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헌신

by 호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어느 고서적상에 잠자고 있던 것을 발굴한 첼로 연주자가 없었다면 클래식 명곡 하나는 우리 곁에 없었을 것이다.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의 위대함을 만드는 데는 바흐 음악의 재발견도 기여했다.

모차르트 미망인 콘스탄체와 결혼한 외교관이 없었다면, 모차르트 음악의 상당 부분은 유실되어 지금 우리가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두 명의 자녀를 남기고 35세에 세상을 등진 가난한 음악가의 29세의 미망인이 살아갈 방법은 막막했을 것이다. 그 미망인과 결혼해서 생활의 안정을 찾아주고 두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길러준 사람은 잘츠부르크 주재 덴마크의 외교관 폰 니센이었다.

베토벤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이미 전 유럽에 퍼진 상황에서 모차르트의 가치를 알아본 니센은 그의 음악을 수집해 출판하고 그의 전기를 작성했다. 성질 급하고 교양 없어 보이는 남편이 종이에 끄적인 것들의 가치를 잘 모르던 콘스탄체도 남편의 말을 듣고는 보물 찾기에 나섰다. 침대 바닥이나 거실, 집안 곳곳에 널려 있거나 버려진 모차르트의 악보를 모아서 남편에게 보여주고 보존한 것이다.

니센은 “모차르트 미망인의 남편”이라고 묘비에 까지 당당하게 기록하라고 했다. 누구도 아내의 전남편을 존경하고 그 업적을 기린 니센을 속없는 사람이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리포수목원에 가면 1961년부터 서해 바닷가 박토를 일구어 희귀 식물을 여러 종 보유한 세계적인 식물원으로 바꾼 고 민병갈 박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미군 장교로 한국에 복무한 인연과 태안반도의 한쪽 끝에 작은 땅을 구입했던 것이 발전해 그를 귀화 한국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왜 당시로서는 전쟁과 가난으로 상징되는 한국에 그렇게 정을 붙인 것일까. 무엇이 선진시민 미국인에서 초라한 극동의 한 나라에 뿌리내리고 살게 만든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었고 독신의 그이기에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사랑하는 한국의 자연 속에서 한 그루 수목 밑에 편안히 잠들기 위함이었다. 민박사의 수목 사랑과 자연 사랑을 느끼며 기념관을 돌러보며 잠시 숙연해졌다.

허위의식에 들뜬 유명인들이 앞으로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억만금을 손에 쥐거나 권력의 단맛을 느끼지 못하고 대대손손의 영화를 누리지도 못해도 우리가 기억하는 의미 있는 가치를 남긴 이들은 무수히 많다.


결코 허명과 한 줌 권력의 달콤함 대신 영원히 살아남을 예술과 자연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의 한 자락을 떼어내 헌신한 이들은 아름다운 이름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민병갈 박사가 그랬고 폰 니센이 그랬듯.

새벽,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민병갈을 생각한다. 바흐를 듣고 나서 새벽의 적막을 깨지 않으려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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