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 대휴부터 안 쓰고 아껴서 만든 10일의 휴무에 들떠 여기저기 자랑질을 해댔으니 마가 끼는 게 당연했다. 호사다마(혹은 새옹지마, 그러고 보니 둘 다 마로 끝나는 사자성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휴무 첫날인 23일에 병원 갔다 온 뒤로 25일까지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22일 배송 때 사둔 기본빵이 맛있는 동네빵집 #오성빵집 치아바타와 바게트가 있고, S가 보내준 죽이 2그릇이나 있어 가능했다. 볶은 커피콩이 다 떨어져서 어쩌나 싶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고, 꿩 대신 닭이 있듯 예전에 사뒀던 루이보스차로 해결했다.
첫날, 목에 통증 있고 몸살기 살짝, 기침하면 따갑고 머리가 울렸다. 최근 몇 년, 코로나는 물론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며칠 전 낌새가 왔을 때 단도리를 했어야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환경에 적응한 생존의 산물이 감각일 텐데 호시절이 계속되니 감각이 무뎌졌나 보다.
첫 내원환자 기록카드를 입력하고 대기, 이름을 호명하기에 접수대로 갔다.
-지난번에 오셨네요
-네? 처음인데
-주소가 초량상로…
-아닌데요. 감천인데
작년 6월에 이 동네로 이사 왔는데 이 병원을 왔던 기억이 없다. 여기 살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이 병원까지 찾아오진 않았을 텐데, 이 병원은 언제, 왜 왔을까? 기억은 기록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주사 맞고 약을 잔뜩 받고 도서관에 들렀다 탁구 강습받는 날인데 무리하지 말자는 적당한 핑계로 그냥 집에 왔다.
둘째날(24일), 첫날보다 통증이 조금 더 있고, 기침이 잦아졌고 몸 여기저기 욱신댔다. 몸 상태가 영 별로다. 약을 먹었는데 더 안 좋아진다.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지만 몸이 아프면 별거 아닌 일에 신경질과 짜증을 낼 수 있어서 두 달여 만에 잡은 그와의 약속을 눈물을 머금고 취소했다.
세째날(25일), 몽둥이로 실컷 두드려 맞은 듯 온몸이 욱신대고 저리고, 기침하면 목안을 뾰족한 걸로 쑤시듯 통증이 왔고 콧물이 나왔다. 어제보다 통증이 심하다. 아직 이퀄라이징도 제대로 안 돼서 가급적 참석하려는 프리다이빙 자율트레이딩을 취소했다. 사흘째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스마트폰 보기를 반복하다 보니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지난번에 주문해 둔 단열시트지를 창문에 붙이고, 점심은 S가 보내준 호박죽 먹고, 저녁은 아플수록 잘 먹자는 핑계로 7번가 피자 시켜 먹었다.
네째날(26일), 어제보다 몸 상태가 나은 듯하다. 몸조리한다고 이렇게 집에만 있다간 없던 병도 생기겠다 싶고, 아직 감기몸살 기운이 남아서 병원에도 들러야 해서 파슈수를 타고 집을 나섰다. 아~ 정말 오토바이 타기 좋은 날씬데, 원래 계획대로면 오늘 아침엔 7번 국도를 타고 있어야 하는데, 무리하면 가능하지만 무리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병원 근처에 있는 할머니칼국수 곱빼기로 배를 채우고(감기몸살에도 식욕은 여전해!), 시립도서관이 휴무일이라(도서관은 왜 같은 날 쉴까?) 국회도서관에 왔다.
과학을 통해 우리의 본능이 옳다고 밝혀지기 시작했다는 게 기쁘다.
녹색이 눈에 좋다, 삼림욕 효과를 동반한 숲 속 걷기 등이 건강에 좋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그동안 자연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사실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본능에 기반한 짐작이었다.책갈피에 적힌 아래 내용을 작가는 세계 각국에서 진행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서 구체적이고 과학적 증거로 제시한다.
• 나무와 꽃을 감각할 때 우리 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자연 풍경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어떤 색깔의 식물이 가장 좋을까?
• 조화나 디퓨저를 사용해도 생화를 놓았을 때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 흙이 있는 놀이터가 아이들에게 더 좋을까?
•우리는 왜 초록에 끌릴까?
작가와 번역자의 능력 덕분에 술술 읽혔고, 안 읽히는 부분은 설렁설렁 넘기기도 했지만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끝냈다. 잠들기 전 수면유도용으로나 쓰던 독서였는데, 오호~ 도서관 온 보람! 나만의 작은 화원을 만든 건 잘한 일이었다.
좋은 의도가 공공성을 담보한다고
착각하는 순간, 공공성은 사라진다
서가를 서성대다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어쨌든 먹어야 하고 이왕 먹는 거 부산의 맛을 볼 수 있는 식당에서 먹자 싶어서다. 몸 아프고 잘 먹자는 생각만 늘었다. 이 책의 놀랍도록 뻔뻔한 점은 수록된 식당과 베이커리, 카페가 부산말로 ‘택도 아인데’ 여서가 아니다. 부산의 많고 많은 식당 중에 각 구별로 몇몇 군데를 선정했는데(빠진 구도 있다), 어떤 기준과 과정으로 어떻게 해서 선정했다는 점을 밝히지 않았고, 발견할 수 없다. 부산시 보건위생과가 발행처니까 100프로 세금으로 만든 290페이지 올칼라 책자인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