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열풍의 주역이 된 92세의 노화백은 최근 달라진 한국 미술의 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도 80세까지 안 팔리는 작가였어요. 내가 예전부터 늘 하던 소리가 있어요. 한국에 나 같은 작가는 길 가다 발에 채이죠. 우리는 늘 있었어요. 이제야 세계가 한국의 미술 수준을 알아본 거죠.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한국화단의 원로 박서보 화백의 말이다
'검은 피카소' 바스키야는 수백억 원 가치의 작품을 여럿 남겨놓았지만 정작 그는 골목길 벽에 그라피티를 했던 소년에서 벼락출세의 충격 탓인지 약물과 무절제한 사생활이 발목을 잡아 20대에 숨졌다. 에곤 쉴레는 그에 비하면 더 안타깝게도 생전에 빛을 보지도 못하고 20대에 생을 마쳤다.
파블로 피카소는 아흔을 넘기는 장수를 누리며 충분한 부를 향유했다. 다작가이기도 해서 그가 남긴 작품의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슈베르트, 반 고흐, 모딜리아니......예술사에 이름을 올렸지만 30대를 넘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예술가들은 부지기수다. 때로 사후에 재조명되기도 했지만 고단한 삶에 빛을 찾기가 힘든 경우가 많았다.
박서보 화백이 겸손을 보탠 말이지만 평생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세상의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의 삶이다. 평론가의 밝은 귀와 눈을 만나는 행운이나 소속 국가의 국력, 예술의 도시 중심부에서 활동한 이력 같은 요소들이 작품 자체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임은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빛을 본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평가에만 영합하지 않았고 신천지를 개척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단명은 천재를 시기한 신의 장난으로 치부하는 고전적인 추모가 있다. 롤랑 바르트 같은 이들은 모차르트는 이미 100년이 걸려서도 이루지 못할 작품들을 40년이 채 안된 시간에 인류에게 선물하고 같다고 보기도 하고 한 사람의 생에서 분출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다 쏟아붓고 갔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모차르트의 짧은 생에 비하면 600여 곡의 작품 수 또한 적은 수는 아니기에 악상이 그저 신탁을 받아서 천재의 손끝에서 주르르 흘러내린 경우로 해석하는 이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