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좌절

by 호림

스스로 이름 붙인 성공의 작은 봉우리에서 놀며 더 큰 봉우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지막한 언덕에서 거들먹거리는 것이다.


무적의 수영선수였던 대구의 한 여중생은 자신이 최고라며 우쭐대다 어느 날 전국대회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강적을 만났다. 그 극복할 수 없는 넘사벽 친구를 만난 이후 수영을 접었을 때가 14세였다. 문득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피아노에 소질을 보였고 유학을 반대하던 아빠도 설득했다. 권위있는 콩쿠르도 입상하며 놀라운 성취를 이뤘고 20대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어 보장된 길을 걷고 있었다. 40세에 문득 또 다른 큰 봉우리가 보였고 교수직을 그만두고 다시 해외로 가서 험난한 여정을 걸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봉우리에 안착하기도 했지만 스스로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한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이렇게 태어났다. 누구나 인생의 변곡점은 있다. "이 산이 아닌가 봐" 하는 순간 좌절의 낭떠러지로 갈 수도 있지만 위대하거나 가치 있는 성취는 다른 봉우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서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전공분야가 아니었지만, 교황의 엄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건 내 전공이 아니라고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더뎌도 자신의 이름을 건 필생의 작업은 그 어떤 회화예술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세상의 찬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우리의 육안은 불완전하다. 높고 낮은 것은 상대적이다. 자존감은 올라갈지 몰라도 울창한 주변이 없으면 독불장군으로 오만해진다. 작은 봉우리에서 우쭐대는 것보다 의미 있는 좌절이 차라리 긴 인생에 약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우 각성의 바늘이 되는 좌절은 빠를수록 좋다.


W. A. Mozart: Symphony nº 41 "Jupiter" - Lorin Maazel - Sinfónica de Galicia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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