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봤다.
한 명씩 보면서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이제는 누군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분명히 떠오르지만 연락하지 않은 채 흐른 시간 때문에 이제는 지인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사람들도 있었고, 좋지 않은 일로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순전히 일 때문에 일회성으로 저장한 번호부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자는 의욕을 담아 저장한 이름들도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아쉬운 인연들, 그립고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 정말 많은 이름들이 있었다.
분명한 건 24년 5월,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손에 꼽힐 정도라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넓은 인간관계를 지향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고, 넓어지는 인맥처럼 내 세상도 넓어지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넓은 인연 덕도 많이 보았다.
인간관계에 정말 큰 변화를 맞은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작됐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 이외에는 늘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지내고 난 지금, 내 인간관계의 폭은 ‘가족’, ‘회사동료’, ‘약간의 지인’ 정도로 좁혀졌다. 그나마 SNS가 아니었다면 주변 사람들의 근황조차 아예 모르고 살았을 정도로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내 울타리 안쪽에 있게 되었다.
1. 매우 좁고 깊은 관계의 폭.
가족과의 시간을 정말 많이 보내고 있다. 많은 시간을 아내와 함께하며, 아들의 성장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아버지도 거의 매주 뵙고 지내고, 누나와도 예전보다 더 자주 만나고 있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뒤 올바르게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료들도 이제는 형제와 같아서 일과 삶을 공유하며 지낸다.
2. 아쉬운 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다.
회사 동료를 제외하면 친구들조차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내서 소원해졌다. 친구들과 동기들, 일하며 정을 나눴던 옛 동료들 등 친밀하게 여겼던 인간관계가 지금은 근황조차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토록 약하고 허무하다.
3. 인간관계는 삶의 본질
반성했다. 인간관계란 삶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들러의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온다.”라는 말처럼 인간은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확인하고 정의 내린다. 뇌마저 관계의 단절을 겪으면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다. 심리적, 정서적 안정감의 기반은 인간관계이며 인격적, 사회적 성장 또한 인간관계와 밀접하다.
4. 깊이와 폭, 모두가 중요하다.
중요한 관계의 사람들과 깊이 있게 잘 지내는 것은 당연히 좋으나, 관계의 폭을 더 넓히고 싶다. 돌아보면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나라는 존재의 생을 기억하고 함께하며 영향을 줬던 사람들인데, 단지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지는 않다. 또 새로운 인연을 통한 삶의 확장 또한 여전히 흥미롭다. 나에게는 인간관계의 깊이, 폭 그리고 확장. 전부 중요하다.
5. 허무주의에서 벗어나기.
때로는 ‘어차피 흘러갈 인연, 애써서 뭐 하나.’라는 허무주의가 밀려온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사는 편이 낫다. 흘러갈 때는 흘려보내더라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이 관계이며, 인생 아니겠는가.
6. 저자가 자기 책에 부끄러워선 안 된다.
공교롭게도 곧 출간될 내 책의 핵심은 ‘인간관계를 위한 대화’다. 요청에 의해 다룬 주제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많이, 또 깊이 있게 만나는 직업과 역할을 가진 덕분에 ‘인간관계와 대화’에 관하여 깨달은 것이 많았다. 곧 나올 책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도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인간관계 회복, 개선과 확장을 시도해야 한다.
내 삶은 감사할 것이 가득하다.
그다지 성실하지 않았던 내가, 상처 많고 미숙했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사랑받으며 책임을 다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삶을 둘러싼 수많은 인간관계 덕분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감사를 표현하고,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나누며 지내는 것뿐이다. 하는 말, 쓰는 글, 만들어 내는 콘텐츠들 모두 그 마음에서 비롯해야 한다.
최근에는 강의, 코칭도 감사의 마음으로 하고 있으며, 책도 같은 마음에서 적었다. 마음도 훨씬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삶 순간순간 의미가 되어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보답의 마음으로 충실히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