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예술가

by 호림

영화감독, 야구감독, 지휘자, 남자들에게 로망과 같은 직업이면서도 문턱이 제법 높다. 상업 영화감독은 대규모 예산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시나리오만 붙들고 있다 좌초하기 일쑤고 투자를 받지 못하는 영화가 훨씬 더 많다. 거장 소리를 듣는 감독도 예산을 넉넉히 쥐어주고 실크로드를 깔아 메가폰을 잡으라는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제작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맡길 감독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거장이라는 감독은 시대흐름을 놓칠 수 있어 결코 흥행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신인은 위태롭고 중견감독 또한 그 매너리즘이 어디서 나올지 모르기에 결코 안전하지 않다.


최근 험난한 영화판에서 삶을 송두리째 바치다시피 한 친구를 만나 축하의 샴페인 대신 위로주를 한 잔 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 영화판에서 기이하고도 대단한 존재가 있다. 코미디 작가로 출발해서 배우이자 감독으로 50여 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으니 분명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원로다. 그렇지만 그 감각은 아직 퇴화하지 않은 현역이다.


재임스 카메론 같은 대작 위주의 상업영화감독도 아니다. 한두 편 찍고 공백기가 더 긴 작가주의 감독 계열도 아니다. 독특한 스타일이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그 존재감은 세계영화계에 특별하다. 그의 영화 철학은 소박하기만 하다. "내 영화는 다시 보면 쓰레기 같은 영화라 부끄러운 것이 더 많다. 그저 자주 많이 찍다 보니 좋은 영화 한 편 건질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톤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40여 편의 크고 작은 영화의 긴 필모그래피 목록이 있기에 수긍이 간다.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뚝딱 한 편을 만들었던 셈이다.


오스카상에 빛나는 다이앤 키튼, 스칼렛 요한손 같은 스타들은 그의 촬영 스타일을 매우 편하지만 배우의 모든 것을 끌어내는 감독이라고 엄지를 든다.


빨리 찍기 위해 안달이 난 건 대개 배우일 수 있지만 오히려 감독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배우에게 아주 짧게 주문만 하고 속사포로 찍는다. 연기 지도랄 것도 없이 대본을 주고 방치하듯 하지만 상황의 요점을 간결히 전달할 뿐이다. 그가 배우를 해봤기에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순간에 얼마나 집중해야 하는지를 다 알기에 지혜롭게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수록 배우는 부담을 몇 배 가지고 초집중할 것이다.


이 노장의 인생도 영화 같은 면이 있다. 다이앤 키튼, 미아 퍄로 같은 미녀배우들과 영화를 만들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말년의 동반자는 그와 미아 패로가 입양한 한국계 딸이다. 언론의 지탄은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우디 앨런을 쏠 정도였지만, 곧 수그러들었고 그는 영화판에 다시 나왔다.


우리 앨런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죽음에 절대로 반대한다"고 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특유의 유머 감각을 뽐낸 인터뷰가 생각난다. 늦게 얻은 자녀들이 있기에 빨리 죽을 수도 없는 노감독의 입장을 이해한다.


우리 앨런의 신조와도 같은 "시나리오나 모든 제작 여건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어야만 한다"는 지극히 당연할 수도 있는 조건이 모든 감독들에게 허락된 건 아니다. 노장의 차기작을 기다린다.


<브로드웨이를 쏴라> , <미드나잇 인 파리>...... 그의 성공작 몇 편이 휴일의 친구 목록에 들어있다. 베토벤의 '봄'과 함께.


(120)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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