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찢어 버렸듯이.

브런치에 글쓰기!! 이런 거였나요?!

by 은선

일기를 숙제로 써야 했을 때부터 나는 늘 일기를 썼다.
일기는 솔직하게 써야 하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써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일기는 꼭 그렇게 쓰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이모 집에 맡겨져 있을 때였다.
급식비인가? 학교에 돈을 내야 하는데 이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나는
일기장에 구구절절 돈을 내야 한다는 글을 적어서 책상 위에 펼쳐 두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학교에 다녀오니 돈이 일기장에 꽂혀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나에게 좋은 피드백이 되었는지 일기는 더욱더 솔직해졌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고민하는 마음까지도 모두 적었다.

그런다고 누가 내 일기장에 돈을 꽂아 놓을 일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1년 뒤, 아니 6개월만 지난 일기를 다시 들춰보면
그때의 내 글을 불질러 버리고 싶어진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내 글은 얼마 후 이성적인 내가 되어 보면
얼굴 붉어지는 내용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걱정과 불안이 많은 나는 그 일기를 누군가(특정되지도 않음)가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기를 없애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일기를 쓰고, 찢어 버리고, 또 쓰고, 더 잘게 찢어 버리기를 반복했다.
혹시 찢긴 종이를 누가 볼까 무서워 이번에는 싸이월드에 비공개로 일기를 썼다.

누군가 해킹해서 나의 흑역사를 볼까 무서워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싸이월드가 사라진 후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쓰고, 지우고를 또다시 반복했다.

어쩔 때는 문득 그때 썼던 일기들을 괜히 버렸나 싶다.
젊은 날의 나를 추억하기에 일기만 한 게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분만 더 생각해 보면 찢어발겨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그래서 그런지 브런치에 자전적 소설을 10회까지 쓰고 나니
또다시 나의 못된(?) 버릇이 스멀스멀 튀어나오려고 한다.

『불안의 그림자 아래서』는 소설처럼 썼지만 거의 90퍼센트가
정말 나의 이야기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내 일기장을 봤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려 미칠 것만 같다.

생각해 보니 자기 연민에 빠져 쓴 글 같기도 하다.

‘나 이만큼 불쌍하니 나를 위로해 주세요’라는 불행 배틀 참가 신청서 같은 정도라고 느껴진다.

이런 글을 처음 써보고 나의 글을 공개하는 게 처음이라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한 걸까?

브런치 선배님들에게 묻고 싶다.

5화까지 썼을 때만 해도
“어머, 나 진짜 이러다 책 내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들떴다가,
지금은
“이따위 글이 책이 되면 나는 당장 접시물에 코 박고 죽어야 할지도 몰라.”라는
생각만 드는 게 당연한 과정이 맞는가? 나는 정말 궁금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다 끌어안고 존중해 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숨 한 번만 쉬면 과거가 되어버리는 시간 속에서 영원한 건 없을 테니
어쩌면 ‘흑역사 이불킥 글’들이 먼 훗날 나의 너무 진솔한 자서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불안의 그림자 아래서』 10회까지 쓴 지금 나는 20대가 된 후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며 치유가 되든 안 되든 어떠한 책임을 넘어 사명감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스스로에게 있어 의미 있는 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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