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르의 앵그리

by 호림

화가 앵그르는 바이올린도 곧잘 해서 자신의 연주 실력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본업인 그림 솜씨를 타박할 때는 관대하지만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탓하면 화를 낸다고 한다.앵그르가 ‘앵그리(angry)’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이제 자신의 본업 외에 취미에서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는 것을 상징하는 대명사 격의 말이 되었다.

가끔 친구들에게 앵그르의 바이올린이 뭐냐고 물으면 대개는 먹고살기 바쁘고 연구에 지치고 일에 찌들고 그런 한가한 소리 말라고 한다.

문득 책에서 앵그르 관련 글을 읽다가 한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던 바이올린과 악보를 찾고 보면대를 꺼낸다.

이제 국가경쟁력이나 국민 소득 같은 많은 부분에 한국이 선진국임을 보여주는 지표가 상당수이고 여러모로 당당한 G10 정도의 국가 반열이라 한국은 선진국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한다.

개발도상국이라는 말을 줄기차게 들었던 세대들은 실감하겠지만 우리도 이제 더 이상 허리띠를 조르지만 말고 스스로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시기가 된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나아가 다면적인 행복의 기준을 생각할 때이기도 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진국의 기준으로는 악기 하나, 외국어 하나 정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최근 칠순이 한참 지난 어머님이 일본어 공부를 맹렬히 시작하고 환갑 가까운 선배가 색소폰을 배운다기에 박수를 쳤다.

대체휴일로 하루 늘어난 주말이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먼지만 닦아놓고 다시 모셔둔 바이올린을 다시 집어 든다. 앵그르 수준으로 끌어올려 보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무리다. 나만의 소품 몇 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만족하면 그만이다. 가을이 턱밑에 다가온다. 책 읽기도 좋고 운동도 좋고 취미활동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악보와 곡목이 보인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도 그리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