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그릇

베토벤과 클림트를 생각한 새벽

by 호림

오늘 아침의 해돋이가 어젯밤의 석양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아서 좋다.

- 스티븐 마라블리



사람도 누구나 자신의 그릇이 있듯이, 예술가들의 작품도 예술가의 그릇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예술가는 '예술 직업인'과 다르게 자신만의 삶을 진정성 있게 살았을 때 그 울림은 더 크다.

사실 안정된 결혼 생활과 밥벌이가 일정치 않은 예술가의 삶은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다. 베토벤이 그랬고 구스타브 클림트가 그랬다. 그렇지만 이 예술사의 거인들은 짝을 구하거나 배필을 맞아들이는 일에 초연했던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베토벤의 삶과 그가 사랑한 '불멸의 연인' 들은 책과 영화로 무수히 나왔기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화가들의 작품 중에서 현재 온갖 장식품, 액세서리나 장식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림들은 아마도 고흐, 피카소와 함께 클림트의 그림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가격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아델레 블로흐 바흐 부인의 초상화는 한 때 거래 당시 세계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런 클림트는 베토벤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베토벤과 달리 순정파가 아닌 엄청난 에너지로 많은 여인들과의 사랑을 즐겼다. 그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56세에 사망할 때까지 그에게는 14명의 혼외자가 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모델이나 상류층 부인들이 그와 연인으로 지냈다. 혈육이라고는 아들처럼 아낀 조카가 유일했던 베토벤과는 대조적이다. 일부 베토벤 연구가들이나 픽션으로 그려진 영화에서는 베토벤이 소송도 불사하면서 지키려던 조카가 사실은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남기기도 했지만.

삶의 궤적이 표준편차를 벗어난 듯 보여도 어떤 분야에서건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그릇과 안목은 특별하다. 베토벤은 미래세대를 생각하며 현실의 인기에만 영합하지 않은 작곡 방법을 부단히 모색해 주변 사람에게 "이 작품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네"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버지와 동생들이 귀금속 세공사였던 클림트는 자신의 그림에 황금을 얇게 펴서 입히고 그림과 조화로운 금빛 액자를 만들기도 했다. 클림트는 회화에 공예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어떤 귀족부인이 신분상의 이유를 들어 베토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자 "나는 베토벤이요. 핏줄로 쉽게 신분을 얻은 당신과는 다른 존재요"라며 예술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람에게 엄중히 항의하기도 했다. 연상의 여인에게 빠져있는 후배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지 물었더니 자신과 음악과 미술을 얘기할 수 있는 교양미가 있는 여성은 그 사람이 유일하다고 했다. 후배에게 클림트 같은 면이 있다며 조크를 건넨 적이 있다.

클림트가 형제들 몫의 절반과 함께 유산의 절반을 남기고 애타게 사랑했던 사람은 오랜 세월 우정과 신뢰를 쌓은 여인이었다. 결코 에로스의 사랑만이 있었고 정신의 교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유산을 남긴 이는 사돈가의 여인이었다.

에미리 플뢰게는 언니 그러니까 클림트 동생의 부인과 '플뢰게 자매'라는 고급 양장점을 운영했고 지성미와 교양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클림트가 에밀리 플뢰게의 자녀들을 친자식 같이 돌보았기에 사실상의 부부였다는 설도 있고 있고, 둘은 플라토닉한 사랑만을 했다는 설도 있다. 아마도 에밀리 플뢰게를 모델로 해서 그린 클림트가 남긴 유일한 그림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이라는 매력적인 그림 한 점 속에 비밀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여인의 눈빛을 보면 그녀가 답할지 모른다.

대학입시 철이다. 아마도 부모들은 자식의 그릇이 얼마나 큰 지 모르기에 실크로드를 권하며 마음을 졸일 것이다. 오늘날 베토벤과 클림트가 되겠다며 예술을 시작한다고 하는 젊은이는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마 베토벤이 되겠다고 음대에 가고 클림트가 되겠다고 미대에 가겠다고 하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속이 탈 것이다. 예술은 결코 안전한 실크로드로만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