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표현 본능

by 호림

몇 년 전 단골 식당의 사장님이 자신의 자서전을 비매품 도서로 출간해서 주셨습니다. 일흔 정도의 사장님은 젊은 시절의 고생담이나 사업이 성공한 후일담을 담담히 기록한 자전적인 수필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연세가 있으신 분도 젊은 친구들처럼 SNS에 일거수일투족을 남기지는 않아도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있습니다. 표현의 욕구는 본능과도 같지 않을까요.

오케스트라를 이끌 때 크고 작은 무대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가족들이 꽃다발을 들고 축하해주는 모습들을 무수히 보았습니다. 관심 있는 아마추어 작가의 초대에는 기꺼이 가서 축하해주는 편입니다. 갤러리에서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을 전시하고 그걸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정말 소중한 마음이라는 생각입니다.

SNS 서비스에서는 ‘라이프로깅’이라는 이름의 소위 치기 어린 ‘자랑질’이 넘칩니다. SNS 업체들도 자신의 삶을 공개해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를 부추깁니다. 그런데 대부분 자신의 편집된 삶만이 전시됩니다. 인생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공연을 보는 삶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독의 심연 속에서 삶의 좌표를 고민하는 모습, 후미진 골목의 막걸리 집에서 오버이트를 할 때까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밤새 친구들과 사회의 정의를 운운하면서 넘치는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청춘의 시간들은 결코 추하지 않았고 어쩌면 성장통을 않았던 시기의 너무나 찬란한 추억이었습니다.

세상의 경박한 리듬에 덩달아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두꺼운 고전을 엉덩이 붙이고 읽어가는 시간이 없고,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 난 왜 사는지? 이런 고민이 빠진 청춘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예술은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넓히고 생각의 깊이를 확장하는 것이 아닐까요. 문학도 어떤 면에서 글로 쓰는 예술입니다, 가끔 조급하게 뭔가를 터트리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속도의 시대를 이기고 단단한 자신을 만드는 느린 시간을 견디라고 말합니다. 준비된 사람은 낭중지추로 반짝거릴 날이 오겠지요.

반 고흐의 삶을 들여다볼까요. 고흐는 실은 목사가 되려던 신학도였지만 구필화랑이라는 곳에서 잠깐 점원으로 일한 것이 미술과의 인연이 되었는데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기까진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다독가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믿고 사랑할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 많지. 알겠니? 셰익스피어 안에는 렘브란트가 있고, 미슐레 안에 코레조가 빅토리 위고 안에 들라크루아가 있다. 또 복음 속에 렘브란트가 있고, 렘브란트 안에 복음이 있다. 네가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그것은 같은 것이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많은 편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시대와 분야를 넘나들며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엄청난 독서를 통해 지성을 가다듬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다독가이기에 고흐는 동생에게 “너무 닥치는 대로 읽어서 이제는 좀 체계적으로 읽어야 할 텐데” 같은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고흐는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는 물론 영어, 불어, 독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고 합니다. 신학도로서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도 일가견이 있어 직접 라틴어 서적을 번역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정규 교육의 틀이 가져다주는 체계가 있겠지만 오히려 분방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붓질은 그가 미술교육으로 다듬어진 사람이 아니었기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봅니다.


SNS에 넘치는 치기 어리고 재치 있는 표현의 가치를 무조건 평가절하하려는 것만은 아닙니다.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는 세련되지 않더라도 스스로만의 방식으로 근원을 고민하는 노력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생각의 근력은 결코 SNS 서비스와 스마트폰에만 매달려 살며 해결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충분히 무르익은 내공은 표현을 굳이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날이 옵니다. 굳이 많이는 아니더라도 주변의 의미 있는 소수는 알게 되겠지요. 비록 더디더라도. 인간은 어떤 면에서 모두가 예술가입니다. 자신을 어떻게든 사회에 표현해야 하니까요. 이왕이면 자신의 작품이 헐값으로 평가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흐는 비록 살아서 가난했지만 마흔을 넘기지 못한 그의 삶은 값진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