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이 준 고통

by 호림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예술가의 진정성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를 거쳐 남프랑스 아를에 이르는 그 길지 않았던 삶의 여정, 동생 테오와의 편지는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진정한 예술가로 흠모하고 그의 행적을 더듬었다. 전기 작가 어빙 스톤 또한 반 고흐에 심취라여 그의 삶을 일종의 개인의 전기소설로 집필했다.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그가 쓴 문장을 보면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을 느끼는 대목이 여럿 보인다.


암스테르담에서 삼촌 빈센트 반 고흐(성과 이름이 똑 같은 삼촌이었다.)가 운영하는 구필화랑에서 일할 때의 일화를 어빙 스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반 고흐는 말도 안 되는 그림에 폭리를 취하는 데 격분하듯 하며 그때까지 제법 성실히 갤러리스트로 일했던 경력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참이었다.


허접쓰레기를 팔면서 대체 우리가 그렇게 큰 이익을 남겨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여기 들어와서 물건을 사갈 수 있는 사람들이란 어째서 진짜 그림은 참고 보질 못하는 겁니까? 그 사람들은 돈 때문에 감각이 무뎌져서 그런 건가요? 그리고 또 어째서 좋은 미술품을 진정으로 감상할 줄 아는 가난한 사람들은 단돈 몇 푼이 없어서 자기 집 벽에 걸 판화 한 장 사지 못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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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드시 자기 내부에서 정신적으로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이승에서 존재함은 행복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그저 정직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인류를 위한 위대한 행동을 실현하며 고귀함을 얻고 거의 모든 개개인의 삶이 질질 끌려가고 있는 비속함을 뛰어넘기 위해서이다.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어빙 스톤 지음, 최승자 옮김, p.29


반 고흐의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그 형제들은 네델란드 화랑계의 명문가여서 얼마든지 그가 작당히 타협하며 삼촌의 비위를 맞추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더 거대한 예술가의 행적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도 잘 모르는 가시밭길이었지만 후세 사람들에게는 예술을 위한 위대한 행로가 되었다.


(253) Gluck Orfeo ed Euridice „Che faro senza Euridic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