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단숨에 이뤄지지도 않는다. 성숙은 이렇게도 어렵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진다면, 누구에게도 상처받지도, 주지도 않으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깊이 있는 나눔이 가능하다. 가족, 연인, 동료 등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된다. 협업도 수월해지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깔봄과 무시를 당하지 않으며, 어려운 난관도 훨씬 더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게 된다. 


거저 오지 않는 만큼 충분히 값진 것이 바로 성숙이다

타고난 기질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더 나은 자신이 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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