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만난 세부인
30분 만에 고래상어 투어를 후다닥 치르고,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투말록 폭포로 갔다. 오토바이로 갈아타고 1~2분도 안 걸려 도착한 주차장을 겸한 너른 마당은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관광수입 때문이겠지만 오토바이로 실어 나르는 것보다 큰길에서 걸어와서 마주치는 폭포의 장관이 더 감동스럽지 않을까? 아쉽다. 그럼에도 보자마자 이야~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투말록 폭포, 장관이다. 한쪽에 앉아 멍하니 폭포를 바라보려 했는데 불어대는 바람에 한기가 들려서 철수했다. 오늘 일정 중에 제일 큰 두 개의 이벤트를 끝냈는데 아직 8시가 안 됐다. 모알보알로 출발하기 전 루디에게,
-오스메냐픽 가는 길 알아?
-(니가 거길 어떻게 아냐는 표정으로) 알지
-오래 걸려? 얼마 추가돼?
-모알보알 가는 길에서 빠지는데 1시간 혹은 1시간 반 정도, 1,500페소.
세부 정보를 찾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오스메냐픽, 어떤 이는 세부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정상에서 보는 경치가 멋지다며 세부엔 바다뿐만 아니라 산도 있다 했고, 누구는 별 거 없으니 갈 필요 없다고 했다. 자기가 가봤는데 볼 거 없으니 가지 말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도 그럴 것이라는 이런 자들은 여행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멀리 하려고 한다. 어쨌든 내 돈 써가며 여행을 오는 건 실제를 보기 위함 아닌가? 좋든 싫든 나의 여행이다. 그러니 가야지~
산골 마을에 도착하니 산 정상 쪽에 건물이 있다. 루디가 주차장에서 기다릴 테니 건물로 가란다. 입장료와 가이드비를 지불하고 두리번대니까 어떤 여인이 다가와 준비됐냐 묻기에 가이드냐 물으니 그렇단다.
-나는 리, 저 사람(동행)은 규, 당신은?
-(목에 걸린 가이드증을 보이며) 로젠타. 어디서 왔어?
-한국, 한국인들이 종종 오냐?
-아주 아주 가끔
-하루에 몇 번 정상을 오르냐?
-두세 번 많으면 네 번
-주로 누가 오는데?
-필리피노, 다음은 유러피안(백인)
돌산이지만 산세가 험하진 않다. 올라가는 중간에 작은 비닐봉지에 담긴 야생딸기를 파는 여인이 앉아 있는데 누가 온다고 여기서 팔고 있을까 싶다. 맛이 궁금하긴 한데... 내려올 때 사 먹을까? 30분 즈음 올랐나? 필리핀 국기가 휘날리는 정상이다. 10대로 보이는 한 무리의 소녀들이 재잘대고 있는데 순식간에 안개가 뒤덮는다. 갑자기 들이친 안개에 실망한 우리를 위로하려는지 1,000미터 넘는 봉우리라 날씨 변화가 심하다며 안개 걷히면 모알보알 쪽 바다 풍경과 쉴 새 없이 솟은 아기자기한 봉우리가 멋진단다. 언제 걷혀? 니네가 러키가이면 당장!, 하하하 그저 웃었다.
로젠타 말로는 민다나오섬에 필리핀에서 제일 높은 산이 있는데 여기와 다르게 밀림이고 트레킹 코스도 다양하단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은데 자꾸 나이만 먹는다 했더니 나이가 어찌 되냐 묻기에 50 후반이라니까 그렇게 안 보인다며 영맨이란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으면 진짜 나이 든 거라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기분이 좋다. 로젠타와 얘기하는 걸 듣고 청소녀 무리 중에 한 명이 '안녕'이라며 한국말로 인사하더니 '고맙습니다' 하기에 한국말을 어디서 배웠냐니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단다. 배우는 누굴 좋아하냐 물었는데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당연히 박보검, 정해인처럼 얄싹하게 생긴 인물이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이민호란다. 이민호? 꽃보다 남자, 엥? 아주 오래된 건데... 로젠타도 이민호를 좋아한단다. 남남북녀라는 말처럼 남방계 여인들이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남방계보다 북방계 타입의 미남을 좋아하는 건가? 가수는 누구하며 제니 포즈를 어설프게 잡는데, 정확한 포즈를 취하며 '라이크 제니'라더니 'and 카리나', 타고난 인물은 세대와 지역을 뛰어넘는구나.
청소녀들이 오오오~ 소리를 내기에 뒤돌아보니 안개가 걷히고 모알보알 쪽 바다가 선명하게 펼쳐진다. 오호호~ 아기자기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펼쳐진 산맥 같은 멋진 장관을 보여준다. 로젠타 왈 "유어 러키가이!" 이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오스메냐픽, 오길 잘했다. 내려가는 길에 야생딸기를 2 봉지 사서 한 봉지는 나눠먹고, 한 봉지는 루디에게 오스메냐픽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
#오스메냐픽