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성공과 실패는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할 영역이다. 비지니즈 맨의 성패는 우리가 흔히 짐작할 수 있다.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붙이면 '예술 직업인'과는 우리에게 좀 다르게 볼 의무가 주어진다.
신분이 낮은 기술자로 취급받았던 김홍도나 가난의 굴레에서 신음했던 이중섭 같은 화가를 우리가 실패한 예술가라고 할 수는 없다.
클림트와 뭉크,
독신으로 평생을 지냈으나 후세에 그 그림이 천문학적 값어치를 가지게 된 공통점이 있는 화가다. 그 삶의 방식은 대조적이다. 여성들 품에서 살다시피 하며 14그의 사후 법정에서 유산을 요구했던 14명의 혼외 여성이 확인된 클림트, 작품 <절규>가 말해주듯 평생을 고독과 우울 속에 살았던 뭉크이기에. 두 화가에 대해 살아서의 행복과 성공은 평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두 화가는 박물관과 미술학도들에게 대접받는 성공한 예술인임에는 분명하다.
가난한 세공사 출신으로 회화에 눈을 떠 어린 시절의 궁핍과 외로움을 만회하려는 듯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이 가득한 그림만 그리려고 했던 르느와르. 그는 그림이 걸려있는 벽 조차도 행복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밝고 화사한 색채의 그름을 위주로 그렸다. 노란 원색을 즐기며 남프랑스 아를의 자연을 원색에 담았던 고흐 또한 그림의 색조는 밝았지만 삶은 어두웠다.
생존 당시 삶에 처참한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예술가들은 수 없이 많다. 인상파 회화의 거봉을 이루는 폴 세잔의 삶은 언뜻 실패의 여정이었다. 살롱전 출품작은 번번이 낙선했다. 동년배인 모네와 르느와르가 화단의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할 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파리에서 화가로 성공할 것으로 믿었던 지방 유지인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려웠다. 게대가 자신의 그림 모델을 했던 오르탕스 피케라는 여인과의 동거와 이를 통해 손주를 얻었다는 사실조차 아버지에게 숨기는 처지였다.
그 아들이 14세가 되어서야 아버지께 고했고 유산을 받을 수 있었다. 잠깐의 유복함도 잠시 오르탕스는 아들 교육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유산을 거의 다 가지고 고향 액상프로방스를 떠나 파리로 날랐다. 고향에 홀로 남아 자연을 그만의 기법으로 그렸던 그에게 남은 건 당뇨병과 우울, 불안한 미래였다. 세잔이 고독 속에 남긴 그림들은 현대회화의 밝은 빛이 되었다. 누가 폴 세잔에 대해 '실패'라는 라벨을 쉽게 붙일 수 있을까.
김승옥의 <무진기행>,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는 한국 현대문학의 큰 성취이지만, 막상 그 '무진'이란 지명은 지도에 없고 '사평역'도 실재하지 않는다. 예술의 성공은 결코 만져지는 것이 아닐 것이고 어쩌면 신기루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크게 보면 삶이라는 직업을 이어가는 '인간'은 삶을 예술로 만든다고 아우성이다. 사람마다 그 소요시간의 길이가 차이가 날 수도 있고 현세에 만져지지 않는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만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대기업 인사에서 주춤한 친구와 포도주 한 잔을 건네며 '복불복'과도 같은 인간사의 이면을 늦게 까지 들었다. 친구는 이미 자신은 충분히 조직의 혜택을 입었고 과분한 위치에 있다고 한다. 국량이 넓은 친구이기에 구구한 위로의 말보다 어깨를 다독이는 것 이상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을 포도주 한 잔으로 같이 달랬다.
오늘 나의 아침을 열어준 베토벤 '황제'의 선율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250여 년을 지나 타국의 한 사내에게 이런 혜택을 준 작곡가는 분명 성공한 예술가임이 분명하다. 친구에게는 못한 말을 속으로 되뇐다.
베토벤을 생각하고 세잔을 한 번 생각해보았음 하네.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떴으니 힘내고 해장 잘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