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
개미굴(한 층에 최소 3~40개 이상의 호실이 있는 건물)이라 부르는 오피스텔 배송을 끝내고, 차를 타려는데 개미굴 벗어난 걸 축하하듯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반긴다. 아직은 아니다, 끄떡없다 해봐야 때 되면 저물고, 저물어 가는 걸 막을 순 없다. 저물어 가면서 저렇게 멋지게 물들 수 있다면 그저 고맙고 다행일 뿐이다.
돼지국밥에 반주, 하루의 노동을 마무리하는데 이만한 게 있나 싶다.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 돼지국밥집이 있다. 뚝배기째 끓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동네 돼지국밥집이 여기뿐이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다 먹을 때까지 뜨겁지 않은 게 어디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누린내, 적당한 양의 고기, 김치와 깍두기가 괜찮고, 더구나 추가 공깃밥이 공짜라 퇴근길에 한 번씩 들린다. 주방과 홀에 아주머니 한 분씩 일하고, 매번 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늦은 저녁을 먹거나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도 그러려고 그 집으로 갔다가 바로 앞에서 지나쳤다. 인근 탑마트(대형마트 체인점) 입구에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순대국밥집의 삐까번쩍한 조명이 여기로 오세요 현혹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프랜차이즈답게 유니폼을 입은 젊은 직원이 "어서 오세요?" 맞이한다. 메뉴판에 돼지국밥이 보여서 "돼지국밥 주세요." 햐아~ 결국 돼지국밥 먹을 거면 돼지국밥집을 가지, 하는 짓하곤!
여기는 가스불에 뚝배기를 데우다가 국물 붓고 더 끓여내는지 눈앞에 놓인 뚝배기는 국물이 넘칠 기세로 펄펄 끓고 있다. 살아생전 살생, 도둑질, 음행 등 악업을 쌓은 자들이 끓는 물(열탕)과 쇠가마솥의 고통을 받는다는 화통지옥에서 나오는 급식도 아닌데 살아있는 사람 입천정 다 까질 정도로 음식을 펄펄 끓여낸다. 마음에 안 든다. 국물이 곰탕인양 뽀얗다. 누구는 국물이 진해서 좋다는데 이건 돼지국밥 국물이 아니라고!
돼지고기만 들어가면 돼지국밥인 줄 아는, 돼지국밥 국물에 무지하거나 무시하는, 심지어 추가 공깃밥 돈도 받는 프랜차이즈, 완전 실패다. 지금껏 불만 없이 다녔던 식당인데 메뉴라도 달랐다면 모르지만 왜 다른 국밥집을 갔을까? 프랜차이즈 식당에 뭘 기대했을까? 새로 생긴 식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지금 식당보다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욕심 등등. 배신자는 자신의 배신을 정당화시키고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온갖 핑계를 대고, 오히려 배신당한 사람을 헐뜯고 공격한다. 그런다고 배신이 정당화되지 않고, 그럴수록 자신의 감정을 갉아먹는다. 다음번에 국밥집 문을 여는 마음이 홀가분하려면 배신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다. 장터 돼지국밥, 황금에 눈이 멀어 배신해서 미안해.
#돼지국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