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엄마이기에, 내가 행복한 겁니다.
팔팔하고 고운 20대.
나는 첫 수술을 받았다.
한창 일에 재미가 들려 여러 병원을 돌며 인터뷰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산부인과 의사와의 인터뷰를 끝마치고 함께 신나게 수다를 떨던 날이 있었다.
대화 도중 드라마에서 임산부가 배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로 아기를 확인하는 모습이 기억났다.
그래서 나도 한번 그 느낌을 알고 싶다며 장난식으로 말을 던졌다.
그런데 내 배에 초음파 기기를 갖다 댄 의사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큰 혹이 난소 옆에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난소낭종은 대부분 양성이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지만,
호르몬제와 피임약으로 약 1년간 치료를 했어도 나의 혹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의 주치의는 수술로 혹을 떼어내길 권장했다.
그리고 내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엄마는 오열을 하며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후회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20대 후반 즈음.
나에겐 공황장애라는 병명이 따라붙었다.
선릉역까지 가야 하는 첫 직장은
출근길 2호선의 스트레스를 있는 대로 줬고,
그 당시 괴롭히던 상사로 인해 나의 몸무게는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횟수가 늘어났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눈 앞에서 내가 실신하는 모습을 본 엄마는
또다시 '내 탓이다'라며 가슴을 쳤다.
30대.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꼭 이상한 징후들이 발견돼 재검을 받아야 했다.
얼마 전 신랑과 함께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췌장염과 신장질환의 가능성이 있으니 재검을 받으라는 소견이 있었다.
왜 이렇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냐며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엄마는 또 내 전화를 받고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단다.
본인한테 나쁜 유전자를 받아서 그런다며.
어렸을 때 너무 혼내서 그렇다며.
엄마가 노산이어서 그런가 보다라며.
하도 본인 탓이라고 말하는 엄마 때문에 화가 났다.
모든 건 나의 불규칙한 식생활 때문인데.
나의 예민한 성격 탓에 몸이 망가지고 있는 것뿐인데.
언제부터 나는 엄마에게 후회를 남기는 딸이 되었을까.
결혼을 하고
오랜만에 엄마 옆에 붙어 노닥노닥 논 적이 있다.
엄마에게 장난처럼 "어른들이 다들 너 같은 자식 낳으면 부모 마음 안다고 하더라"라고 던졌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는 나에게 부탁했다. 다음번에도 꼭 자신의 딸로 태어나라고.
"왜?"
능글맞게 내가 묻자 엄마는 또 울상이 됐다.
"다음번에 다시 내 딸로 태어나면, 그땐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착하고
이렇게 귀엽고
이렇게 애틋한 엄마 곁에서 자란 내가
어찌 행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