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다른 일

by 호림

예술가의 또 다른 직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


'본캐'와 '부캐'가 유행어가 된 시대다. 인생은 길고 여가는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부업을 고민하기도 하고

밥벌이 이외의 어떤 일들을 찾는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은 밥벌이의 고단함에 적절한 후원자나 특별한 재력이 있어야 뛰어드는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하이든이 100여 곡의 교향곡 작곡이 가능했던 데에는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후원이 있었고, 메디치가가 없었다면 찬란한 르네상스 미술의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루소는 일찌감치 결혼하고 생활의 안정이 필요해 세관의 공무원으로 일하며 그림을 그렸던 화가다. 파리 주변 풍경을 많이 그렸고 원시림을 즐겨 그렸지만 고갱처럼 원시 자연으로 떠나지는 않았고 50세까지 세관에서 일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해 그림 솜씨에 대해서 비아냥대는 주류 화단의 손가락질도 받았다. 루소는 비주류의 무대인 앙데팡당전에서 조차도 동료들에게서 비주류의 비주류로서 따돌림을 당하는 시기를 견뎌냈다.

한 가지도 어려운데 장르를 넘나들며 두 가지 이상을 썩 훌륭하게 해낸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조각, 건축, 회화에서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기에 우리는 그를 특별한 인물로 보며 팔방미인형 인간의 대명사로 '다빈치형 인간' 이란 말로 칭송하기도 한다.

신학공부를 하기도 했던 헤르만 헤세는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며 모국 독일이라는 알을 깨고 떠나 스위스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수많은 걸작을 낳았다.

하버드 출신의 T.S 엘리엇은 금융의 도시 런던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다 그 시적 재능을 아까워한 에즈라 파운드가 후원자를 구해주자 은행을 그만두고 시작에만 전념하게 한 특별한 경우다. 물론 내면에 문학에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에즈라 파운드가 아니었으면 그의 재능이 은행 창구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아마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엘리엇의 인생도 4월보다 더 잔인하게 끝나고 노벨상 작가의 탄생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카프카는 보험판매원에서 변신해 작가로 나선 경우다.


엘리엇의 재능과 행운은 쉽지 않다. 누가 그 재능을 알아보고 길거리 캐스팅하듯 해서 예술가로 데뷔시키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 솟구치는 열정만이 스스로를 캐스팅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중견 화가 그레이슨 페리는 자신이 미술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그건 제대로 된 직업이 아냐 딴 길을 생각해 봐"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페리는 미술대학을 가지 않고 작품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정규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화단 현실도 비전공자가 비비고 들어가서 주류의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클래식 음악도 대동소이하다.

반면에 '글쓰기 예술'은 좀 다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문예창작과나 국문학과를 나오지 않았다고 벽을 쌓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학문적 토양이 더 좋은 글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기초 데생 솜씨, 악보를 읽는 눈은 단박에 기르기 쉽지 않겠지만 맞춤법은 학창 시절에 이미 마스터하지 않았는가.


글에도 많은 장르가 있다. 평소 나를 잘 따르는 후배 녀석이 한 말이 떠오른다. "브런치 그거 몇 명이 보고 수입은 얼마나 되나요 하면서 재주가 아까우니 고리타분한 그런 거 쓰지 말고 말랑말랑한 웹 소설을 좀 써봐요 형. 돈도 되고 멋지잖아요" 이런 식으로 말한다. 난 그쪽에 재능이 없어 고리타분한 것이 체질인가봐 하고 같이 웃고 넘어갔다.

예술이든 문학이든 수지타산의 영역과는 거리가 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연배가 지긋한 문인이 막걸리 한잔을 앞에 두고 한 이야기가 기억에 선하다. "내가 만일 글 쓴다고 머리를 쥐어뜯는 그 시간에 막일 판에서 삽질을 했으면 돈벌이는 더 나았을 거유. 그래도 그게 좋은 걸 어떡해. 내 생겨먹은 게 글쟁이로 살라는 팔자인가 봐"


이분을 위한 변명이 될지 모르겠다. 그 옛날 수렵 채집의 시기에도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동굴에 벽화를 그렸다. 그것이 사냥에 도움이 될 이유는 없었을 것이고 벽화를 그리는 시간에 잠을 자서 체력을 비축하거나 사냥감을 한 마리 더 잡을 궁리를 해도 되었을 텐데. 예술과 문학은 표현을 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백남준의 말은 먹고사는 문제의 고단함을 견디며 예술을 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밥벌이도 신경 써야 한다는 면에서 새길만하다.

모든 예술가는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손을

물어야 한다. 단, 너무 세게 물지는 말고.

- 백남준

그림이든 악기 다루기든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글쓰기든 간에 본캐와 부캐가 어느 것인지 헷갈리고 둘 다 부실하게 되면 곤란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면의 욕구를 마냥 외면하고 살찐 소파에서 리모컨만 붙들고 주말 시간을 죽이기는 인생이 너무 짧다. 예술의 어떤 분야든 덤벼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